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조선호박(둥근호박)으로 조림을 만들어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 조선호박은 한국의 재래종 호박 중 하나로 늙은호박(맷돌호박)처럼 크지 않다. 커봐야 멜론 정도이다. 한식의 조림은 찌개처럼 생겼지만 국물이 별로 없어 사실은 반찬에 가까운 음식이다. 반찬이기도 하고 밥과 같이 비벼 먹으면 메인 음식이기도 하다.
나는 돼지고기가 들어간 칼칼한 애호박 찌개를 좋아한다. 하지만 아내는 그저 새우젓으로 맛을 낸 호박조림을 좋아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어린 시절 아내에게 호박조림을 해준 장모님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경험한 입맛이 평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아내는 입맛이 지금보다 더 까다로워 채식 위주의 식단이었고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내 기호에 따라 돼지고기를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야채는 딱히 좋아하지 않지만 내게 호박조림은 학창 시절 급식을 하느라 종종 맛보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먹었던 맛없던 그 음식이 입맛이 맞아가는 것을 보면 나 역시 얼굴뿐만 아니라 뱃속까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급식을 담당했던 조리사의 나이 역시 젊은이는 많지 않았을 테니 아무래도 자신들이 잘하고 좋아하는 음식이 식탁 위에 오를 확률이 높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유행이 돌고 도는 것 역시 패션 디자이너들의 나이를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나는 여전히 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단백질이 한 끼 식단에 없으면 늘 먹은 것 같지 않다고 불평하곤 했다. 호박조림이 오른 저녁 식탁에도 나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아내는 주꾸미 삼겹살을 곁들여 내었다. 식사가 시작되니 아내는 주꾸미 등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내가 고기도 먹길 권하니 아내는 호박조림이 맛있다고 답할 뿐이었다. 결국 잘 차려진 고기는 나의 몫이 되었다. 물론 나도 최대한 성심성의껏 호박조림을 먹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고기를 먹느라 전심을 다해 호박조림에 할애하기는 역부족이었다.
호박조림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은 음식에 대해 좀 더 너그러워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언젠가 고기가 소화가 잘 안되는 나이가 찾아온다면 호박조림이 나를 다독여줄 것 같다. 그전까지 아직은 내게 호박조림은 반찬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내에게 호박조림은 메인 요리이고 그 음식을 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