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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이을정 Aug 12. 2024

혼자 걷는 아이

매일 걸려오던 엄마의 전화가 뜸해졌다. 전화를 걸어 나누는 대화는 그리 길지 않다. 밥은 먹었는지 먹을 반찬거리는 있는지, 엄마가 뭐라도 해서 보내줄 건 없는지 혼자 지내는 딸내미 먹는 걸 걱정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전화도 걸려오지 않는다. 

나는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본다. 엄마의 목소리가 밝지 않다. 엄마는 요즘 우울하고 불안해 혼자서 길을 걷는다 한다. 겨울이 되면 얼어서 단단해진 텃밭조차도 엄마의 손길이 필요치 않기에 소일거리조차 없어진 엄마는 집안에 박혀 가만히 있는 것이 마음을 가라앉게 하나보다. 그래서 혼자서 차가운 거리를 정처 없이 걷게 하는 모양이다. 그런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에 돌멩이가 하나 얹힌 듯 나 역시 답답해진다. 


파란 담장 파란 대문이 있는 부모님의 집의 밤 하늘과 달 @이을정


익산에서 서울까지는 250km가 떨어져 있다. 쉽사리 엄마의 마음을 녹여주러 내려갈 수 없는 거리이다. 아니, 마음먹기에 따라 가까운 거리일 수 있다. ‘지금 당장 내려갈게.’라는 대답이 내 입에서, 마음에서부터 뱉어져 나오지 않는다. 엄마가 지내고 있는 많은 시간 사이로 내가 잠시 몇 시간 함께 한다고 그 헛헛한 마음은 채워질 수 없고, 살가운 딸이 아닌 내 성미를 생각할 때, 싸우고 오지 않으면 다행인 시간일 거라는 생각이 먼저 찾아들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젊었을 적 엄마는 ‘각자의 삶에서 알아서 잘 지내는 게 효도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던 각 잡힌 엄마였다. 그러나 나는 외로움을 타는 아이였다. 혼자 걷는 길이 싫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발로 툭툭 차면서 집에 돌아오곤 했다. 


새로 이사간 집에서 바라본 농지 @이을정


초등학교 시절, 집에서부터 학교까지는 2km 정도 거리에 있었다.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듯 잠을 쫓아내고 겨우 지각 직전에 잰걸음으로 학교에 도착한다. 지각하면 선도부에 걸려 운동장을 뛰거나 그 넓은 운동장의 돌멩이를 주워야 하는 벌을 받아야 하기에, 홍길동의 축지법을 가르쳐주는 학원이 있다면 당장 등록하겠다는 얼토당토 않는 상상을 하며 학교까지 종아리에 알이 베기도록 걷고 또 걸어갔다. 그래서였을까 등굣길의 풍경은 지금도 기억 나는 게 없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 문제이다. 초등학생의 짧은 다리로 2km를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 멀고 먼 길이었다. 게다가 같은 동네에 사는 또래 친구도 없었다. 


우리 동네는 ‘신기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 앞 마을은 ‘내장 마을’, 그 앞앞 마을은 ‘외장 마을’이었다. 뒷 마을은 ‘다가포’라고 불렸다. 내장 마을에는 민희와 봉철이가 살았다. 다가포에는 선주가 살았다. 원래 신기 마을까지는 내가 다니는 ‘고현초등학교’에 다녔고, 다가포부터는 ‘계문초등학교’에 다녔다. 그런데 선주는 주소지를 신기 마을에 사는 할머니 댁으로 해 놓아서 나와 같은 학교에 다녔다. 학원에 다니거나 다른 반이었던 민희, 봉철, 선주와 고학년이 되면서 함께 가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교문 앞에 돌멩이 하나가 내 눈에 띄었다. ‘그래, 오늘은 너로 정했어.’라며 나는 발로 그 돌멩이를 툭 걷어찬다. 


또로로로 돌이 구른다. 

나는 다다다다 구르는 돌의 뒤를 따라서 뛴다. 


멈춰선 돌을 다시 툭 걷어찬다.


 또로로로 돌이 구른다.

 다다다다 나는 달린다. 


또로로로 다다다다. 

그렇게 집으로 가는 중간까지 온다. 


심장이 뛰고 땀이 나며 나는 신이 났다. 이제 남은 길이 문제이다. 길 양옆으로 논길이 펼쳐진다. 돌을 잘못 차면 논으로 굴러떨어진다. 그러면 낭패이다. 발의 앞코가 아닌 옆으로 안정적으로 돌을 찬다. 돌이 일직선으로 또로로로 구른다. 다행이다. 나는 다다다다 돌을 따라 뛴다. 그러다 흥이 오른 나는 신발 앞코로 돌을 찬다. 돌이 논으로 풍덩 빠진다. 난 논에 빠진 돌을 바라본다. 여러 개의 돌이 빠져 있다. 시멘트 도로가 울퉁불퉁해서인지, 이 부분에서 돌이 자주 논에 빠진다. 오늘 빠진 돌은 다행히 논두렁 안 물속에 빠지진 않았다. 나는 낮은 비탈을 내려가 그 돌을 주워온다. 그리고 다시 길 위에 올려놓는다. 


‘오늘 집까지 살아서 돌아가면 이 돌은 내 책상 위에 올려놔야지.’


라고 생각하며 조심해서 돌을 찬다. 


