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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세웅 Apr 30. 2021

작은 도움이 큰 도움으로

나는 오늘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고 있는가?

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지난 밤동안 고생했다며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같은 공간에 있던 환자분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봤는데?'라는 생각이 스칠 때쯤 오랜 기간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환자분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인공호흡기 치료, 혈액투석 치료를 오랜 기간 했던 모습이 생생한데 지금은 상태가 많이 회복되어 수액 하나만 달고 보호자와 함께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었고, 기뻤다.


중환자실에서 환자와 간호사로 만나면 환자가 일반병동으로 올라갈 때까지 간호사들은 수많은 작은 도움을 제공한다. 몸에 삽입되어 있는 관들이 많고 맥박과 혈압, 체온, 호흡과 같은 활력 징후가 언제든지 나빠질 가능성이 많은 중환자의 특성상 환자는 자신이 누워있는 침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대화 상대가 되어주는 , 물을  오는 , 식사를 준비해주는 , 머리를 감는 , 면도를 하는 , 몸을 씻는 , 용변을 처리하는 것과 같이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느끼게 하는 행위부터 가래를 뽑아주고, 활력 징후를 감시하고, 약물이 정확하게 투여되고 있는지, 인공호흡기와 혈액투석기계 등이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환자의 회복을 돕는 행위까지 도움을 주는 행위가 다양하다.


환자에게 작은 도움을 주기까지 간호사는 수많은 요구와 상황을 함께 처리해야 한다. 수시로 처방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 환자를 돌보고 있을 때에도 다른 환자분의 요구를 마주치면 해결해야 할 일들이 고스란히 쌓이게 된다. 그리고 욕창을 예방하기 위해 체위 변경을 할 때라든지, 대변을 치울 때라든지, 섬망 증상이 심해져서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환자를 대할 때라든지, 환자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져서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라든지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잠시라도 앉아있을 새가 없이 일할 때가 많다.


예외인 경우가 있긴 하지만, 퇴원하는 환자분들은 대부분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순간들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그건 의식은 돌아오더라도 마취약의 기운이 조금이나마 남아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수술이라는 큰 사건을 겪었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고 평소에 지내던 곳이 아닌 낯선 중환자실 환경에서 치료를 받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며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환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묵묵히 환자를 위해 수많은 도움을 제공하는 동료들의 존재가 참 감사하다.


찰나의 순간이긴 했지만, 침상에서  쉬기가 힘들어 고생하던 환자분이 이제는   멀쩡히 서서 걸어 다니는 모습을 봤던 것이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끔 했다. 밤이나 낮이나 가리지 않고 교대하며 환자 곁을 지켰던 동료들의 수많은 작은 도움이, 환자분의 건강이 회복되고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도움으로   같아서 뿌듯했다. 앞으로도 수많은 환자분들을 만날 텐데, 아무리 작은 도움이라도  사랑으로 하는 날들이 쌓이다 보면 환자분도, 나도  도움을 발견해서 함께 기뻐하는 순간을 자주 마주치지 않을까.


나는 오늘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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