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보면 오늘부터 1일이래.”
세종문화회관에서 오랜만에 완창 판소리 ‘수궁가’ 공연이 있었다. 곽씨부인 유언 대목과 상여 나가는 소리, 심청이 인당수 빠지는 대목을 들으면서 소리꾼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소리꾼의 창자가 끊어질 듯 애절한 소리가 심금을 울렸다. 장님잔치를 벌여서 아버지를 보고자 한 심 황후 대목도 절절했다. 그리고 장님 눈뜨는 대목에서 심 봉사가 눈을 번쩍 뜨고 전국의 장님들이 모두 눈을 떠 광명을 찾고 태평성대를 이루는 절정 대목은 듣는 이들을 행복하게 했다. 그리고 외전 같은 마지막 뺑덕어멈과 밤중에 도망친 황 봉사는 전국의 봉사들이 눈을 뜨는데 본인만 눈을 못 뜬 상황, 죄를 뉘우치자 황 봉사는 한쪽 눈만 뜨는 대목은 대중들에게 마지막 해학을 남겨주었다. 한바탕 울고 웃으며 공연장을 나오는 길이었다.
세종문화회관 앞 광화문 광장은 한창 역사적 현장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검은 아스팔트가 벗겨지자 500년 조선이 나타나고, 100년 전 일제강점기 시대가 나타났다. 2미터 정도 흙을 파내자 역사가 나타나고 삶이 발굴되고 있었다. 참 묘한 시간의 얽힘이라는 생각을 하며 극장을 올랐던 계단으로 다시 밟아 내려가던 중이었다.
마침 그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계단을 내려갈 때는 광화문과 경복궁, 그리고 높이 솟은 빌딩을 자연스럽게 올려다보게 된다. 몇 천 년의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것은 저 하늘과 달 뿐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 올려다본 밤하늘은 달랐다. 건물 위로 얼굴을 내민 붉은 보름달이 검은 하늘에 떠 있었다. 얼마 전 ‘하지’ 절기로 낮이 길어졌구나 싶고, 이제 여름 더위가 기세 좋게 등장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올 여름 무더위를 어떻게 지내야 할지 걱정하던 터였다. 게다가 요즘 쨍한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치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통에 ‘세상이 어쩌려고 이러나’하며 ‘이것이 무슨 신이 보내는 신호인가’ 싶었던 터였다. 그런데 6월 24일 검은 밤하늘에 붉은 구멍이 뚫린 듯 한 보름달에 등골이 오싹했다.
6월 25일 한국전쟁이 벌어졌던 그 전날도 이런 붉은 달이 떴을까? 흉흉함에 신이 놀래 잠을 설쳐 붉게 충혈 된 듯 한 눈구멍이 방심한 틈에 엿보이게 된 것일까?
“6월 24일 사랑의 달 ‘스트로베리 문(moon)’ 분홍빛 보름달이 떴다. 먼 옛날 인디언들이 딸기 수확철인 6월을 기념해 처음 이름 붙인 것으로 유래된다. 실제로 과거 인디언들은 딸기 재배를 앞두고 딸기 농사가 풍년이 되었기를 기원하며 이때 뜨는 보름달을 ‘스트로베리 문’이라고 불렀다.”
피의 날의 시작을 알리는 전조 ‘붉은 달’과 다른 나라에서부터 시작한 ‘스트로베리 문’ 달달한 달의 의미가 참 미묘하다. 모든 현상과 의미는 개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뉴스에서는 광주 건물이 붕괴되면서 정차한 버스를 덮치고, 쿠팡 화재 사고와 이걸 계기로 밝혀지는 현장의 열악함 등 사건사고가 전해지고 있다. 날벼락 같은 소식에 달달한 스트로베리 문도 흉흉하게 보이는 건, 단지 나의 기분 탓이겠지?
얼마 전 서울문고에서 운영하던 반디앤루니스가 부도처리를 하고 영업을 중단했다. 이것도 6월 붉은 달의 저주일까? 마치 괴담처럼 6월 한 달 동안 펼쳐진 붉은 피와 붉은 화마는 전국을 휩쓸고 있다.
나에게 서울 문고의 기억은 아름다운 선율로 시작한다. 2000년 코엑스몰이 완공되고 아시아 1위의 지하 쇼핑몰 타이틀을 얻었다. 그러면서 이곳은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가 되고,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에게는 서울에 오면 꼭 방문해야할 관광지가 되었다. 처음에 이곳을 방문했을 때, 마치 미로와 같았다. 바닥에는 빨간색, 파랑색, 녹색으로 길을 안내하는 안내 선이 있었지만 몇 바퀴를 돌고 돌아서야 겨우 친구들과 약속한 장소를 찾아낼 수가 있었다.
