탈옥의 기술 : 열네 번째
오십 세가 넘으면 유독 자주 받게 되는 전화가 있는데, 이는 바로 보험 가입 권유이다. 특히 중장년층이 자주 시청하는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언제나 암이나 뇌졸중과 같은 질병을 언급하며 암울한 미래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이를 통해 시청자에게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광고를 접할 때면, '만약 내가 갑자기 큰 병에 걸리면 어떡하지?', '남은 가족의 생계는 누가 책임지나?'와 같은 두려운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 마련이다. 결국 이러한 불안감에 못 이겨 수화기를 들고 상담을 받고, 미래의 불행에 대비한다는 명목 아래 보험 증서에 서명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다.
미래에 닥칠지 모를 불행에 대비하고자 하는 마음은 어찌 보면 인간의 삶을 움직이는 핵심적인 동기 중 하나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욕망보다 손실을 회피하려는 심리를 자극하는 것은 매우 오래된 전통적인 판매 기술이기도 하다. 인간이 죽음에 이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질병에 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고에 의한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또한 넓은 의미에서 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둘 중 하나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필연적인 결말이며, 그 결말의 시점을 늦추기 위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그것을 완전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이 감옥에 갇힌 이들의 이원적이고 상대적인 사고 패턴이다.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 적절하게 준비하는 것은 분명 현명한 선택이다. 다만, 그 선택이 막연한 공포에 떠밀린 것이 아닐 때만 그렇다.
모든 걱정과 불안은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다. 큰 걱정이나 작은 걱정이나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내일 등교해야 한다는 걱정이나 다음 달 카드값을 치러야 한다는 염려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정확히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걱정의 크고 작음이나 불안의 깊고 얕음에는 어떠한 차이도 존재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실상에 눈을 떠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되면, 크고 작은 모든 불안이 실은 자기 자신의 착각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아 한꺼번에 정리되는 것이다. 이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 자체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직접 확인하는 대전환이다.
걱정과 불안에는 언제나 특정한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번 시험에 떨어지면 내 인생은 끝이야', '그 사람이 나를 떠나가면 나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거야', '이 프로젝트를 실패하면 회사에서 내 자리는 없을 거야'와 같은 구체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가진 공통점은 그것이 객관적 사실이 아닌, 주관적으로 구성된 허구라는 점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화자, 즉 주인공이 등장하기 마련이며, 이 주인공은 이야기의 관점을 이끌어가는 주체이다. 그런데 이 주인공의 설정 자체가 임의적이고 가상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주인공이 바뀌면 관점이 바뀌고, 관점이 바뀌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내용이 되어버린다. 이는 곧 그 어떤 특정한 이야기도 절대적인 사실일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느 한 버전의 이야기가 다른 버전의 이야기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고 주장할 근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의 전개 속에서 한쪽의 영웅은 언제나 다른 한쪽에게는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목도하는 모든 투쟁과 갈등은 바로 이 구조적인 상대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지금 이 글 역시 그 예외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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