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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세웅 Apr 02. 2021

엄마는 다 할 수 있어요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진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 선생님. 이식 잡혔어요."


연락을 받은 레지던트 선생님이 책임간호사 선생님께 다가가며 말했다. 부랴부랴 침상 준비와 물품 준비를 하고 병실 안을 소독했다. 수술 시작 시간은 새벽, 수술을 마치면 환자분은 아침 즈음 중환자실로 들어올 예정이었다.


긴 기다림 끝에 수술을 받은 환자분이 중환자실로 왔다. 심장이 잘 뛰도록 도와주는 약물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수술 직후 활력징후를 안정적인 상태로 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심장이식을 받은 환자분 곁에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이 자리를 지키며 환자 모니터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다행히 수술한 부위에서 출혈도 없었고 안정적인 혈압을 보며 승압제를 조금씩 줄일 수 있었다. 이제 의식 확인만 되면 한시름 놓을 수 있었는데 4시간쯤 지났을 무렵 컥컥거리는 가래소리가 들리며 인공호흡기 알람이 울렸다.


환자분에게 다가가서 이름을 불러드리며 본인이 맞는지 물어보는 질문에 환자분은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지금은 몇 시이고 계신 곳은 중환자실이며 수술은 잘 끝났다고 말씀드리고 지금은 눈감고 편히 쉬어도 된다고 설명드렸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환자분의 첫 모습이었다.


다음 날 출근했더니 같은 환자분을 돌보게 되었다. 밤동안 환자분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서 오전에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었다. 모자를 쓰고 멸균 장갑을 끼고 멸균 가운을 입은 채 환자분에게 인사를 건넸더니 기침과 심호흡을 열심히 하고 있던 환자분이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셨다.


"선생님이 첫날에 봐주셨던 선생님 맞죠? 한 번씩 깰 때마다 지금 몇 시고, 상태가 어떻다고 알려주셔서 제가 불안하지 않았어요. 다 기억나요. 감사합니다."


보통 수술 첫날에는 인공호흡기 치료를 하고 있는 환자의 불편감을 경감시키고, 안정적인 활력 징후를 유지하기 위해 진정약물을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환자실에서의 기억을 잘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고 지남력이 없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일까, 환자분의 말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또한 환자분은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나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안정감을 얻을 수도 있고 불안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으며 나의 언행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은 부서에 나와 체격이 비슷한 동료가 있는데 오전에는 내가, 밤동안에는 동료가 환자분을 돌보게 되면서 환자분 입장에서는 어떤 간호사가 하루 종일 자신을 돌봐주었다는 생각을 하셨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의도치 않게 환자분에게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아서 미소가 지어졌다.


환자분과는 이야기를 나누며 금세 친해졌는데 환자분에 대한 정보가 많아질수록 이해하고 공감하는 정도가 깊어졌다. 식사를 하고 약을 챙겨드리는데 먹어야 되는 약들도 많고 폐렴을 예방하기 위해 기침과 심호흡도 부지런히 해야 했다. 환자분은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어서 정서적으로 위축되고 수술부위가 아직 아프실 텐데도 꾹 참고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해내셨다. 기침과 심호흡을 너무 열심히 하셔서 오히려 말릴 정도였다.


"기침할 때 수술한 부위가 많이 아프진 않으세요? 정말 잘하고 계시고요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하셔요."


"네. 선생님. 아프지만 참고 해내야죠. 밖에서 가족들이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는 다 할 수 있어요. 어떻게 해야 빨리 낫는지 알려주시면 다 할게요. 감사합니다."


 말을 듣는데 어느 브랜드의 대표 문구가 떠올랐다. 인용하면 'Mom can do it.' 되려나. 중환자실에서 회복되어 일상으로 돌아가는 환자분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어떠한 환경이라도 극복할  있다는 '의지' 있다는 것이다. 의지가 있는 사람은 힘이 있다. 나는   환자분을 바라보며 엄마로서 병을 극복하고 가족들과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목격했다.


무엇이 삶을 계속 살아가게 하는가. 삶에 대한 의지가 상실되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무력해지는가. 반면에 숱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진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그렇게 환자분에게, 엄마에게 삶에 대한 태도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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