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당장이라도 강릉으로 올 것 같은 중민에게 연락은 없었다. 은영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상민은 중민이 어떤 모습일지, 은영과의 재회 모두 호기심의 영역 이상의 감정은 없었다.
돌아오는 토요일 부친의 기일을 맞아 상민은 고향인 광주로 향했다. 강릉에서 광주까지는 400km 넘게 떨어진, 말 그대로 천 리 길이다. 이 경로는 바로 가는 버스도 없고, 기차로 가더라도 서울을 경유해야 한다. 상민은 쉬지 않고 가도 5시간 이상 걸리지만 운전해서 가기로 결정했다.
상민은 하루 휴가를 내어 금요일에 출발했다. 다행히 날씨는 맑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고 5월 답게 날씨의 절정을 뽐내었다. 지나가는 중에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대전에 들렀다. 혼자 점심을 먹고 식당에 잠시 차를 주차해두고 카페를 물색했다. 골목길의 분위기는 밝은 날씨와 대조 되는 침통함이 있었다. 바로 재개발 지역인 것이다. 햇살 아래 투명하게 속을 내비치는 바람 한 점 없는 해수욕장에서 주인에게 기어코 버려진 강아지처럼 서글픈 풍경이었다.
카페는 버려진 단독 주택을 정성 들여 개조한 것으로 보였다. 몇 년 후에 이 카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재개발 지구라는 눈에 띄는 유한성(有限性)이 카페가 가진 찰나의 아름다움을 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집주인 없는 집에 손님이 가득 차 앉을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커피를 테이크 아웃 주문하였다. 카페 이름은 예전 집주인의 이름을 땄다. 시인 호메로스가 노래한 <일리아스>의 주인공 아킬레우스는 펠레우스의 아들이 아닌가? 고답적인 공간에 상민은 부친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박동해의 아들 박상민." 나직히 그는 자신의 이름 앞에 아버지의 이름을 붙여 불러 보았다. 저승과 이승을 잇는 핏줄의 흔적은 이제 한갓 단어의 나열에 불과하다.
박동해의 삶과 죽음은 조금 비정상적이었다. 박동해의 직업은 선원이었다. 그는 집에 거의 지내질 않았다. 배는 느렸고, 한 번 항해를 마치고 오면 1년은 훌쩍 넘어 있었다. 그 기나긴 사이클을 20번도 채우지 못한 채 상민은 아이에서 성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30 여 회를 반복한 어느 날 그는 자신이 거처로 삼던 배에서 생을 마감했다. 한 달 뒤에 배가 한국에 도착하면 상민을 포함한 가족들을 보기로 한 약속은 지켜질 수 없었다. 대신, 아버지 박동해의 죽음은 그의 삶이 주기성을 띠듯 다시 일 년의 세월로 반복되어 아들 상민에게 유일한 실체로서 등장하였다.
상민이 광주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이었다. 상민의 집은 이제 예전 모습이 아니었다. 상민의 어머니 김영희는 얼마 전 인테리어 공사를 하였다. 새집 냄새가 묘하게 신경을 자극했다. 그것은 예전 삶과 결별하는 축문(祝文) 같았다.
"식사는 밖에서 하자. 돼지 갈비 괜찮지?"
상민이 사회 초년생으로 결혼 전 타지 생활을 하다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LA갈비를 재워 손수 구워주셨다. 사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고기는 꽃등심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늘 양념을 재운 LA갈비를 선호하셨다. 언젠가 그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취향을 고백한 적 있었다.
"네가 좋아하는 LA갈비 할 까 하는데 어때?"
"사실 저 그거 별로 안 좋아해요."
아들의 말을 듣고 어머니는 비로소 의무감을 벗으신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알았어. 이제 안 할게,"
그날 이후 어머니는 한 번도 LA갈비를 구우신 적이 없었다. 상민은 어쩐지 서운했고 여전히 그렇다. 상민은 어머니가 운전하는 차에 타 식당으로 이동했다.
"여기 식당 서울에도 분점이 있었어요. 그런데 얼마 안되어 폐업 했어요."
"그랬니?"
어머니는 상민의 시시한 이야기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언제 여기로 돌아올 수 있니?"
"글쎄요. 회사 발령이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서요."
