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지인의 부탁으로 5년에 한 번 하는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 조사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 일은 가구마다 방문하여 설문조사를 하는 것이다. 나는 아내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영 마뜩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마주칠지 알 수 없어 꽤 불안했던 것이다. 처음에 권유받았을 때 나에게 상의해서 나는 불안함을 표현했다. 그래서 아내는 지원하지 않기로 했으나 갑작스럽게 지인이 일하던 사람이 빠졌다고 읍소하는 바람에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에게는 통계청 자산이라고 적힌 태블릿PC가 주어졌다. 여기에는 설문조사표가 프로그램으로 내장되어 있고 지도 역시 GPS로 동선 확인이 가능하였다. 좋게 보면 예전보다 일이 편해진 것은 사실이나 나쁘게 보면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는 셈이다. 어쨌든 내 입장에서는 그나마 관리자가 아내의 행방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심 다행으로 여겨졌다.
며칠 일을 적응하느라 고생했던 아내는 평소 성격대로 열심히 일해 금방 다른 사람들 몫을 따라잡았다. 나도 약간은 안심이 되었지만 태블릿PC 외에 조사원들에게 주어진 고성능 호루라기를 꼭 가지고 다니라고 부탁했다. 아내는 별일 없을 것이며 짐만 늘어난다고 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이후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러시아어 설문조사를 챗 GPT로 만들었으니 출력을 좀 해오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자초지종을 설명 들으니 사정은 이랬다. 어느 원룸촌에 인구주택 총 조사를 하러 갔더니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출신 러시아어를 쓰는 이들이 집단으로 거주한다는 것이다. 나는 또다시 걱정이 되었다. 일단 원하는 대로 설문조사표를 약간의 수정을 거쳐 출력하여 주었다. 아내는 낮 시간을 이용해 이 자체 제작한 러시아어 설문지를 이용해 다양한 사생활 정보를 요구하는 조사에 성공했다. 저녁에 한 번 더 방문해야 한다고 해서 기꺼이 따라나섰다.
퇴근 후 회사 앞에 만난 아내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원룸이 위치해 있다고 하여 걸어갔다. 그곳은 어느 식당의 2층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했다. 사실 그냥 지나가면 그 건물에 원룸이 있으리라고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입구는 꽤 흐릿한 표정이었다. 계단에는 한국어와 함께 러시아어로 무언가 주의 사항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 건물에는 각 층별로 6~7개의 원룸이 있었다. 복도라고 부르기 협소한 공간을 마주하고 빽빽하게 삶의 터전을 나누었다. 각 원룸에는 벨조차 없었다. 맨 처음 호실 문을 아내가 두드리니 인기척만 들릴 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다음 호실에는 20대 앳된 얼굴을 한 슬라브계 백인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약간의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알았고 심지어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결혼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가 여자친구 한 번도 없었다고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 귀여웠다. 낯선 타국에서 꿈을 키워나가는 그가 마치 아들처럼 대견하기도 했다. 그의 설문을 마치고 다른 호실에 노크하니 이번엔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조금 왜소한 키르기스스탄 사람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한국에서 수년간 살아왔다고 한다. 그의 삶을 증명하듯이 반쯤 열린 원룸 안에 그의 소박한 주방기구와 후추통이 눈에 띄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는 성격이 선해 보였다.
이 친절한 두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인기척은 들리지만 낯선 우리가 떠나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한 층 더 올라갔는데 마침 원룸에 들어가려던 우리 또래의 커플을 마주쳤다. 우리의 시선을 외면하면서 들어가려는 찰나에 아내가 태블릿PC의 러시아어로 쓰인 협조 요청문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한참 동안 소리 내어 읽고 골똘히 생각하더니 겨우 평택이라는 단어를 힘겹게 내뱉었다. 아내가 여기 안 사시냐고 물어보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건물 밖으로 도망치듯 나갔다. 어쩌면 그들은 여행 비자로 왔다가 일을 하는 불법체류자 신세인지도 몰랐다.
그들의 정처 없이 떠돌던 초조한 눈빛이 기억난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낯선 이방인까지 만나야 하는 조사 업무에 대해 염려했던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정작 나와 아내는 이들의 평온한 삶을 방해한 두렵고 낯선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꾹 다문 조개껍질처럼 끝내 방문을 열어주지 않았지만 이제 그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삶을 응원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