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기행-1

by pathemata mathemata

상민은 강릉행 KTX를 기다렸다. 서울에서 7년의 생활이 마무리되는 중이었다. 새벽행 기차이기에 하늘이 맑은지 흐린 지 알 수 없다. 서울역 열차 플랫폼에는 한국어가 아닌 알 수 없는 언어를 구사하는 낯선 이방인들이 많았다. 아니,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월요일 새벽에 그것도 강릉으로 기차를 타는 일이 정상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 비정상인들로 KTX를 절반 이상 채웠다.


상민의 옆자리는 비어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을 꺼내들었다. 1장까지 읽어나간다. 각 시대별 사상의 연관성을 의미하는 에피스테메에 대한 이해를 끝마치기 전에 졸음이 밀려온다. 어쩌면 잠들기 위해 책을 펼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겨우 1시간 남짓 지났지만 하루가 지난 것처럼 시간 감각이 좀처럼 없다. 상민은 창가 자리에 앉아있기에 풍경이 또렷이 보인다. 새하얀 설경이 그를 맞이한다. 아직 강릉에 도착하진 않았지만 강원도는 자신의 특별함을 앞세운다. 하지만 이 놀라운 변화는 지루함으로 바뀌었다. 상민은 꿈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한 채 속절없이 잠들었다.


강릉 시내에 위치한 사무실에 출근했다. 1층 로비의 경비는 상민을 경계하는 눈빛이다. 말 없이 엘리베이터까지 발걸음을 옮기자, 초로의 경비는 먼저 말을 건넨다.


"이번에 새로 오신 팀장님이신가봐요?"

"네, 맞습니다."

짧은 대화가 끝나고 그의 시선을 피해 황급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사무실은 인테리어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생각보다 아늑하여 익숙한 동굴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너무 따뜻하고 안온하여 상민은 잠시 시간이 멈추길 바랄 정도였다.


사무실의 최종 책임자인 부장에게 인사를 한다. 그는 백발의 머리를 자랑스럽게 유지하여 오히려 실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회사에서 마주친 적은 있지만 제대로 대면한 것은 거의 처음일 것이다.


"눈 많이 왔는데,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강릉에는 연고가 있나요?"

"없습니다. 몇 번 여행을 온 적은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향한 탐색전이 시작되었다.


딱히 한 일은 없지만, 시간은 금방 흘렀다. 그의 팀원은 고작 4명에 불과하였고, 전부 처음 보는 이들이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새로운 자리에 짐을 푼다. 퇴근할 무렵까지 사무실에는 거의 손님 한 명 찾아오지 않았다.

인구 20만명의 소도시에 일이 많으릴 만무했다. 다만 사무실에 첫 출근하는 사람은 상민 혼자 뿐이었기에 초기 세팅을 위해 홀로 약간 바쁠 뿐이다. 그는 살 집을 마련해야 했지만 당분간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 지내기로 했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그는 시장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사무실과 멀지 않은 강릉중앙시장에 들렀다. 시장은 평일인데도 관광지 특유의 느낌을 자아내는 인파가 몰렸다. 카카오맵 평점이 4.0을 넘는 국밥집을 찾아갔다.


국밥의 뜨거운 국물을 넘기며 창밖을 응시했다. 눈발은 멈출 생각이 없어보인다. 며칠 간 머물 장소와 최소 6개월에서 최대 2년 간 머물어야할 장소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여행지로 유명한 곳이 생활터전이 되면 순식간에 주객이 전도된다. 사파리 투어를 하는 관광객에서 사바나의 야생동물로 전락한 것이다.


상민은 식사를 마치고 팀원이 알려준 숙소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눈발보단 바닥에 쌓인 눈이 위태롭다. 호기롭게 러닝화를 신고 출근한 것은 큰 오산이었다. 새벽에는 5km 러닝을 계획했건만, 숙소로 가는 길은 아이젠이 필요할 정도이다.


톨스토이, 체호프나 고리키 같은 러시아의 소설가들이 그려낸 이미지에 부합한 공간이 눈 앞에 펼쳐졌다. 러시아의 가난한 농노들은 눈밭을 맨발로 걸었다는 대목을 떠올린 상민은 미끄럽다 불평할지언정 신발이 있음을 깊이 감사하였다.


