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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세웅 Nov 02. 2021

츄파춥스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

밤 12시,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 시간에 중환자실은 분주하다.  재원 기간이 길어진 환자분들의 몸을 씻기고, 머리를 감겨주는 시간이기도 하고, 몸무게도 재야 하고, 몸에 욕창이 생기진 않았는지 확인하고 옷과 이불 등을 갈아주기도 한다. 중환자실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환자분들은 힘들어하시지만 곁에 있는 간호사를 의지하면서 병을 극복해가신다. 하나라도 더 해드리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 '괜찮아요. 바빠서 그러신 거 알아요.'라며 오히려 간호사들을 위로해주는 환자분의 말을 들을 때면 울컥하기도 한다.


그날 밤도 밤 근무 때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근무하는 간호사들끼리 각자 팀을 이뤄 환자분을 씻기고, 체위도 변경해드리고, 편안하게 주무실 수 있게 환경을 만들고 나서 마침 투약하던 주사를 교체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 약을 정리한 뒤 도움이 필요한 동료가 있는지 보기 위해 다른 침상으로 다가갔는데 멀리서 나를 보고 손을 흔드는 환자분이 있었다. 갑자기 나에게 인사를 해주시는 환자분을 보며 영문도 모르고 나도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는데 알고 보니 환자분은 담당 간호사로부터 약 한 달 반 전 수술을 받고 나왔을 때 내가 담당 간호사였고 밤동안 땀 흘리며 돌봐주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의식을 진정시키는 약물을 쓰고 있었기에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정을 듣고 나서는 정말 감동했다고 말해주셨다.


되돌아보니 환자분이 수술을 받고 나오신 날도 나는 밤 근무였다. 자정을 조금 남겨두었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수술이 끝나고 환자분이 중환자실로 도착하셨다. 약물치료와 수혈 치료를 병행하면서 그날 밤을 보냈다. 이후에도 어려운 시기가 몇 번 있었지만 다 극복하고, 인공호흡기도 떼고, 말도 하는 환자분의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 또한 알아봐 주시고, 건강을 회복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근무하는 중에 환자분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순간을 마주칠 수 있다는 건 서로에게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반대편에는 심장 수술을 받은 아이가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큰 수술을 받아야 했고, 부모님과 떨어져서 낯선 환경 가운데 지내야 하는 점이 큰 어려움이었다. 씩씩하게 치료를 잘 받다가도 부모님이 보고 싶다며 투정 부리고, 유튜브와 텔레비전을 봐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두려움 때문에 아이는 가족들을 계속 찾았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도 못하고,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부모님들의 상황이 있기 때문에 출근 전, 퇴근 후, 자기 전에 영상통화를 이용해 환아의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씩씩한 태도로 힘든 치료를 잘 받던 아이가 휴대폰 너머로 보이는 엄마의 모습을 보자 어리광을 부렸다. 그 순간 아이도 부모님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인데,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가슴 아팠다. 아이는 통화가 끝난 뒤에도 잠을 뒤척였고,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먹였다.


고요한 중환자실을 울리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환자분에게도 전해졌다. 환자분은 사연을 듣고선 아이가 혹시 사탕을 좋아하는지, 무슨 맛을 좋아하는지 물어봐달라고 했다. 아이는 우는 와중에도 콜라, 오렌지, 포도맛 사탕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환자분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츄파춥스 통에서 콜라, 오렌지, 포도맛 사탕을 꺼내서 아이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고 했다. 사탕을 건네받은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내일 일어나서 사탕을 먹어도 되는지 물어봤다. 내일 상태 봐서 먹을 수 있으면 꼭 먹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아이를 겨우 달래고 재울 수 있었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가장  알고 공감할  있기 때문일까. 자신도 아프고 회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선뜻 자신이 가진 것을 베푼 환자분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는 환자분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다음날 엄마로부터 간식을 받은 아이는 자신도 빚지고는  산다는 말과 함께 사탕 3개에 초콜릿 3개까지 얹어서 환자분에게 갚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이에게는 아닌 밤중에 츄파춥스가  위로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힘든 병원 생활을 견디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츄파춥스를 기꺼이 아이에게 내어준 환자분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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