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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의 남은 생(生)

by pathemata mathemata

4월의 꽃가루가 남기고 간 흔적을 지우지 않고 방치해둔 주방 창문에 한 낯선 생명체가 달라붙어 있었다. 아내가 내게 물어보았다. "저 벌레가 뭐야?"


나는 슬쩍 이 곤충을 보니 하루살이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하루살이 같아."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를 피해 힘겹게 사진을 찍은 후 구글 렌즈로 검색해 보았다. "하루살이 맞네. 어떻게 알았어?"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예전에 한 번 본 것 같아서. 운 좋게 맞췄네." 불운하게도 이 퀴즈쇼에 상금은 없다. 몇 시간이 지난 후 주방의 창문에 가보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하루살이 사진을 문자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아내는 살짝 귀찮아하며 보내주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본 하루살이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있을까? 하루살이는 사실 유충일 때 1년 정도 생존한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하루살이는 아니다. 다만, 성충이 되면 1~3일 정도만 생존할 수 있다고 한다. 매미나 나비 같은 대개의 곤충들이 그렇듯이 하루살이 역시 짝짓기를 마치면 죽는 것이다.


하루살이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같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만 놓고 봐도 노년으로 접어들수록 뇌의 노화로 인해 시간이 짧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뇌가 없는 하루살이를 의인화하는 것은 꽤나 억지스럽긴 하지만 하루살이가 인간과 비슷한 노화과정이 있다면 분명 성충일 때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집 유리창에 붙어 쉬고 있던 그 시간은 일분일초가 소중했을 것 같다. 하루살이에게 보다 깔끔하지 못한 장소를 제공해서 미안할 따름이다.


하루살이에 센티멘털한 감상을 쏟을 수 있는 것은 이 녀석의 수명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꽤나 한가하게 하루살이에 대한 글을 쓰는 것 역시 통계청에서 해마다 발표되는 생명표 상 연령별 생존확률을 알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안심할 순 없다.


"날마다 거울을 보고 오늘이 당신의 마지막 날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언젠가는 맞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죽기 몇 해 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강연에서 이렇게 농담했다. 거울을 보며 날마다 하루를 소중히 보낼 것을 다짐했던 스티브 잡스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하루살이이다. 잠을 자는 것을 하나의 죽음으로 본다면 '하루'는 '하나의 인생'인 것이다.


하루하루는 하나하나의 인생이다. - 세네카


한편으로 노년의 부부가 안락사를 택하기 전 24시간 동안 젊은 날로 돌아간다는 설정으로 감동을 주었던 5 Seconds of Summer - Youngblood 뮤직비디오가 생각나기도 한다. 젊은 날은 찬란하고 계절이 바뀌면 다시 꽃을 피우는 나무와 달리 재현될 수 없기에 소중하다.


인간은 곤충인 하루살이와 달리 유년기(유충)일 때보다 성년(성충)으로 사는 시간 훨씬 길다. 하루살이의 날개 달린 멋진 성충으로 변신한 삶의 정상에서 삶을 마감해야 한다. 현대 문명의 혜택으로 인해 인간은 대체로 젊음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를 감사하며 마무리해야겠다.


https://youtu.be/-RJSbO8UZVY?si=9eq59wO7KXyCc2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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