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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같은 현실

by pathemata mathemata

가끔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내는 내게 가끔 이렇게 체념하듯 말한다. "이건 꿈일 거야." 사실 혼잣말일 수 있는데 구태여 나는 아내의 말에 대꾸한다. "아냐, 이건 현실이야."


이 대화 패턴이 진부해졌는지 몰라도 아내가 꿈일 것이라고 현실을 부정할 때 이제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꿈같은 현실을 사는 게 어때?" 아내는 진저리 친다. 진저리치고 싶을 만큼 좋은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어쨌든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꿈인가 생시인가, 놀라운 일을 접하면 간혹 쓰는 말이다. 장자의 나비 꿈(호접몽) 이야기처럼 꿈과 현실은 매우 닮아있다. 엄밀히 말하면 인간의 뇌에는 눈이 달려있지 않다. 가느다란 시신경과 연결되어 있을 뿐이지 한 줌의 빛줄기 하나 들어오지 않는 '두개골(통) 속의 뇌'일뿐이다.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하얀 팀이 공을 몇 번 패스했는지 확인하다가 지나가는 고릴라 탈을 쓴 사람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많은 것을 놓친다. 즉,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다. 우리가 보는 시각이란 우리가 선별한 것들의 총합일 뿐이지 실제의 총합은 아닌 것이다. 긍정적인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실제적인 현실 왜곡을 가져오는 인간의 인지력 때문이다.


그렇다면 꿈이 눈앞의 현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가끔 예지몽 같은 꿈을 꾸는 이야기도 들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로또 번호를 알려주는 조상님 같은 것 말이다. 이러한 미신 덕분에 악몽을 꾸면 행여 '흉몽 즉 대길'이라는 춘향전의 한 소절을 떠올리면서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나도 모르게 구글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꿈 역시 우리의 경험 외에는 아무것도 재현해 낼 수 없다. 행여 영화나 드라마에서라도 봤어야만 우리의 뇌는 과거의 기억을 조합해 내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꿈과 나쁜 꿈은 어떤 의미도 갖고 있지 않다. 수면 중 시신경 다발과 잠시 연결이 꺼진 내 머릿속에서 과거의 기억들을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결국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꿈과 현실은 뇌가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앞서 아내가 이야기 한 꿈같은 현실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 보자. '꿈같은 현실'이 존재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꿈=현실'일 수 없다. 꿈은 '현실화'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집밥을 먹는 꿈을 꾼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누군가 식재료를 사서 요리를 해야만 한다. 꿈과 현실 사이에는 이러한 엄청난 생략이 존재한다. 내가 집밥을 먹는 소박한 꿈이 현실화된다면 방금 전 아내가 주방에서 요리를 한 덕분인 것이다.


대체로 이 정도를 꿈같은 현실로 규정하진 않기 때문에 좀 더 거창한 꿈으로 넘어가 볼까? 이를테면 물려받을 재산도 없는 평범한 월급쟁이가 '강남 아파트 한 채'를 갖는다는 것은 어떤 현실화가 필요할까? 상당히 다양한 단계와 비범한 능력이 들어가야 하는 데다 성공 확률도 있어야 한다. 이 경우 꿈은 현실화의 문턱을 대체로 넘지 못할 것이다.


아내는 지금 자신 앞에 펼쳐진 현실이 아니길 원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 현실은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다시 현실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내가 바라는 이데아를 재현할 수 있는 새로운 현실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아내는 그저 "이건 꿈이야."라고 단정 짓는다. 나 또한 아내의 꿈에 대한 현실화를 위한 계획표를 수립하는 대신 "꿈같은 현실"이라고 말할 뿐이다.


꿈은 그렇게 계속 현실과 평행선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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