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옮기기 : 대극의 선택

꼬리찾기 #9

by 나말록

우리는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다양한 관점을 갖게 된다. 성향에 의해 굳어진 경우도 있고 경험을 통해서 새롭게 변경된 관점을 갖기도 한다. 이런 관점의 종류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다. 그러나 그런 다양성의 뜻하는 것은 그 어느 하나도 스스로 당위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절대적으로 고정적인 무엇이 있어서 어떤 관점이 옳고 어떤 관점이 그르다고 할 수 없으며 판단은 오직 사회적의 인식과 합의에 의해 임시적으로 정해질 뿐이다. 달리 말해 그 어떤 것도 어떠한 법칙처럼 그래야만 하는 이유란 것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의식의 차원에서 대극의 어느 부분에 기준을 둘 것인지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선택의 영역이다. 당신의 꼬리는 본래 자유롭다. 삶의 어느 시점에 굳어진 과정이 있었겠지만, 본래부터 아무도 꼬리를 구속하지는 않았으므로 근본적으로는 의도적인 선택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 말은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 역시 당신에게 달려있다는 반가운 말이기도 하다. 다만 그동안은 꼬리가 자유롭다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아니 정확하게는 꼬리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으므로 옮기지 못했을 뿐이다. 그동안 살면서 경험하고 배운 것을 토대로 꼬리가 고정돼 버렸지만, 고정된 줄도 몰랐을 것이다. 이런 고정관념은 움직이기를 멈춘 꼬리의 화석이다. 나이가 들수록 고정관념은 단단해지고 쌓이는 경향이 있다.


사실 고정관념이란 말은 원래 고정되지 않은 관념이란 건 없기 때문에 ‘족발’처럼 의미의 반복이다. 관념이란 것 자체가 이미 고정되지 않은 무엇을 개념으로 고정시켜 놓은 것이다. 예를 들어 끝없이 일렁이는 바다의 움직임을 ‘파도’라는 개념으로 간편하게 고정시켜 놓은 것처럼, 개념은 언제나 상징적인 부분만을 다룬다. 그래서 모든 말과 언어는 이미 그 기본적인 단위에서부터가 고정관념이다. 이것은 생각이나 사상처럼 서술적인 고정관념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차원의 고정관념까지 전부가 그렇다는 말이다.


코끼리를 어릴 때부터 말뚝에 묶어 기르면, 커서도 그 근처를 벗어나지 못한다. 말뚝에 묶여 있던 시간이 오래될수록 말뚝과 줄에 대한 이미지는 강하게 굳어진다. 더 이상 너는 말뚝에 묶여있지 않다고 말해줘도 별로 소용이 없다. 묶여 있던 줄의 길이를 벗어나려 하지 않고 그 안에서만 생활하려고 한다. 이 믿음을 깰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더 이상 나를 묶어두는 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는 것뿐이다. 이 직접적인 경험만이 진실을 드러내고 진실에 대한 확신을 가능하게 한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꼬리가 이미 자유롭다는 것을 알아도 실제로 옮기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것은 생각과 지식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깊숙이 각인된 고정관념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식의 변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단지 아는 것만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식의 변화는 순간적이다. 노력하는 과정은 점진적이지만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매우 순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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