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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 빠진 호랑이

by pathemata mathemata

나는 관찰 예능이지만 실상은 거대한 인간 실험장인 SBS 플러스 <나는 솔로> 시리즈의 애청자임을 고백한다. 여러 출연자들이 다른 출연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덕분에 티격태격하는 것을 보고 결혼한 나로서는 "이래서 결혼을 못 했지, 저래서 이혼했지."라며 승자의 지위에서 여유롭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들이 과연 성격이 이상해서, 혹은 이상형이 지나치게 높아서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되지 못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10년 넘는 결혼생활을 통해 여전히 아내와 나는 부딪치는 일이 잦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 충돌 지점이 이미 알고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왜 계속해서 마찰이 일어나는 것일까? 심리학에서 성격은 기본값이라고 상정하고 있듯이 우리의 기본적 성향은 거의 변함이 없다. 그래서 MBTI가 수년째 유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는 기본적 가정에 동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개인의 독특한 성격은 행동양식을 규정하기도 한다. 나의 취향과 사고방식을 따르다 보면 같이 살고 있는 이가 갖는 개성과 필연적으로 충돌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면 확률적으로 100%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결혼을 경험해 보지 않았더라고 해도 부모, 형제와의 마찰을 무수히 겪었을 것이다. 그런데 완전히 혈연관계가 없었던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호르몬의 변화를 일으키는 감정과 결혼이라는 민법적 계약관계 등에 엮여 의무적으로 산다면 얼마나 더 힘들지 예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10년이 넘어가니 앞서 말한 충돌을 어느 정도 예상하여 대비하기 때문에 결혼생활에 눈에 띄는 마찰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포기'라고 묘사된다. 그러니까 타인에게 바라는 기대가 사라지는 것이다. 조금 포장해서 말하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바뀌길 바라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존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존중이 타인과 다름에 대한 똘레랑스적 개념은 아니다. 그러니까 화가 나더라도 예상되는 행동 패턴이므로 정지선에서 빨간 불을 기다리듯이 감내하는 것이다. 겉보기에 싸움이 없을지언정 잔잔한 호수 위를 떠다니는 백조의 수면 아래 쉴 새 없는 물갈퀴질처럼 분노 조절(anger management)에 힘쓴다. 그렇게 부부는 점차 서로의 욕망을 거세해 가며 조금씩 기대치를 낮춰 서로 수렴해간다. 우리는 이를 '닮아간다'라고 점잖게 표현한다.



진보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라. 호랑이의 송곳니를 뽑아서 죽밖에 못 먹는다고 해도 가슴속은 여전히 육식동물이다. - 귀스타브 플로베르,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재인용


프랑스의 소설가 플로베르가 말했던 것처럼 이빨을 뺏긴 호랑이가 채식동물이 되는 일은 없다. 결혼생활에 의해 서로에게 길들어진 유부남, 유부녀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본래 성격은 여전히 존재한다. 슬프지만 자신의 성격을 상대방에게 온전히 드러내면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결론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채식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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