상민은 차려진 나물 반찬 한 점을 무심히 집어먹었다.
"너 이혼하는 과정에서 내가 많이 도와준 것 같은데, 그건 잊었니?"
"그 점에 대해서는 늘 감사합니다."
상민은 할 말이 없었다. 엄마와 아들의 관계도 사회적 교환 관계가 성립하는지 몰랐다. 부모가 주면 자식은 받아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와서 보니 근거 없는 믿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어머니의 집'에 들어가 보니 침대가 사라졌음을 뒤늦게 알았다.
"침대가 없어졌네요."
"응, 너무 오래되어서 버렸다."
"그러면 저는 거실 쇼파에서 자겠습니다."
"다음에 침대를 새로 사둬야겠네."
"저는 괜찮습니다. 자주 오는 것도 아닌데요."
"아, 이번에 공사하면서 네 방에서 소지품을 모아뒀다. 필요한 것 있으면 가져가거라."
상민이 어머니가 가리키는 방향을 살펴보니 두 개의 박스가 베란다에 휑뎅그렁하게 놓여있었다. 박스는 꼼꼼하게 밀봉되어 있었다. 타임 캡슐 같은 상민의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대학생, 사회 초년생의 기억들이 남겨있었다. 대부분 게임CD, 음악 테이프 등 이제는 거의 사용할 수 없는 잡동사니들이다.
어머니 김영희는 아들 박상민의 과거를 자신의 아들의 손으로 직접 청산하게 했다. 상민은 개인정보가 들어있어 따로 파기해야 하는 것들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을 버렸다. 그리고 밤이 익어감에 따라 이유 없이 서글펐다.
다음날 어머니와 아들은 시에서 운영하는 공동묘지인 영락공원에 갔다. 이번에도 상민은 어머니의 차에 탔다. 상민은 늘 다이소에서 산 조화를 준비해 갔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세히 보니 다른 이들의 무덤에도 다이소에서 산 조화가 눈에 띄었다. 가격표가 눈에 띄어 씁쓸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적어도 상민은 가격표는 뗐으니 다행이었다고 안도했다.
기독교인이신 어머니 김영희는 늘 남편을 위해 절 대신 기도한다. 무신론자인 상민 역시 묵묵히 어머니의 기도를 들었다. 상민은 어머니에게 LA갈비처럼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밝혔다. 이후 몇 달 간 그들의 관계는 조금 소원해졌다. 하지만 매번 하는 기도였고, 그들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민이 무신론자이건, 어머니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건 상관없는 일이었다.
상민은 간소한 성묘를 마치고 강릉으로 다시 돌아갔다. 헤어지는 길에 어머니는 인테리어 공사 후 받은 집들이 선물 휴지를 상민에게 주셨다.
강릉으로 돌아가는 길은 다시 한 번 천 리 길이다. 상민은 졸음을 참아가며 운전했다. 차량과 블루투스로 연결된 전화가 요란스럽게 소리를 냈다. 친구인 손영일이다. 사실 상민은 친구가 거의 없기에 사실상 유일하게 연락을 하고 지내는 친구이기도 하다.
"잘 지내? 한 번 연락해봤어."
"그래, 결혼생활은 어때?"
영일은 상민에 비해 결혼이 늦은 편이었다. 물론 현재는 상민은 '미혼'이므로 의미 없는 비교였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지금도 서울이야?"
"아니, 나 금년 상반기 인사 때 발령 받아 강원도 강릉으로 이사 왔어."
"그래, 언제 강원도 한 번 놀러 가 봐야겠네."
"그래. 내가 맛집 잘 알아 둘테니 와이프와 한 번 놀러 와."
영일도 광주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다. 상민은 광주에 내려갔을 때 영일을 볼까 생각했지만, 신혼 생활을 하는 유부남 친구를 주말에 부를 수는 없었다. 이제는 친구와 커피 한 잔 마음 놓고 마시기에 편하지 않은 상황이다. 하물며 그가 강릉에 온다고 하더라고 얼굴을 볼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상민은 강원도에서는 영일을 볼 수 없을 거라고 단정 지었다.