악전고투 끝에 숙소에 들어갔다. 사모바르(러시아 전통 주전자)가 주방 한 구석에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다. 강릉에 온 것을 실감하는 하루였다. 이곳은 다른 세계의 법칙이 작동하는 소설적 공간이다.


막상 들어왔지만 상민이 할 수 있는 것은 딱히 없었다. 스마트폰의 자극적인 소셜 미디어를 탐닉하던지 졸음을 유발하는 책을 읽는 수밖에 없다. 여행의 열기 때문인지 책은 눈에 절 들어오지 않았다. 핸드폰의 연락처를 뒤적여보았다. 강릉에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직은 생활자가 아닌 여행자의 신분으로 느껴지는 기묘한 감정에 휘둘려 들어오는 길에 봐둔 숙소 근처 술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 술집은 꽤나 오래된 프랜차이즈로 이제는 다양한 형태의 이자까야에 밀려 명맥을 찾기 힘든 꼬치구이집이다. 젊은 날의 흔적을 보는 것 같아 반갑고 서글픈 마음에 테이블에 앉았다. 생맥주 하나에 모둠꼬치 하나를 시켜 스마트폰만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불현듯 생각이 떠올랐다. 강릉에 아는 사람은 없지만 강릉을 아는 사람은 있다는 사실을. 상민은 며칠 전 이전 사무실 빌딩에서 관리 업무를 맡은 분들에게 작별 인사를 남겼다. 그런데 딱 한 사람이 반색 하며 그에게 특이한 말을 붙였다. 그는 일전에도 상민이 책을 종종 읽는 것을 관찰하며 칭찬한 바 있었다.


"저도 강릉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희 누님도 여전히 강릉에 살고 계십니다. "

"아, 네." 딱히 대꾸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어색한 침묵의 틈을 비집고 경비원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팀장님, 제 연락처 알고 계시지요?" 잘 모른다. 그런데 왠지 알아둬야만 할 것 같았다.

"아, 없습니다. 연락처를 알려 주실래요?"

"여기 있습니다. 도착하시면 저에게 연락주세요. 강릉에 자주 가니 밥 한 번 먹어요."


사실 그와 상민의 나이는 아버지와 아들 뻘에 가까웠다. 연락처를 받았다고 해서 친해질 리 만무하다.


연락처를 저장했지만 전화를 먼저 할 것이라고 예상한 적은 없었다. 마치 윤대녕의 소설처럼 기억에서 지워진 명함 중에 신중하게 한 개를 골라 전화를 해보듯이 전화를 걸었다. 살짝 긴장되었다. 무슨 말을 할 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낯선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제가 전화를 잘못 건 것 같네요. 늦은 시각 죄송합니다."

"죄송한데 끊지 말아주세요. 혹시 아버지 지인 분이신가요?"

"아 네, 맞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문득 상민은 등골이 서늘함을 느꼈다. 긴장을 잠재우기 위해 김이 빠진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네, 사실 아버지가 며칠 전부터 행방불명 상태에요. 핸드폰도 두고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지셔서, 경찰에 신고까지 한 상태입니다. 아버지 핸드폰으로 전화가 오면 혹시 단서라도 될까 봐 여쭤봤습니다."

"아, 저는 사실 같은 사무실 빌딩에서 아버님과 오가면서 안 사이입니다. 워낙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제가 타지로 떠나는 날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녀는 건조하게 물었다. "실례가 안된다면 혹시 어디로 발령나셨을까요?"


점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실종이 진실인지 혹은 연락처가 진짜인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며칠 전 분명히 연락처를 주고 받을 때 그의 핸드폰 신호음이 간 것을 확인했던 것 같다. 그래서 상민은 수사에 임하는 심정으로 답했다.


"네, 이번에 강릉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저희 아버님 고향이 강릉이세요. 사실 이런 말씀 드리기 민망하지만 실종된 지 사흘이 지나도록 울려온 전화는 이 전화가 유일합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다.


"아버지가 사실 친구가 별로 없으세요. 아마도 자신과 비슷한 무언가를 발견해서 그쪽에게 이야기를 먼저 건낸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제 이야기만 늘어놓아 죄송합니다. 성함을 여쭤보지 못한 것 같아요. 저는 이은영입니다. 실례지만 이름이 어떻게 되실까요?"


