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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라진 시간>

현실과 꿈, 상상의 모호한 경계

by 윤슬


영화 <사라진 시간>은 오랫동안 영화배우로 활동했던 장진영의 감독 데뷔작이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더니 그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경험과 내공의 날을 아주 잘 벼린 것 같다. 깜짝 놀랐다. 이토록 신선한 영화를 만들어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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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전반부를 이끄는 주인공과 중후반부를 이끄는 주인공이 다르다. 아니,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기 때문에 달라 보일 뿐 사실은 동일 인물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반부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교사 수혁은 아내 이영과 함께 시골 학교 교사로 살아간다. 그의 아내에게는 몹쓸 병이 있다. 낮에는 멀쩡한 본인인데 밤마다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빙의 증상 같은 것이 나타난다. 이 집주인이 우연히 이영의 비밀을 알게 되고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 주민들에게 퍼진다. 그런 어느 날 밤 집에 화재가 나서 수혁과 이영은 죽게 된다. 여기까지는 영화의 전반부.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형사인 형구가 마을에 와서 주민들을 탐문 수사를 하면서 중후반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와중에 마을 연장자의 생일잔치에서 독주를 몇 잔 마시고 취해 잠이 드는데, 다음 날 깨어나니 그는 형사가 아닌 그 마을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있다. 본인이 아무리 나는 형사라고 해도 마을 사람들은 그가 선생님이 맞다고 한다. 황당하고 당혹스럽다. 그렇게 짜증과 혼란 속에 어쩔 수 없이 억지 선생 노릇을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형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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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현실과 꿈과 상상의 경계가 모호하고 불분명하게 뒤섞인다. 그래서 흔한 비유이긴 하지만 ‘장자의 호접몽’을 떠올리게 될 수밖에 없다. 이 영화 속에서 시간 또한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들은 마치 파편과 퍼즐처럼 서로 뒤섞여 있다.

형구는 수혁과 이영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거나 그들에게 빙의된 인물일 수도 있고 혹은 반대로 형구가 상상 속에서 수혁과 이영을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 주체이고 객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굳이 경계를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정진영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누구나 본인이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규정하는 나 사이의 괴리, 갈등과 긴장 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모든 예술작품이 그러하듯 이 영화 역시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든지 보는 관객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많다(그러고 보니 이 또한 이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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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부분의 우리는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남이 규정하는 자신 사이에 어떤 괴리가 있다고 해서 그처럼 크게 갈등한다거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에겐 이 영화가 정진영 감독의 지극히 자전적인 작품으로 보였다. 오랫동안 배우로 활동하면서 겪었던 경험을 형상화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카메라가 꺼지면 본래의 정진영이 서 있지만 카메라가 켜지는 순간 다른 인물로 변하는 배우라는 직업에서 오는 정체성 혼란에 대한 이야기. 배우 최민식은 그랬다. 배우란 무당이라고. 자신의 몸속에 다른 인물이 들어오는 빙의 체험을 하는 것이란 뜻이다.


이토록 신선하고 멋진 영화에 대부분의 관객들은 성마르고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영화 제목처럼 자신의 ‘시간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 관객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상상의 경계를 넘어 다시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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