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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국이 싫어서>

행복은 어디에

by 윤슬


20대 후반 흙수저 출신 계나는 한국에서 사는 것에 지쳤다. 도무지 인생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꽤 탄탄한 회사에 취직했지만,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길바닥에 2시간을 버려가며 인천에서 강남까지 출근을 하면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심신이 파김치가 되어버린다. 그걸 피하려면 강남에서 자취를 하면 되지만 적지 않은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서 먼 거리를 출퇴근할 수밖에 없다. 그런 딸에게 부모는 빌라가 재개발되면 20평대 아파트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돈을 보태라고 한다.


7년이나 사귄 남자친구가 있지만 아직 취준생이라서 만나면 계나가 돈을 쓴다. 마침내 그가 언론고시를 통과해 기자로 취직을 하자 계나는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 말하자면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한 자리. 하지만 제법 ‘있는 집’ 사람들인 남친의 부모는 은근히 계나를 눈 아래로 본다. 결국 한국에서 사는 것에 지친 계나는 과감히 이 땅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뉴질랜드로 떠난다.


kor1.jpeg 계나는 한국의 '추위'가 지독하게도 싫다. 사진 출처: (주)디스테이션


나도 한때는 한국이 싫어서 떠나고 싶었다. 유럽 국가들 중 오래전부터 독일이 좋아서(실제로 2주 동안 독일을 여행한 후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한동안 독일인 친구와 함께 언어교환을 하며 독일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외국에 가서 먹고 살 방법을 찾기 위해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강사 자격증까지 땄다. 하지만 여차저차한 이유로 어떤 나라에도 나가지 못하고 결국 이 나라에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국문학 학사 학위만 가진 나에게 한국어 강사 자격증은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누군가 공학박사 학위를 가졌다면 그가 한국어에 대해 깊이 연구한 적이 없어도, 모국어로 된 글을 제대로 써본 적 없어도 그를 강사로 고용하는 것이 학력 위주 사회인 한국의 실상이다. 그런 모든 한국의 불합리한 요소들이 끔찍하게 싫었고 환멸이 느껴졌다.


계나가 한국이 싫은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을 늘 의식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숨 막히는 경쟁에 시달려야 한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닌, 회사가 자신을 ‘선택해 줘서’ 어렵사리 들어간 회사에서는 상사가 관행을 이유로 불합리한 일을 종용한다. 실력보다 인맥 혹은 사람 사이의 ‘신뢰’를 들먹이면서 부당한 일을 지시한다. 위아래 서열과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 질서가 엄격한 한국 사회에서는 난 먹기 싫지만 상사가 주문한 동태탕을 억지로 먹어야 한다.


kor2.jpeg 재인은 겉으론 허술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자신이 인생설계가 명확한 인물이다.


같은 또래들 중 여전히 취직을 못한 친구는 한겨울에도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다니고, 누군가는 또 시험에 떨어져 스스로 삶을 놓아버린다. 그런 불안하고 막막한 젊은 시절을 통과해 취직에 성공한다 해도 그들의 삶 역시 계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남자친구도 원하던 언론사 입사에 성공했지만 새벽 5시에 일어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개목줄 같은 넥타이를 매고 출근해야 한다. 출근하기 싫어하는 남자친구를 계나가 안아주는 모습에서 그들의 미래가 보였다. 계나가 다시 외국에 안 나가고 둘이 결혼해서 산다 한들 어차피 그 모습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계나는 자신의 곁에 남아달라고 하는 남자친구의 청을 뿌리치고 다시 먼 길을 나섰을 것이다.


kor3.jpeg 그토록 원했던 언론사 취직에 성공했지만 새벽 5시에 출근하는 삶이 시작된다.


계나가 갖고 있던 책 중에서 ‘추위를 싫어하는 펭귄’이라는 동화책이 있다. 다른 펭귄들은 추위에 잘 적응해서 남극에서 살아가지만 유난히 추위를 싫어하는 펭귄 파블로는 따뜻한 나라를 찾아 떠난다. 그 펭귄이 계나를 상징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한국의 추위(이때 추위는 기후로서의 추위가 아니다)가 싫어서 따뜻한 남쪽 나라인 뉴질랜드로 떠난 계나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나름대로 자유롭게 살아간다. 어떤 규율, 형식, 위계, 계급 등에도 묶이지 않은 자유로운 삶. 그런데 그 나라에 살면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대학원을 졸업해 회계사 자격증을 딴 계나. 그렇다면 한국에서 아등바등 살던 때와 무엇이 크게 다른 건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계나는 뉴질랜드에서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다시 다른 나라로 떠난다. 한국에서 겪는 사회적, 심리적 추위가 싫어서 떠났지만 다시 비바람 치는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kor4.jpeg 과연 매일매일 천국 뿐인 나라가 이 세상에 있을까.


이 영화에 다른 제목을 붙인다면 ‘행복은 어디에’ 정도가 될 것 같다. 평소 ‘돈보다 행복을 사라’고 부르짖던 일명 ‘행복 강사’는 지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몇 해 전 실제로 소위 ‘행복 전도사’로 활동하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어느 유명 강사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어느 스타 강사의 동영상을 봤다. 그녀는 예전에 TV에 자주 나와 자기 계발과 성공에 대해 부르짖곤 했다. 그런데 이제 그녀는 그동안 자신을 채찍질해 가며 너무 열심히 살았던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한다. 직원을 100명까지 두고 회사를 운영했지만 과로와 스트레스로 혈압이 190 가까이 올라가 응급실에 실려가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그녀는 ‘내가 정한 목표가 나를 부려 먹었다’면서, 자신만의 속도로 꿈을 찾아가라고 또 청중들에게 ‘조언’을 한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와, 그 스타 강사의 동영상을 보고 나의 생활을 되돌아봤다. 나 역시 ‘N잡러’가 되보겠다며 이런저런 일에 손을 대고 있다. 이제 슬슬 번아웃 증세가 찾아오려고 한다. 주말에 좀 쉬어볼까 생각하고 계획에도 없던 지방 여행을 가기 위해 충동적으로 고속버스표를 끊었다가 바로 취소했다. 아직은 이러면 안 된다는 ‘현타’가 나의 뒤통수를 때린 것이다. 이런 나를 계나가 본다면 뭐라고 말할까. 혹시 ‘왜 그렇게 사니?’라며 딱한 듯 쳐다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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