그녀의 이름을 듣게 된 순간 의혹보다는 순전히 상대방의 얼굴에 호기심이 일었다. "저는 박상민입니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아, 제가 이 일로 고모 댁에 방문할 건데 강릉에 간 김에 팀장님을 한 번 찾아뵈어도 괜찮으실까요?"

"제가 은영 씨를 만난다고 해서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은데요."

"아,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기적으로 들리실 지 모르겠지만 상민 님을 만나야 제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약간의 서글픔이 묻어있었다.


"아직, 사흘 밖에 지나지 않았고 아버님은 별 일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제가 먼저 연락 드렸으니 강릉에 오시면 한 번 연락 주십시오. 다만, 제가 딱히 도움을 드릴 수 없다는 점만 양해 바랍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락 드리겠습니다."


상민은 전화 통화를 마치고 남은 꼬치구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술집에는 20년도 더 된 옛날 가요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경비원의 연락처로 전화가 걸려왔다. 최종 통화일로부터 4일이 지났다. 내심 긴장되었다. 경비원이 감사 인사로 전화를 걸었을까봐. 다행히 은영의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제가 연락이 늦었네요. 어제 늦게 저는 강릉에 도착했네요. 혹시 오늘 저녁에 퇴근하시고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아, 은영씨군요. 괜찮습니다. 다행히 오늘은 특별한 일정이 없네요."

"그러면 제가 퇴근시간, 오후 6시 맞지요? 그 시간에 맞춰 상민씨 회사 사무실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러실래요? 그러면 제가 사무실 위치를 문자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후 3시, 회의실에서 받은 은영의 전화는 상민에게 묘한 떨림을 안겨주었다. 경비원의 실종에 대한 어떤 연민조차 없이 그의 딸을 강제로 탐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화장실에 가 흐트러진 머리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지친 팔자 주름이 눈에 띄었다. 그 노화의 상징은 소크라테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는 내면의 목소리인 다이몬처럼 그를 꾸짖는 것 같았다.


'너는 늙고 지친 것을 잊고 아무 이유 없이 발정 난 중년일 뿐이다.' 상민은 누가 볼 새라 거울 속 자신을 살짝 조소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퇴근 시간이 되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사무실을 나섰다. 상민은 로비 앞에서 기다리겠다는 그녀의 문자 메시지를 기억했다. 멀리서 실루엣이 보인다.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오고 키는 그와 비슷할 정도로 큰 편이다. 젊음이 느껴져 그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살짝 위축되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민 님." 은영이 먼저 인사했다. 그녀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며 이목구비가 반듯하게 정돈된 미인이다. 그가 함부로 말을 걸기 어려운 부류의 여자임은 틀림 없었다.


"아닙니다. 은영 씨, 식사는 하셨을까요?"

"제가 식사를 사겠습니다. 혹시 근처에 식사 장소 중 괜찮은 곳 아실까요? 제가 이 곳은 초행이라."

"그러시면, 여기서 조금 걸어가면 근처에 중국 음식을 잘 하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로 가시지요."


은영과 상민은 나란히 걸었다. 둘은 가는 내내 말이 없었다. 상민의 키는 아슬아슬하게 은영보다 컸다. 그녀가 단화를 신어서 다행이었다. 상민은 혹시 목소리에 키 작음이 묻어나 자신을 배려한 것인지 그녀 몰래 실소를 터뜨렸다.


70년대 스타일 연와조 건물에 들어섰다. 외관을 바꾸지 않아 말 그대로 레트로인 붉은 벽돌의 중국집 안에는 평일 저녁인데 꽤 사람이 붐볐다. 조용한 곳보다는 아무래도 이런 곳이 대화를 이어나가기에는 좋아 보였다. 둘 사이에는 경비원과 강릉 외 아무런 연결 고리가 없었다.

상민은 깐쇼새우와 연태고량주를 주문했다.


"아버지가 강릉에 오셨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네, 아무래도 고향이시기도 하니까요."

"외출하시기 전에 특별한 징후를 느끼신 것은 없었나요?" 수사의 주체와 객체가 바뀐 것 같았다.

"없었어요." 술 한 잔 입에 대지 않고 은영은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