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기행-2

by pathemata mathemata

"강릉은 은영 씨도 자주 오는 곳인가요?"

"많지 않아요. 고모 댁에 방문한 지도 5년도 지난 일이에요."


상민은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할 지 몰라 고량주를 계속 들이켰다. 서로의 취미나 관심사를 이야기 할 수도 없으며 프로파일러 같은 예지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1분 가량의 정적을 깨고 편의적인 말을 건냈다.


"아무래도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시는게 낫지 않을까요?"

"여기서 이틀 정도 확인해보고 아버지에게 연락이 없거나 단서가 될 만한 사항이 없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에요."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될까요? 저는 사실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의 모습이 어땠는지 최대한 상세히 알려주셨으면 해요."

"자못 사무적이셨습니다. 아쉽거나 슬픈 표정을 지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그런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다만 연락을 해야 할 의무를 지워주신 듯한 느낌만 받았어요. 그게 전부입니다."


상민은 은영에게 사소한 단서라도 줬으면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원래 자주 만났던 사무 공간에서 본 것이 전부였으니까. 생각해보니 실종된 그 사내의 이름조차 잘 기억하지 못했다. 따라서 상민은 핸드폰을 꺼내 다시 한 번 이름을 확인했다.


이중민 - 이름은 평범했고, 몇 번 노력해야 기억할만한 느낌이다. 사실 그에게 받은 인상도 그의 이름과 닮아 있었다.


저녁 8시가 가까워졌다. 가게의 손님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하나 둘 떠나 그들만 남았다. 종업원들은 부산하게 주위를 정돈하며 이들이 언제 일어나 계산을 할 지 눈치를 살피는 중이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내일 토요일인데 특별히 일정이 없으시면 저와 아버지를 찾으시는 일을 같이 해주시면 어떨까요? 사례는 꼭 하겠습니다."

"글쎄요. 고모 분과 같이 찾아 보는게 어떨까요? 저도 여기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리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의 냉담한 태도에 은영은 약간 얼굴을 붉혔다.

"상민씨 입장 충분히 이해하고 이기적이라 죄송합니다. 공연히 시간을 뺏게 해드렸네요."

계산은 은영이 했다. 상민은 그녀가 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은영은 빠른 걸음으로 상민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상민은 묘한 승리감에 휩싸였고, 동시에 전신으로 고독감이 밀려왔다. 20대의 그였다면 반드시 도와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 간 풍진을 뒤집어 쓰고 난 상민은 풍차 거인과 싸우는 기사도 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다.


상민은 숙소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은 발 한 발자국 내딛기조차 싫은 질퍽한 눈길이다. 문득 홍상수의 영화 <북촌 방향>이 생각났다. 하지만 현실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식의 엔딩이다.


숙소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하기 전 괜한 허전함에 기계적인 자위를 했다. 사정을 마치고 나니 정신이 허탈감에 또렷해졌다.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 매튜 매커너히가 월스트리트에서 살아남는 방법으로 '자위를 많이 해라'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가르친 것이 생각났다.


토요일이 되었다. 은영은 아마 혼자 혹은 고모와 같이 상민의 반경 주변부를 배회할지 모른다. 빠르면 당일 아니면 다음 날엔 강릉역에 기차를 타고 떠날 것이다. 상민은 무언가 신경 쓰이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모른 체 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을 것 같다.


아침부터 날씨가 좋았다. 대관령을 사이에 둔 서울과 기온 차도 크게 나지 않을 따뜻한 봄 햇살이 느껴졌다. 상민은 숙소 근처 헬스장을 알아보려고 결심했다. 스마트폰 지도 어플(APP)에 봐둔 곳을 한 번 씩 찾아다녔다. 가격과 기구를 꼼꼼히 확인하고 신중하게 장단점을 비교했다. 정오가 다 되어 불현듯 그에게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이중민'이었다. 아마도 은영일 것이다. 반가운 전화처럼 느껴졌다. 무의식이 상민을 들뜨게 만든 것이다. 그것은 사건의 해결을 바라는 순수한 마음은 아니었다.


