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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이을정 Aug 13. 2024

먼저 방향등 깜박이를 켜세요

지난주 토요일 서울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그 비에 봄꽃들은 이제 막 봉오리에서 갓 꽃잎을 펼쳐내었고, 꽉 쥔 주먹을 펴듯 펼쳐진 꽃잎들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힘껏 꽃봉을 붙들고 있었는지 일요일 아침에도 아직 벚꽃 나무위에 걸려 있었다. 그 모습이 대견하고 예뻐 한참을 보며 봄의 끝자락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빵빵’ 울리는 자동차 경적소리에 놀래 앞을 보니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어 있었다. 봄꽃이 아무리 대견해도 안전운전이 먼저이니 다시 정신을 차리고 운전대를 양손으로 꼭 쥐고 엑셀을 밟았다. 


잠시 후, 김포공항을 지나 강화로 들어가는 길에 접어들었다. 1차선은 쭉쭉 차들이 달리는데 내가 달리는 2차선은 무슨 일인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사고라도 난건 아닌지, 나처럼 봄꽃에 정신을 팔던 운전자가 있는 것은 아닌지, 운전석에서 시선을 들어 앞 차 너머를 살폈다. 


노란색 자동차가 저속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한 대가 아닌 노란색 자동차가 줄을 지어서 앞차의 저속 운전에 안심한 마음으로 함께 저속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 노란색 차의 행렬은 ‘도로연수중’이라는 글씨가 박힌 운전학원 차량이었다.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 노란 모자를 쓴 유치원생처럼 일렬로 ‘오리 빵빵! 참새 빵빵!’ 하면서 느림보 운전에 내 속을 태우고 있었다. 결국 나는 왼쪽 깜박이를 켜고 추월 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하고 엑셀을 밟아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제야 마음이 후련해졌다. 


누구에게나 처음이라는 것은 있기 마련이지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그 처음의 시작이 내 앞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봄꽃의 꽃비를 맞으며 노란 차는 깜박이도 제때 켜지 못해 차선 변경도 못했다. 분명 그 차 안에서는 심장이 벌렁벌렁, 손을 바들바들, 어깨는 힘이 들어가 점점 경직되어 뻐근해지고, 당장이라고 차를 멈춰 도로에 버려두고 도망가고 싶은 ‘초보’ 운전자가 앉아 있겠지. 그래도 그들이 주말 봄날에 도로로 나온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멋진 데이트를 위해, 혼자만의 자유로운 주말여행을 즐기기 위한 행복한 소망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운전을 한지는 벌써 15년이 다 되간다. 엄마는 나에게 ‘운전에 소질이 있다’라면서 지방에서 언니네 올라 올 때마다 언니가 운전하는 차는 마다하고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기차역에 갔다. 나는 그때마다 볼멘소리로 ‘운전에만 소질이 있어? 글에는 소질이 없고?’라고 묻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대답이 없다. 난 그저 웃으며 넘어가지만 속으로는 아직 글쓰기에는 초보인가 싶은 마음에 자존심이 조금 상했다. 글이라는 것이 초보 딱지를 떼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운전처럼 쉽게 실력이 늘지 않는 건 참 속상하고 답답한 일이다. 


내가 운전에 소질이 있다기보다는 운전 하는 걸 좋아한다. 뭐든지 좋아하는 건 자주 하게 되고, 실력도 좋아지고 남을 편하게 해주는 것 같다. 그렇다면 글 쓰는 건 오히려 그 반대이다. 글 쓰는 건 참 고역이다. 글쓰기는 여전히 나에게 긴장되고 떨리는 일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향을 잡기 어려운 초보 글쟁이다. 


운전에 소질이 있는 나는 가끔 친구들의 운전 연수에 동석하기도 한다. 장롱면허를 꺼내 아이와 함께 마트를 가고 싶어서,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운전이 필요해진 친구들은 나에게 첫 주행의 동석을 부탁한다. 운전에 ‘소질’ 있는 내가 옆에 함께 타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심이 되기 때문이란다. 친구의 아이가 돌이 지났을 무렵 친구가 운전하는 차 보조석에 앉았다. 친한 친구이기에 목숨을 맡기고 동석한 것을 친구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친구는 ‘직진’에 참 소질이 있다. 운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가기 위한 방향성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진, 우회전, 좌회전, 유턴의 차선 변경이라는 필수 코스가 있다. 


첫 번째 우회전을 놓쳤다. 이마트는 우리의 뒷블록 오른쪽에 있다. 친구에게 괜찮다고 이야기를 하며 다음에 우회전 하면 된다고 안심을 시키고 다시 직진을 시작했다. 다음 사거리가 나오기 200미터 앞이다. 


  “오른쪽 깜빡이부터 켜고”


신경질적이며 두려운 목소리를 억누르며 말을 했다. 친구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순간 핸들도 오른쪽으로 틀어진다. 옆 차가 급히 ‘빵’ 하고 경적을 울린다. 친구가 깜짝 놀라 급히 핸들을 돌린다. 그러자 왼쪽으로 핸들이 틀어진다. 왼쪽 차선에 있던 차량도 급히 ‘빵’하고 경적을 울린다. 친구는 분명 간이 콩알만 해졌을 것이다. 울고 싶을 지경이겠지. 그렇지만 이제와서 내가 도와줄 수는 없다. 핸들은 친구가 잡고 있으니까. 


  “오른쪽 깜빡이를 켜서, ‘나 우회전 해요! 다들 비켜요!’ 라고 모든 차에게 알려줘. 처음만 어려운거야. 천천히 핸들을 돌리면 모든 차들이 길을 터줄 거야. 왜냐하면 네 차에 들이댄다고 좋을 꼴 보기 어려우니까.”


‘딸깍딸깍’ 깜박이 소리가 차안에서 크게 울려 퍼진다. 드디어 슬로우 모션처럼 친구의 차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한다. 차로 5분 거리도 되지 않는 이마트를 30분 만에 도착했다. 그래도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것도 친구가 직접 운전해서 도착했다. 


친구가 자동차의 오른쪽 깜빡이를 켜는 순간 두려움은 용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늦어졌지만 목적지에는 도착한 것이다. 자, 그럼 나도 방향등 깜빡이부터 켜야겠다. 나의 우회전 끝에는 ‘작가’라는 목적지가 있기를 바라며 조금 늦어졌지만 꼭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용기 내 본다. 


강화도로 가는 길가에 심어져 있는 벚꽃나무 가지 사이사이로 봄바람이 불며 꽃비가 내려준다. 나의 결심을 응원해주고 있는 것 같다. 


2020년 여름, 서울 하늘에 구멍이 뚫려 비는 솓아졌고, 한강은 잠겼고 모든 도로는 정지되었다. @이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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