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세웅 Aug 21. 2021

모빌은 사랑을 싣고

코끼리와 문어

자기 몸보다 더 큰 기계들 속에서 인공기도를 문 채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한창 엄마 품에서 사랑받고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그때에 중환자실 침대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고 있었다.


혹시나 아이가 잠에서 깰 경우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완전히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에 사용하고 있는 진정제의 종류도, 심장이 잘 뛰도록 도와주는 약도 많았다. 일일이 나열하기도 버거운 많은 약들이 목과 다리에 삽입되어 있는 중심정맥관으로 투여되고 있었다. 부서에 있는 syringe pump(주사기에 있는 약물을 일정한 속도로 투여하는 기계)를 거의 다 끌어다 사용했을 정도로 아이의 중증도는 높았고 아이 곁을 지키는 의료진 모두가 노심초사하며 촌각을 다퉜다.


아이의 상태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 아이에게 닿았기 때문이었을까, 날이 갈수록 아이의 상태는 호전되어 투여하던 약물의 투여 속도도 줄이고, 몸에 삽입되어 있던 관도 하나, 둘씩 제거할 수 있었다. 처음 중환자실에 왔던 날을 생각해보면 '이 아이를 과연 살릴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했었는데 병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의료진과, 어려운 상태를 잘 견디고 극복해낸 아이의 합작품이었다.


이제 남은 건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는데, 재우는 약을 끊어서 그런지 아이는 부르는 말에 눈도 뜨고 반짝이는 눈망울로 주변을 이리저리 응시했다. 오랜 잠에서 깨어 보이는 세상이 얼마나 신기했을까. 동료들도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활짝 웃었다. 병을 이겨내고 이제 세상에 나아갈 준비를 하는 아이의 존재는 중환자분들을 돌보며 심각하고, 긴급한 상황 속에서 지쳤을 동료들의 마음을 녹이는데 충분했다.


다음 날 출근해서 아이 곁에 갔을 때, 어제는 보지 못한 물건이 있었다. 라텍스 장갑과 테이프를 이용해서 모빌을 만든 것이었는데 아이의 상황을 공감한 동료 간호사가 생각해낸 것이었다. 나는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코끼리와 문어를 보며 감탄했다. 제한된 자원 속에서도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실천한 동료가 존경스러웠다. 모빌을 돌릴 때마다 아이의 시선은 흔들리는 모빌을 따라가며 웃기도 하고 흥미를 보였다. 수준이 다른 간호를 보여준 동료의 모습을 보며 나는 오늘도 배운다.


아이 곁을 지나가던 모든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코끼리와 문어를 보면서 다들 웃고 감탄하며 지나쳤다. 파트장님도 인상 깊으셨는지 부서용으로 모빌을 주문해주셨다. 이제 코끼리와 문어는 역사 속으로 흘러가겠지만, 아이를 향한 공감과 사랑의 마음을 보여준 동료의 모습은 진한 향기로 남아 아이에게는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될 것이다. 또한 모빌은 사랑을 싣고 중환자실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은은따뜻함을 전해주어  다른 사랑을 실천하게끔 이끌어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은 아직도 가치 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