몇 개의 돌이 논으로 빠지지 않고 살아서 우리 집까지 왔는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 혼자서 집으로 오는 길에 한발씩 폴짝폴짝 뛰며 돌을 따라 신나게 오던 기억만 남았다. 초등학교 일기장에 자주 등장하던 민희는 중학생이 되면서 이제 일기장에 없다. 집에 오는 논두렁 어딘가로 떨어져 버린 돌멩이처럼. 

내장 마을에는 어린이집이 있었다. 당시에는 탁아소였던 거 같다. 어린이집 앞에 유일한 놀이기구 그네가 있었다. 그런데 봉철이라는 녀석이 자기네 동네라고 그네를 못 타게 했다. 그런데 원수 같았던 봉철이는 가끔 소식을 전하며 내 핸드폰에 ‘역시 친구’라는 이름으로 전화번호가 등록되어 있다. 우리 집까지 함께 온 돌멩이처럼. 

뒷동네 다가포에 살던 선주네는 방앗간을 했는데, 방앗간을 팔고 더 앞앞앞 동네, 현내로 이사 가면서 소식을 모른다. 신기하게도 고등학교 친구 혜영이의 친구로 다시 소식을 알게 되었다. 논에 빠진 걸 다시 주워 올린 돌멩이처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는 학교 버스를 타고 등교를 했다. 고등학교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길이 달라지고 교통수단이 달라지면서 나에겐 더이상 돌멩이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혼자 걷던 초등학생 아이가 집에 오면서 차던 그 돌멩이가 가끔 생각난다. 새로운 만남을 통해 생겨난 관계 속에서 이 관계는 어디까지 함께 가는 돌멩이가 될까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신발의 앞코로 모난 돌멩이를 찰 때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날아가던 그 돌멩이를 생각하며 새로운 관계의 포물선을 마음속으로 그려보며 관계의 거리를 만든다. 논에 빠져버린 돌멩이를 생각하며 자존심의 비탈을 내려가 용기를 내어 그 돌멩이를 주워올지 말지를 계산하며 멀어져 버린 관계의 끈을 바라본다.


머리가 복잡하다. 관계라는 게 나에겐 머리 아픈 일이다. 그래서 사람과의 만남이 부담될 때가 많다. 그렇다고 싫지는 않다. 사람들을 만나 함께 하는 시간은 심장을 뛰게 하고 기분이 들뜨고 한 발씩 뛰어오르며 걷던 아이의 마음을 다시 가져다 놓는다. 하지만 다시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릴 적 혼자 걷던 아이의 외로움이 찾아온다. 

그런데 혼자 걷던 아이는 외로웠던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돌멩이를 힘껏 차오르면서 바라보던 높은 하늘, 너른 논과 밭, 돌멩이가 빠져버린 깊은 수렁 속의 미지의 세계를 보고 느끼고 체험했다.
혼자 걸었을 때만 볼 수 있는 아이만의 상상과 생각을 얻었고,
혼자 서는 법을 배웠다. 


삶은 혼자 걷는 여정이다. 잠시 만난 돌멩이가 혼자 걷는 길의 순간들을 신이 나게 해준다. 이 돌멩이는 다양한 모양과 재질로 되어 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돌멩이는 관계의 돌멩이, 고민의 돌멩이, 시험의 돌멩이, 도전의 돌멩이 등 여러 가지였다. 돌멩이를 톡 하고 찰 때마다 삶의 경험과 생각이 넓어지고 새로워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혼자서 삶의 길을 걷는다. 여전히 혼자 걷는 길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관계 속에서 평생을 지내다 아버지의 은퇴로 정든 동네, 신기 마을을 떠나야 했던 엄마의 상황을 20년 전 신기 마을을 먼저 떠났던 나의 그때를 떠올리니 낯섦에 대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혼자서 정처 없이 길을 걷는다는 말이 너무 아프다.


혼자서 서울살이를 시작한 20살부터 나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티비를 보고, 혼자 웃고, 혼자 긴 밤을 지낸다. 엄마에게 나의 외로움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그러니 엄마의 우울함에 대해, 나의 외로움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를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만 지금 내 발 앞에 새로운 돌멩이가 놓여 있다. 내 삶의 시간 동안 혼자 걸으면서 깨달은 걸 엄마에게 진심으로 용기를 내서 말해주고 싶다. 나의 진심 어린 돌멩이가 엄마에게 또로로로 하고 마음에 가 닿기를 바라면서. 


  “엄마! 나이가 든다는 건 혼자가 되는 연습인 거 같아. 혼자의 시간 속에서 스스로 내 삶에 의미를 만들면서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인 거 같아. 칠십 년 넘는 인생을 살면서 ‘김정희’라는 이름의 의미를 찾는 거 말이야. 그건 누가 찾아줄 수도 없고 스스로 찾는 건데, 지금까지 잘해 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혼자 걷는 아이가 더 멀리 더 높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거 알아? 그 시선으로 자신을 다시 바라보면 단단해지고 자유로운 모습에 웃음 지어질 거야. 엄마가 지금 혼자 걷는 그 길에서 돌멩이를 찾기를 바래.”


해 지는 색은 감성을 끌어내고, 오늘이 끝나는 것이 아닌 내일이 오는 것이기에 이 길 위에서 바라보는 평행선의 기찻길은 낭만이다. @이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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