"여보세요?"

"이은영입니다. 무턱대고 아버지를 찾는데 한계가 있을 것 같아요. 조언해 주신 대로 서울로 돌아가 경찰에 신고 접수를 하는 것이 최선 같습니다. 상민 씨를 어쩌면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여겼고, 그래서 만나뵈었기에 후회는 없네요.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아버님이 무사히 돌아오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버지를 찾게 되면 꼭 연락 드릴게요."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뭐라고. 부디 좋은 일만 있길 바랍니다. 조심히 올라가세요."


상민은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리곤 문득 씁쓸해졌다. 오래된 친구를 잃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은영에 대한 괜한 성적 호기심 때문에 그랬을 것이기에 가혹하게 스스로를 다잡았다.

상민의 헬스장은 늘 그랬듯이 숙소와 가까운 곳으로 정했다. 허름했지만 운동기구는 충실하게 갖춰진 곳이다. 헬스장 관장은 상민보다 10살 쯤 많은 중년의 아저씨이다. 3개월 회원권 결제를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신상에 대한 질문이 온다.


"여기 분 아니신 것 같은데 어디서 오셨어요?"

"서울에서 왔습니다."

"아, 그러세요? 저도 운동할 때 서울에서 산 적이 있어요. 20년 전에 강남에서. 지금도 거기에 형제들이 있어요."

"네, 그랬군요."


상민은 이어지는 대화를 피하기 위해 단답형으로 답했다. 문득 실종된 이중민의 20년 전을 상상해 보았다. 헬스장 사장보단 연배가 높았으나 분명 그와 비슷한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시간은 서서히 한 세대를 조금씩 소멸하게 한다. 그 멸망의 퍼레이드에 상민도 자기도 모르게 동참하였다.


헬스장이 쉬는 일요일이 되었다. 상민은 숙소 주변에 있는 남대천을 걸었다. 취미로 하는 달리기를 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눈이 군데군데 쌓여있었다. 천변은 바람의 길이다. 하지만 서울의 한강에 비해서는 바람의 세기는 미약했다. 잘 정돈된 한강과 달리 콘크리트 길에 가로등도 많지 않은 투박한 곳이다. 또한 이 곳은 해마다 단오제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행사 기간 동안 쉼 없이 굿을 한다는 사실을 떠오르니 조금 소름이 돋았다. 생각해보면 강릉에는 점과 타로를 보는 곳이 많았다. 기독교 교회 역시 다양한 종파가 있었다. 문득 상민은 낯선 영적인 세계에 온 느낌이 들었다. 상민은 걸어가는 중 마주치는 사람은 보기 드물었다. 어쩌면 사라진 이중민을 마주칠 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 사는 사람이 식사를 하는 것은 연명하는 느낌을 들게 한다. 강릉은 일요일에 식당 중 영업을 하지 않은 곳들이 많았다. 점심은 편의점에서 바나나우유와 햄버거, 캔커피를 사서 숙소로 들어갔다. 주말 숙소는 같이 거주하는 남직원은 가족들을 찾아 떠나 텅 비어있다. 편안하면서도 외로웠다. 그리고 상민은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저녁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저녁은 나가서 먹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밤샘하는 사람들(Nighthawks)> 느낌처럼 강릉에도 미국식 간이식당인 다이너(diner)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국밥집이 딱이다. 남대천을 걸으며 눈여겨 본 콩나물국밥 집에 들어갔다. 상민은 식사를 기다리는 중에 문자가 와 있음을 확인했다.


이중민, 아니 이은영의 문자이다.

"경찰에 실종 신고 했습니다. 혹시 경찰에서 연락이 갈 수도 있을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립니다. 매번 죄송합니다."

상민은 답장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망설여졌다. 아마도 경찰에서 연락이 올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증언에 따라 모를 일이다. 제대로 잘못 엮인 것이 아닌지 후회가 들었다. 왜 하필 그때 전화를 했을까?