상민이 회사 숙소에 도착하니 5시가 조금 못되었다. 피로를 녹일 요량으로 숙소 근처 치킨을 파는 호프집에 갔다. 족히 30년 이상 영업을 지속해 왔을 노포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을까?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은 불귀의 객이 되었거나 혹은 요양병원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상민 역시 반들거릴 정도로 닳아버린 긴 나무 의자에 앉음과 동시에 무수히 명멸해 가는 대열 중 하나가 되었다.
상민은 치킨 한 마리를 온전히 먹어본 적이 없지만 호기롭게 주문하고 맥주도 500cc를 주문했다. 늘 붐비는 식당이지만 약간 이른 시간에 도착하여 손님은 몇 명 없었다. 반 마리 정도 양의 치킨을 맥주와 함께 하니 벌써 배가 부르기 시작했다. 상민은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대부분 강릉 주민들로 보였다. 하긴, 이 곳이 관광지와 동떨어진 주택가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치킨의 나머지를 먹는 것이 고역으로 바뀔 무렵이었다. 왠지 익숙한 실루엣이 등장했다. 상민이 다니는 헬스장 사장이었다. 그에게는 일행이 2명 있었다. 남자 1, 여자 1. 무엇보다 짝이 안 맞고 분위기 상 부부 동반은 아닌 듯 했다. 실수로 그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회원님, 여기서 뵙네요."
"아, 그러게 말이에요. 여기 자주 들르시나봐요?"
그는 상민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일행들에게 상민을 소개했다.
"여기, 내가 운영하는 헬스장 회원님. 강릉 오신지 몇 달 안되셨다고 해."
상민은 정말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들과 목례를 했다. 바로 나가긴 그렇고 치킨 한 조각만 더 먹고 계산하고 나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 때 헬스장 사장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니, 술을 혼자서 드시고 계셨네요."
딱히 대답할 새도 없이 그가 이어서 말했다.
"괜찮으시면 저희랑 합석해도 될까요?"
상민은 곤란한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빠르게 답했다.
"저는 거의 다 먹어서 이제 계산하려고 합니다."
헬스장 사장은 전혀 굴하지 않았다.
"아, 그러시면 2차를 하시지요. 옆 가게 감자탕 집에 가시는 것이 어떠세요? 제가 사겠습니다."
사장이 일행들의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인지 몰라도 그들은 갑작스러운 그의 변덕에 순순히 따랐다. 상민은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헬스장을 계속 다녀야 하는 상황 때문에 그의 제안에 수긍하였다.
장소를 옮겼다. 이 식당도 호프집 만큼이나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상민이 얼마 전까지 살던 서울에는 오래된 가게가 별로 없다. 강릉은 오히려 새로운 가게가 흔하지 않다. 마치 이 곳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귀하듯이 사람들의 식성도 크게 변하지 않는 것이다.
감자탕이 끓어오르고 통성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먼저 헬스장 사장이 말했다.
"아, 제가 이름을 말씀드리지 못했네요. 저는 신종구입니다."
다른 이들도 각자 제 이름을 말했다. 이수민이라는 30대 초반 여자와 신형규라는 상민과 비슷한 또래의 40대 남자였다. 상민도 이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공개했다.
"박상민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색한 침묵이 자리 잡기 전에 신종구는 자신들이 오토바이 동호회 회원임을 밝혔다.
"오토바이면 할리데이비슨 타시는 거 맞지요?"
"네, 맞습니다. 팔 이렇게 올리고 타는 것."
신종구는 근육 덕분에 더 짧아 보이는 팔을 한껏 치켜 올리며 자학적인 개그를 하였다.
당연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이들은 전부 강릉 사람들이었다. 상민 덕분에 어색함을 깨기 위해 소주잔이 자주 부딪쳤다. 1인 당 1 병 정도 마신 것 같다. 취기가 오르자 상민의 얼굴도 취기로 붉게 달아올랐고, 마음의 빗장도 조금 풀려났다.
이 술자리의 유일한 여자인 이수민이 입을 열었다.
"어제 서울에서 제 사촌이 왔어요. 혼자 심심할텐데 여기 불러도 될까요?"
신종구는 무언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자야? 여자면 무조건 불러야지!"
"나이도, 얼굴도 모르면서 도대체 저 오빠는 왜 저럴까?"
상민은 평범한 외모의 수민이지만 그녀의 뾰루퉁한 표정이 귀여웠다. 아무래도 비어 고글 효과 때문이겠지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