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세웅 Aug 17. 2021

당신은 아직도 가치 있어요.

자신이 이제 쓸모없다고 느껴질 때, '아니.'라고 말하는 일

당뇨,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만성신부전 등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죽기 전에 하나는 꼭 걸리게 되는 질병들이 있다. 나열한 질병들의 특징은 하나만 있으면 별 증상이 없을 수도 있고 혹은 걸리더라도 걸린 병에 대해서만 치료를 하면 되지만, 문제는 병과 병이 서로 얽혀서 합병증을 유발하고 그 결과는 여지없이 심장병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심장병에 걸린 분들을 보면 주로 중, 장년층의 연령인데 개개인을 바라보면 열심히 일을 해서 자식들도 잘 키워내고, 직장에서도 인정받으며 은퇴 전까지 열정적으로 살고 있던 한 가정의 부모님들,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하며 고된 삶을 살고 계셨던 분, 은퇴 후에 집에서 적적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할아버지, 할머니도 계신다.


코로나 시대의 중환자실은 어떤 곳인가. 코로나 시대 이전에도, 중환자 분들은 감염에 취약할 수 있는 컨디션이기 때문에 점심시간 20분, 저녁시간 20분 하루 두 번 면회가 허용됐었다. 그런데 코로나 환자가 점점 많아지면서 면회는 하루에 한 번으로, 그마저도 유지가 안돼서 현재는 임종을 앞둔 상태와 같이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면회가 제한되고 있다.


바깥세상과 단절되고, 침대 밖을 벗어날 수 없는 자율성이 크게 제한된 환경에서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누구를 그곳에 앉혀놔도 불안하고, 두렵고,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그리고 환자 본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의학용어들과 모니터의 알람 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마치 아쿠아리움의 물고기처럼, 동물원의 동물처럼 사생활이 없는 상태로 자신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슨 감정을 느끼고 계실까?


이러한 의문을 품고 환자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계시는 환자분들은 정말 괜찮으실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충격적인 상황에 둘러싸인 결과로 침묵하고 계신 상태일지도 모른다. 또한 차라리 치료가 너무 힘들어서 자신을 죽여달라며 힘듦과 우울함을 호소하고 계신 환자분들은 어쩌면 내 얘기를 들어달라고, 나 너무 힘들다고, 할 수 있다고 해달라고 외치고 계신지도 모른다. 몇 날 며칠을 인내하고 시키는 대로 하고 절제했는데 자신의 기대보다 회복 속도가 더딘 자신의 몸상태에 대한 속상함, '나는 이제 어떻게 해도 안돼.'라는 무력감이 환자와 나 사이의 공간을 채운다.


만약 가족 혹은 친구, 연인이 우울하고 무기력하다며 나를 찾아왔는데 나 역시도 우울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면 상대방은 위로를 받고 힘을 얻기는커녕 되레 더 기분이 다운되고 괜히 속마음을 표현했고, 만나러 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상대방 입장에서 자신이 이제 쓸모없다고 느껴질 때, '아니.'라고 말하는 일이 가장 필요한 위로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중환자실에서 환자 옆에 있는 간호사는 다르게 표현하면 환자의 가족,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존재다. 내 가족이, 내 친구가 힘들다고, 나 이제 쓸모없는 거 같다고, 그만하고 싶다고 말할 때 '당신은 아직도 가치 있어요.'라고 말해주고 곁을 지키며 돌봐주는 일은 인간이 건넬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다.


누군가 인생이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보는 것이라고 했던가. 중환자실 어느 침상 가운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환자분 앞에서, 내 앞의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아픔을 겪고 있고, 중환자실에 오게 되었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모두 해결해줄 수도 없지만 우리 같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고, 꼭 여기서 살아나가서 새로운 삶이라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마음으로 의미 있게 살아보자고,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가치 있을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고 말할 수 있는 하루하루이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난이도 조절 실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