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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세웅 Aug 06. 2020

함께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중환자실 간호사로 살아가면서 나다움을 유지하는 원동력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입니다. 대상은 주로 내 앞에 마주한 환자분들이지만 보호자, 동료들과도 함께합니다. 함께할 수 있을 때 앞에 닥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함께하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함께 하기 위해서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양손 가득 들고 있던 창과 방패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들고 있었던 무기들을 내려놓고 상대방에게 다가갈 수 있을 때, 내게 다가오는 것을 허락할 수 있을 때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 가운데 마음에 상처를 입고 갈등하는 순간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혼자일 때보다 함께할 때 나를 지킬 수 있고 나답게 함을 경험합니다.


살아오면서 힘든 순간들을 마주하지 않은 인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저 또한 암에 걸리기도 했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기도 했었고, 따돌림을 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아팠을 때 저를 치료해주셨던 의사 선생님, 유치하고 철없던 제게 말동무가 되어주시고 돌봐주셨던 간호사 선생님, 함께 병실생활을 하며 저를 챙겨주셨던 옆의 환자, 보호자분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간호사로 성장해서 다른 이를 돌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게 되었을 때 저를 불러서 밥을 사주셨던 아주머니, 마치 자신의 일인 양 함께 슬퍼하고 위로해주셨던 많은 분들, 저를 볼 때마다 자장면을 선물로 주셨던 사장님. 덕분에 제 마음이 치유되고 따뜻해져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늘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을 때 내 옆을 지켜줬던 고마운 친구야. 나도 네 옆에 평생 함께할게.


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사람들과 함께했던 순간들은 저로 하여금 환자를 대할 때 함께하는 사람으로 다가가게끔 이끌어주었습니다. 근무할 때마다, 간호사와 환자라는 표면적인 관계에서 더 나아가 인격을 가진 한 인간 대 인간으로 아픔을 공감하고 연대하며 환자분도, 저도 이 상황을 함께 극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환자분에게 다가갑니다. 환자분들과 마음이 통할 때면 눈빛이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럴 때면 환자분의 집으로 돌아갈 날이 앞당겨졌음을 직감합니다.


환자분들도 주도적으로 치료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동기부여가 되고 회복 속도가 빨라지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재원기간이 길어졌던 환자분들이 나중에 회복되어 퇴원할 때 중환자실에 찾아오시곤 합니다. 두 발로 멀쩡히 서서 고맙다며 이야기해주시고 돌아가시는 모습을 볼 때면 마치 내가 회복된 것처럼 기쁜 감정이 샘솟습니다.


웃을 일이 잘 없고 아픔과 슬픔이 흩뿌려져 있는 중환자실에서 기쁨과 감사를 발견하고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잊지 않게 도와주는 것은 '함께'입니다. 너무나 바쁘고 자꾸만 내면의 여유를 갉아먹게 만드는 급박하고 정신없는 병원 환경 가운데 환자분들의 회복도 돕고 나를 나답게 지킬 수 있도록 주변 사람들과 끝까지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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