이 당시에 나는 주로 영풍문고와 교보문고를 이용했었다. 그런데 코엑스 몰에 대형서점 서울문고가 들어왔고 20대의 나는 문학소녀답게 이곳을 방문했다. 연극관련 도서가 있는 곳에서 한참을 서서 책을 들춰보던 나에게 어디선가 들려오는 보이지 않는 음악 선율의 선이 내 귀를 당겼다. 소리를 따라 간 곳에는 덩치 큰 남자의 등이 보였다. 그리고 분명 그에게서 얇고 부드러운 음의 선율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서슴없이 그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남자의 등이 아닌 앞을 보았을 때 반가움이 먼저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학교에서 인도 타악기를 가르치시는 선생님이셨다. 타블로 악기를 ‘따띠뚜따띠’하면서 가르쳐주시던, 두껍고 큰 손으로 악기 중앙의 고무패드와 옆면을 쳐서 다양한 음색을 내는 걸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 오늘은 가슴팍에 조그맣게 안겨있는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있었다.
우쿨렐레의 조그마한 통에서 스트링 된 음이 부드럽게 울려 서울문고의 책장 사이사이를 타고 감미롭게 울리던 연주음은 내 귀를 사로잡았다. 처음으로 우쿨렐레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반갑고 새롭고 유혹적인 순간이었다. 선생님께 부탁해서 나는 악기를 건네받았다. 악기를 내 품에 안고 심장 박동을 드럼 연주 삼아 줄을 하나씩 튕겨 내자 마음을 녹여내고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날 우쿨렐레는 내 품에 안겨 우리 집까지 함께 오게 되었다. 사은품으로 준 기초 연주 악보도 함께 받아왔다.
해가 반만 들어오는 반지하 방에서 앉아서, 누워서 때론 서서 우쿨렐레 연습을 했다. 연습이라고 해봐야 C코드, F코드, G코드를 왼손가락으로 짚고 오른손으로 현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긋는 것뿐이었지만 그 소리만으로도 반지하 방은 은은하고 감미로운 선율로 가득했다. 당장이라도 연주회를 열고 싶을 만큼 행복한 순간이었다. 달달한 소리가 반만 들어오는 햇살의 나머지 반을 채워주었다.
그 때 샀던 우쿨렐레는 이후 20년 동안의 10번이 넘는 이사로 집을 옮겨다닐 때도 나와 함께 했다. 그런데 이제 그 우쿨렐레는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내 관심도 사그라들었을뿐더러 망가졌기 때문이다. 악기의 현을 감아서 몸통에 고정하는 브릿지가 세월을 못 이기고 떨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망가졌다기 보다 접착부위가 약해서 몸통에서 떨어진 것뿐이다. 수리점에 가서 접착제만 붙이면 다시 연주를 할 수 있는 상태로 복원될 수 있다. 잠깐의 시간만 내면 다시 원상복구 될 수 있는 데 그 시간을 못 내고 있다. 우쿨렐레는 몇 년 동안 고장 난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는 것이다. 가끔 우쿨렐레를 볼 때마다 이번 달 안에는 꼭 고쳐야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뿐이다.
올해 6월, 반디앤루니스는 부도가 나고, 서점에 비치되어 있던 책들은 압류되고, 서점에 비치되어 있던 책들은 판매 위탁 상황이라 현금화 되지 못한 자산으로 남겨져 회수하지 못하게 된다. 이상한 유통구조로 결국 출판업계 사람들만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사태가 갑자기 벌어진 것은 아닐텐데도 미리 안내되거나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부도처리 해버린 현 상황이 마치 나의 우쿨렐레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현이 몸통에서 떨어져버린 듯한 상황 같았다. 아무 이상이 없는 악기인데 줄을 매고 있던 브릿지가 몸통에서 떨어지자 아무 소리도 못내는 망가진 악기가 되어버린 것처럼.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광화문 교보빌딩에 걸렸던 문구가 생각이 난다. 서점이 우쿨렐레의 몸통이라면 음악의 선율을 만드는 것은 책이다.
이제 음악은 멈추었고,
사람은 책을 만들 여건을 잃었고,
책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스트로베리 문은 사랑스럽고 달달한 밤의 정령처럼 사랑이 이루어지는 달로 유명하다. 이에 전 세계 많은 남녀들은 한여름 밤의 사탕 같은 ‘스트로베리 문’을 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이와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기도 한다.”
낮이 일년 중 제일 긴 하지를 지나, 한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전, 태풍과 홍수가 곧 들이닥치기 전, 여름 휴가를 위해 큰 지출을 하기 직전, 휴가로 인한 코로나19 전파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변이 바이러스가 어떻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지금, 우리가 빌어야 할 소원은 무엇일지, 무엇을 지켜달라고, 무엇을 이루어달라고 달에게 소원을 빌어야 할지!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소원을 빌기 전,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인다! 저 붉은 달이 충혈 된 신의 눈동자가 아닌, 한여름 밤의 사탕처럼 달달한 소원을 이루어주는 달이기를 나는 소원한다. 내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이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모든 이들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