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의 허구성을 넘어

꼬리찾기 #10

by 나말록

우리는 일상의 대부분을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읽거나, 쓰면서 시간을 보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글을 쓰고 있고 당신은 글을 읽고 있다. 동시에 머릿속은 끊임없이 생각이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우리 모두는 실제 현실 보다 개념 속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는 꿈속에서 조차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개념 속을 떠도니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런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습관 때문에, 물리적인 대상이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의 것들이 우리의 삶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 중심에 생각이라는 언어화된 개념이 있고 그 생각이 개념으로 구성단위가 개념이다.


이런 개념에서 벗어나면 그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개념에서 벗어난다고 하니 마치 개념을 잃어버리는 멍한 상태를 상상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보통은 낯설거나 일상적이지 않은 경험을 마주할 때 개념에서 잠깐씩 벗어나는 경험을 하게 되지만 그 또한 개념을 벗어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상상하기엔 부족하다. 예를 들어,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따귀를 맞았다거나, 경이로운 풍경을 마주했거나,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을 때 그런 경험을 한다. 이것은 생각이라는 장막이 거두어진 상황들이지만 개념을 벗어난 것이 아닌 망각의 상태와 가깝다.


이런 때를 제외하면 우리는 대부분 이원적인 개념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개념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엇이 당신의 눈을 가리고 있는지를 알아야 그것을 걷어내고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꼬리를 옮기는 연습은 이것을 깨닫기 위한 구체적인 연습이다.


개념은 추상적인 사고와 인식의 결과물이다. 개념은 비슷한 특성이나 속성을 가진 객체, 아이디어 또는 사건을 그룹화하고 일반화하는 데 사용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된다. 효율이 가능한 이유는 단순화에 있다. 복잡한 것들을 단순화시켜 개념이라는 그릇에 담으면 이곳저곳 옮기는 것이 가능하고 소통이 원활해진다. 다만 이것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동일한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만 이 작전은 성공한다. 만일 상대방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다르면 오해가 생긴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교육의 대부분은 개념을 익히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개념화의 과정에서 우리가 지불한 대가는 바로 ‘분리’라는 환상이다. 각 개념들 간에는 필연적으로 경계와 구분이 있으며 이것이 서로에게 기대어 세상에 드러나고 인식된다. 이러한 경계는 임의적이지만 우리는 이것을 ‘분리’로 인식하고 양쪽을 서로 다른 존재로 인식한다. 이는 의식의 진화에 있어서 매우 자연스러운 단계다.


개념은 달리 말하면 ‘대충 하는 생각’이다. 정확하지 않고 대략적이란 말이다. 왜 대충인가 하면 우리의 생각이 할 수 있는 최선이 그 정도라서 그렇다. 대충이 아니라 제대로 세상의 역동성과 본질을 생각에 담고 표현하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런 일은 그 어떤 수단으로도 가능하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는 사용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이것은 아이가 태어나는 그 모든 신비를 단순히 ‘아이가 태어났다’라는 무성의하고 도무지 근접하지도 않은 말로 둘러대는 것과도 같다. 나는 ‘홍길동이다’라는 말로 그 ‘나’를 모두 담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개념화의 과정에서 우리가 겪는 또 다른 문제점은 개념을 실제로 존재하는 무엇으로 믿어버리는 것이다. 개념을 단지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오래도록 사용하다 보니 그런 것이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듯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흔히 학교라고 부르는 것은 개념이다. 실제로 학교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가 무엇인지 살펴보면 그것은 단지 어떤 건물과 소수의 선생과 다수의 학생, 그리고 운동장과 같은 시설들이 발견되지만, 딱히 학교라는 것을 발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학교는 단지 그러한 것들의 집합을 이름하여 학교라는 개념으로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학교’라고 하는 무엇이 실제로 발견되지는 않는다. 개념에 익숙한 나머지 이런 말조차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우리는 개념의 세계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것을 실제와 혼동하는 아주 심한 병에 걸린 셈이다.


개념은 적어도 그 개념이 가리키는 것이 존재하니 나름의 가치 있는 이름표 역할을 한다고 믿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 역시 어디까지나 개념에 익숙한 사람의 헛된 희망일 뿐이다. 당신이 그 어떤 개념이 지칭하는 무엇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실제로 찾기 시작한다면, 결국 다람쥐 챗바퀴처럼 제자리를 맴돌 운명이 될 것이다.


딱히 그런 것이 없지만 어렴풋이 비슷하다고 간주하는 것이 개념의 또 다른 모습이다. 개념의 모양은 있지만 정작 그것과 매칭되는 대상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임의적인 것이 바로 개념이다. 예를 들어 꽃이라는 개념이 있지만, 정작 그 꽃이라는 것은 없고, 단지 그렇게 비슷한 수많은 것들이 개념 뒤에 아른 거리는 것, 그런 환영과 같은 것이 바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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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을 그냥 ‘관념’ 혹은 '생각'이라는 말로 치환해도 무방하다. 모든 언어적 생각은 '개념'의 다발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소통의 편의를 위해 여기서는 생각이나 관념을 통틀어 그냥 '개념'이라고 한다. **이런 개념의 특징 중에 핵심은 그룹화추상화 기능이다. 그룹화 또한 추상화의 한 부분이지만 강조하는 부분이 다르므로 따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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