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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이을정 Aug 16. 2024

괴짜 강수지의 다시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려 본적은 없었다. 양말을 머리맡에 두고 잔적은 있었던 거 같다. 12월 25일 아침에 눈을 떠 머리맡 양말을 들춰보고 선물이 없다는 것에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겉으로 봐도 납작한,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게 확실한 양말은 왜 들춰보았을까? 7살 어린 나이에는 한 번씩 해봄직한 행동인 것이겠지?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어야 동심어린, 어린 날의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나는 그의 존재에 대해서 유념해 본적이 없었다. 무엇인가를 믿는다는 것을 개념으로 이해 한다는 것, 어린 나이였지만 모태 신앙으로 자라왔기에 ‘믿는다’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인식하고는 있었다. 


그때 내가 믿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에 대해서 떠올려본다. 믿었다기 보다는 믿어야 한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인 거 같다. 개념적으로 보면 ‘사랑’과 ‘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모든 것이 실체하지 않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다는 것이 말로는 쉬운데, 믿는 것에 대해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면 그것처럼 골치 아픈 것도 없다. 마치 90년대 말 방영했던 미국 드라마 ‘엑스파일’의 멀더가 스칼렛에게 외계인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그 갈등과 맞먹을 듯 하다.


실체가 없으나 존재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낌적인 느낌으로 알고 있으나 증명되지 않은 것들을 ‘믿는다’라는 또 다른 추상적 개념의 행동을 지금 이 글에서 이야기하려니 무슨 공상 과학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허무맹랑해지는 듯한, 그래서 지금 이 문단이 끊기지 않고 길어지는 것은 나의 무의식의 방어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나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 나를 40년 동안 지탱해준 힘도 바로 그 믿음의 힘이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성경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나는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모든 것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순수한 어릴 시절을 보내왔던 나에게 고등학교 입학 무렵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혼자만의 고민에 빠져 공부는 뒷전이었다. 대학교는 왜 가야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한 채,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삶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강한 목적을 갖고 책에서 찾고자 책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무릎을 탁 칠 만큼의 명쾌한 답은 얻지 못하였다.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갖고 능력을 다해 열심히 한다면 못할 것이 없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강한 믿음이 미신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따라왔다. 또한 믿음을 내가 이루어내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내 종아리에서부터 뱀의 차가운 몸이 감싸 올라오듯 오싹하게 만들었다. 또한 어느 것 하나 결정해서 진지하게 파고들지 않다보니 두려움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더니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사춘기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강한 자신감이 불현 듯 두려움으로 바뀌는 급변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심 잡기가 참 어려웠다. 나의 가능성을 믿고, 나를 지켜주는 신적 존재를 믿고, 부모님의 격려를 믿어야 한다. 이렇게 이성은 생각한다. 그러나 사춘기 때의 이성은 감정의 손아귀 안에서 새끼손가락으로 한번 휘저으면 물에 녹아져버리는 소금 같았다. 이미 이성은 녹아내려 감정의 물속에서 0.1퍼밀의 농도로도 남지 않아 짠맛을 잃었다. 

  

녹아내려버린 이성은 두려움의 발바닥에서 꿈틀댄다. 말수는 적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의욕이 사라지고, 호기심도 사라졌다. 사춘기 딸은 엄마에게 ‘자퇴’를 이야기한다. 그러자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춘기 딸에게 ‘졸업장만 받아와’라고 대꾸한다. 

  

나에게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는 다는건가? 곡해해서 들을 수 있는 기대감 없는 엄마의 대답이었지만, 뭔가 이제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느낌이었다. 지금까지의 두려움의 원인이 ‘잘해야 된다, 성과를 보여줘야 된다’라는 남들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는 정신의 가벼움을 얻었다. 

  

그리고 이때부터다. 나는 학교에서 ‘괴짜 강수지’가 되었다. 소풍 때 덩치 큰 체격에 비해 나름 예쁘고 가냘픈 목소리로 강수지의 노래를 불렀고, 그때 얻은 별명이 강수지였다. 야간 자유학습이라는 단어는 사춘기 이지현 사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는 소설을 쓰고, 자발적으로 시낭송 대회(반 친구들이 기피하는 대회였다)에 나가 최진실, 박신양 주연의 영화에서 나온 황동규 시인의 ‘편지’를 낭독하기도 했다. 외부 백일장에 혼자 등록해서 글쓰기도 하고, 통일호를 타고 여수, 목포, 대전, 서울 등을 놀러 다니기도 했다. 가을 추수가 끝난 논에 지푸라기를 태우기 위해 불을 지르면 그 연기 속을 자전거를 타고 달려들어갔다. 그 기분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처럼 느껴졌다. 그 길 끝에서 매캐함으로 눈물콧물을 흘려 앞이 보이지 않아 자전거를 멈춰 세워 얼굴을 훔쳤고, 그 훔쳐 내리는 손가락 사이로 석양이 지평선 끝에서 마지막 붉은 열기를 뿜고 사라졌다. 

  


모든 순간 ‘내’가 되었다. 

자신 있게 페달을 밟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 나는 당당했다. 감성에 살이 붙고, 주위의 모든 것들이 경이로웠다. 모든 존재들이 궁금해졌다. 호기심에 내가 가는 길목의 모든 것들에는 나의 지문이 찍혀 있다. 가까이 다가가 직접 손길로 만져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어졌다.

 

이제 모든 것은 존재한다. 실체는 없어도 느끼고 상상하는 모든 것들은 존재하게 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드디어 산타클로스도 만났다. 산타클로스를 생각하면 재미난 이야기들이 상상되어진다. 그 할아버지가 만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 따뜻함을 누군가에게도 느끼게 해주게 되었다. 난 다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존재하게 만들 수 있는 ‘믿음의 마법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 마법의 비밀 주문은 바로 이것이다. 


  “믿음이 두려움을 이긴다!”  


DDP에서 있었던 라이트쇼, 회색 건물에 빛을 입히니 그곳은 마치 우주의 한 공간 같았다. 위에 떠있는 보름달은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이지 않을까 하는 괜한 상상을 떠올리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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