"아닙니다. 아버님께 먼저 전화한 것은 저인데요.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성실히 협조하겠습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적어도 본격적인 노화를 겪는 상민의 주관적 경험 아래에서는 그렇다. 눈꽃이 지고 벚꽃이 피는 4월이 되었다. 사쿠라라고 불렸을 식민지 조선의 꽃은 100년이 지난 지금 지역 축제의 주인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상민은 서울과 이름이 동일한 강릉의 남산공원을 거닐었다. 추위 덕분에 개화 시기가 늦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축제가 열렸다. 절반 이상의 벚나무에는 꽃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LED 창에는 벚꽃이 흩날리고 합창단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상민은 빈 의자에 앉아 잠시 한가로움을 만끽했다.


그에게 문자가 왔다. 발신자는 모르는 번호였다.

"오늘 저희 아버지께서 귀가하셨습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 이은영"

뭐라고 답장을 써야 할 지 난감했다. 한참을 고민 끝에 전송 버튼을 눌렀다.

"정말 다행이네요. 아버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무탈하시길 빕니다."


공원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초조하게 시간을 보냈지만 이후 은영의 문자는 다시 오지 않았다. 망설임 끝에 그녀의 핸드폰 번호를 저장했다.

축제에는 먹거리를 파는 부스도 없었고 다만 부녀회에서 자원봉사로 축제 방문객에게 믹스커피를 주었다. 상민은 카페인이 당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쉬움에 커피를 얻어 마셨다.

그 때 다시 한 통의 전화가 그에게 걸려왔다. 이번에는 놀랍게도 이중민의 번호였다. 상민은 전화 받기 망설여졌다. 마치 죽은 혼에게서 걸려 온 전화가 아닌가 싶었다.


전화는 집요하게 울려댔다. 커피를 채 다 마시지 못하여 한 손이 부자연스러운 상태로 사람들이 드문 곳으로 천천히 자리를 이동했다.


"여보세요?"

"상민씨 맞습니까? 저 이중민입니다. 딸에게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신세를 끼친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전화기로 전해온 중년의 목소리다. 사실 상민은 그의 목소리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따라서 그가 정말 이중민이 맞는지 조금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아닙니다. 별 일 없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저에게 먼저 연락 주셨는데 하필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져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 무슨 일 있으셨을까요?"

"사실, 잠시 머리를 비우러 강릉에 다녀왔습니다. 가끔 제가 저만의 동굴을 찾아 떠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핸드폰을 두고 가신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가족들이 많이 걱정했을텐데."

"사실, 가족이라고 해봐야 외동딸인 은영이 전부입니다. 배우자와는 헤어진지가 좀 되어서."


중민의 불필요한 TMI 덕분에 상민의 궁금증은 많이 해소되었다. 그런데 본질적인 질문이 남는다. 과연 그가 이중민이 맞는 것일까?

중민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괜찮으시다면 상민 씨를 한 번 뵙고 싶네요. 불필요한 사건에 휘말려 불편하셨을 것 같습니다. 제가 식사라도 제대로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닙니다. 이미 따님이 저번에 저녁을 사주셨습니다.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행방을 알려고 대가가 있었던 저녁인 것으로 압니다. 저는 순수한 보답의 저녁으로 함께하고 싶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 딸과 함께 같이 만나도 괜찮을까요?"


대가가 있었다는 말이 묘한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중민의 의지는 꽤나 확고했다. 상민은 굳이 강릉까지 와서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부담감에 어떻게 할지 망설여졌다. 5초 정도 침묵이 흘렀다. 중민은 상대편의 확답을 듣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듯이 밀어 부쳤다.


"제가 너무 막무가내 같으실 거라 생각하시겠지요. 하지만 마음의 짐을 지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노욕을 너그러이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까지 말씀해주시니 정말 거절하기 어려울 따름이네요. 그러시면 오시기 편한 날을 알려주세요." 상민은 내심 기대와 한숨을 교차해가며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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