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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세웅 Sep 29. 2020

Oh my god.

기묘한 하루

저녁을 먹고 산책하던 길. 멀리서 소방차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어딘가 불이 났나 보다.’라고 생각할 찰나, 소방차와 경찰차가 점점 가까이 오며 소리가 크게 들렸다. 왠지 익숙한 길로 차가 들어갔는데 알고 봤더니 내가 살고 있는 집 옆 상가에서 불이 나고 있었다. 다행히 초기에 진압해서 큰 피해는 없었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출근 전에 집에서 눈 좀 붙이자는 마음으로 집에 들어갔다.


“아악!”


Oh my god. 문을 열고 불을 켜자마자 나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검지 손가락만 한 크기의 바퀴벌레가 천연덕스럽게 나를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할 수 있으면 집 밖으로 내보내기로 결정하고선 손에 공책을 하나 집고 조심스럽게 바 선생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바 선생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싱크대 밑으로 도망쳐버렸다. 나이트 근무를 하려면 잠을 좀 자야 했는데, 잠이 다 깨버렸다. 동시에 핸드폰으로 여러 가지를 찾아봤는데 이를테면 ‘바퀴벌레 퇴치법’, ‘바퀴벌레 겔’, ‘바퀴벌레 약’과 같은 내용이었다. 흥미로웠던 사실은 바퀴벌레로 고통받고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던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깊은 공감을 했다는 것이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비슷한 상황을 겪어봐야 깊이 공감할 수 있나 보다.


결국 한 숨도 못 잔 채 병원으로 향했다. 머릿속에는 온통 ‘어떻게 하면 바퀴벌레를 박멸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서 나이트 근무에 대한 두려움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잠을 잘 순 없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은 명료했고 깨어있었다. 출근해보니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중환자실에는 빈 베드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응급수술도 생겨서 수술 환자를 받을 준비도 해야 했다. 인수인계를 하고, 환자 파악을 하고 있을 무렵 옆에 있던 동료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환자분 뭐하시는 거예요? 이걸 빼면 어떡해요?”


Oh my god. 목소리를 듣고 달려간 침대 앞에서 처참한 장면을 목격했다. 환자의 손에 기다란 관이 있었고 그 끝은 덜렁대고 있었다. 목에 삽입되어 있던 중심정맥관을 환자가 직접 손으로 뽑아버린 것이었다. 동료 간호사는 환자의 목으로 공기가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 구멍을 손으로 다급하게 막고 압박했다. 빠르게 환자를 눕히고 거즈로 압박을 하면서 의사에게 노티(notify)했다. 중환자실 섬망의 증상이 전혀 보이지 않던 환자였기에 근무 시작부터 펼쳐진 상황에 더욱 당황스럽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다행인 건 환자의 의식도 괜찮았고 맥박의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심장에 삽입되어 있던 관이 빠지면서 부정맥이 유발될 수도 있었는데 깔끔하게(?) 잘 빠진 것 같았다. 왜 빼셨는지에 대한 질문에 “내가 빼고 싶어서 뺐어.”라고 답하는 환자가 그렇게 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이럴 때면 안 되는 걸 되게 해 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느낌이 들어서 힘이 빠진다. 의료진만 치료하는 게 아닌데. 환자와 의료진이 한 팀이 되어 같이 치료해야 하는 건데.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나서 다들 바쁘게 움직였다. 정기적으로 균 배양검사를 나가야 하는 환자의 채혈도 해야 했고, 장기적으로 관을 삽입하고 있는 환자의 경우 삽입되어있는 관의 오염을 예방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교체해주어야 했다. 또한 침상생활을 하기 때문에 몸을 씻을 수 없는 환자분들의 몸을 구석구석 씻기고 닦아주는 일을 밤동안 해야 했다. 환자의 피부 상태를 확인하고 몸도 닦이고 새 옷과 침대 시트, 이불을 갈아주고 있을 무렵 수술실에서 연락이 왔다. 수술이 거의 끝나가며 약은 무엇을 달고 오는지와 같은 정보를 공유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새벽 1시였다. 빠르게 준비해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환자실 문이 열리며 수술 환자를 태운 침대가 들어왔다. 한 명은 환자 모니터 밑에, 다른 한 명은 인공호흡기 옆에, 또 다른 한 명은 환자 발치에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잡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각자 위치를 찾아가서 필요한 역할을 해내는 이 광경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었는지 환자의 맥박과 혈압은 안정적이었고 출혈도 나지 않았다. 비닐 가운을 입은 채 수술 환자를 받으니 어느새 유니폼은 땀에 흠뻑 젖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새벽 4시. 중환자실에서는 환자의 피를 채혈하는 시간이다. 이때 채혈해서 나온 검사 결과를 토대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고 치료방향도 결정할 수 있다. 담당 환자의 피를 채혈하고 있을 무렵, 멀리 떨어져 있는 침대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아까 그분인가 싶어서 다가갔는데 이번에는 다른 환자였다. 섬망 증상이 심하게 온 탓에 환자분은 소리를 지르고 욕을 막 해대며 손길질과 발길질을 했다. 남자 간호사 3명과, 책임 간호사 선생님이 달라붙어서 제압하려 했지만 힘이 어찌나 세던지 침대가 들썩였다.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아서 신체 억제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억제대를 하던 과정 중에 배경음으로 욕설이 들렸다. “야 이 개 XX 들아. 하지 마.”, “X 년아 뭘 쳐다봐.”. 그곳에 있던 나와 동료들은 섬망 증상에 대한 이해가 있었지만 무차별적으로 날아오는 욕설 앞에서 허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퍽’


둔탁하면서도 경쾌한 소리가 중환자실에 울려 퍼졌다. 어디서 이런 소리가 나는지 궁금해할 찰나 내 뒤통수가 울렸다. Oh my god. 환자의 반대편 손을 잡고 있던 동료가 손을 놓친 순간 환자의 그 손은 내 뒤통수를 향했던 것이다. “어머, 왜 이러시는 거예요!”라며 환자를 탓하는 말과 “괜찮아?”라며 나를 걱정해주는 말들이 교차했다. “괜찮아요.”라고 대답했지만 순간 이 상황 자체가 퍽 속상했다. 어찌어찌 신체 억제대 까지는 했는데 환자의 입을 막을 순 없었다. 옆에 있는 다른 분들이 잠을 자고 있는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분은 소리를 질러댔고 중환자실 가득 목소리를 채웠다.


고단하고 길었던 밤 근무가 끝나고 하루를 되돌아봤다. 속으로 ‘Oh my god.’을 이렇게나 많이 외쳤던 하루가 있었단 말인가. 정신적 충격에 물리적 충격까지 더해진 머리는 아직도 얼얼했다. 하지만 이내 바퀴벌레를 어떻게 박멸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었고 기묘한 하루의 끝을 맺으러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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