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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세웅 Nov 06. 2021

기다리는 이, 앞당기는 이

기다림의 끝을 향해

만 4년간의 흉부외과 중환자실 간호사로서의 여정을 마치고, 장기이식센터 이식지원팀으로 부서이동을 했다. 흉부외과 중환자실 간호사로서 환자분들을 돌보면서 희로애락도 함께하고 보람을 많이 느끼며 일했기 때문에 그동안 다른 모집공고에는 단 한 번도 가슴이 뛴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담당하는 장기가 심장이라는 사실을 보면서 처음으로 가슴이 뛰었다. 붙을 거라는 기대 없이 지원했는데 덜컥 붙어버렸다. 듣기로는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 최초로 남자인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로 선발되었다고 했다.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도 들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수술을 받은 환자분들의 회복을 돕고 일반병동으로 보내드리는 과정까지가 중환자실 간호사로서 임무였다면, 심장이식 코디네이터는 환자분이 심장이식을 받기 전부터 치료적 관계를 맺기 시작해서 심장이식을 받고 나서도 건강하게 일상을 살아내는 것까지 돕는 것을 임무로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내가 일하는 이식지원팀에는 다양한 장기이식 코디네이터가 근무하고 있다. 각각의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는 심장뿐만 아니라, 폐, 간, 신장, 췌장 그리고 최근에는 수부 이식까지 담당하여 상담 및 관리를 하고 있다. 선생님들은 수술실, 중환자실, 병동 등 다양한 곳에서 경력을 쌓으시다가 현재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계신다. 사무실에 일찍 도착한 날, 아직 근무시간이 아닌데도 전화기가 계속 울리기 시작하는 걸 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정말 간절하게 장기이식을 기다리고, 상담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느낀다. 아마 이곳에서 일하지 않았더라면, 나와 주변 사람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이 사실을 평생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웃들의 아픔을 헤아리고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는다.


각각의 병원마다 장기이식을 대기하시는 분들이 대기하고 있다. 대기자마다 상태가 다르고, 기다린 기간도 다르므로 정해진 기준에 따라 응급도가 정해진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이라는 기관에서 각각의 병원 대기자분들의 명단을 취합하고 장기이식 코디네이터와 의사소통하면서 엄격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수혜자를 선정하고 있다. 뇌사자 이식의 경우에는 언제 뇌사 판정을 받은 환자분이 계신다고 연락이 올 지 모르기 때문에, 평소에도 휴대폰의 알람을 켜 두고 연락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처음 핸드폰을 구입하고 나서 쭉 무음 아니면 진동 상태로만 설정하고 지냈었는데, 울리는 전화 벨소리가 아직도 낯설다.


내가 일하는 곳의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는 뇌사자 관리 업무도 담당한다. 뇌사란, 임상적으로 뇌 활동의 회복이 불가능하게 되어 정지된 상태를 일컬으며 이 경우 뇌사 환자의 장기를 타인에게 이식할 수 있다. 뇌사 상태에 빠진 환자분들의 사연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을 붉히게 된다. 하물며 가족들의 마음을 어떻게 다 헤아리고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 단어 하나, 손동작 하나, 표정 하나마다 조심하고, 또 사려 깊게 하려 고민한다. 남겨진 이들은 충격과 슬픔의 강도를 주체할 수 없어 때로는 격앙된 감정을 표출하기도 하고, 한없이 울기도 한다. 어떤 말과, 어떤 행동이 위로와 사랑으로 전해질 수 있을까 매번 고민해보지만 생각의 한계에 부딪힌다. 그럴 때마다 이 세상에서 위로를 가장 잘하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부족함만 느낀다.


평소에는 수십 년간 심장이식을 담당한 심장내과 교수님과 함께 심장이식을 받기 전 대기하시는 분들, 심장이식을 받고 회복 중이신 분들, 심장이식을 받고 일상을 살아가시는 분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상태를 더 호전시킬 방법은 없는지 의견을 나눈다. 같이 일해보기 전에는 엄격하고 무뚝뚝한 교수님인 줄 알았는데 환자의 경제적 상황, 신체적 어려움, 정서적 지지를 모두 고려하여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접근하시는 교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감명을 받을 때가 많다. 나는 시간이 생길 때마다 병원에 입원하고 계신 이식대기자 분들, 이식을 받고 회복 중인 분들을 방문하여 아픈 곳은 없는지, 감정적으로 어려움은 없는지 살핀다. 환자분들에게 '지금 가장 어려운 게 무엇인지?'에 대해 물을 때마다 공통된 답변을 듣게 되는데 그것은 기다림이다. 기다리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지 몰랐다는 어느 환자분의 말을 듣고서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기다림의 종류는 두 가지가 있다. 기약이 있는 기다림과, 기약이 없는 기다림이다. 기약이 있는 기다림은 언젠가 끝이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고 동기부여도 할 수 있다. 시험이 끝나는 날, 휴가,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는 약속 등이 그렇다. 그에 반해 기약이 없는 기다림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언제 합격할지 모르는 취업준비생들, 차도가 보이지 않는 환자분들, 장기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 및 보호자분들의 마음이 그렇다. 작년 겨울에 입원해서 봄, 여름, 가을을 보냈는데 다시 겨울이 오고 속절없이 시간만 가는 것 같아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는 환자분 앞에서 나도 같이 울었다. 내가 조금 더 노력하고 일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거면 어떻게라도 해보겠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기다림에 끝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끝이 다가오기를 마음속으로 바랐다.


어느 날은 동시에 두 군데서 뇌사자가 계신다고 연락을 받았다. 심장은 굉장히 예민한 장기이기 때문에, 심장을 구득해서 이식하기까지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 뇌사자가 계신 병원과의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참 다행이었다. 두 곳 중에 한 곳의 심장을 입원해서 대기하고 계신 한 분이 수혜 받기로 결정이 되고 나서 다음 단계를 준비해나갔다. 기증해주시는 병원의 담당자와 통화해서 크로스 매칭(기증자와 수혜자의 혈액을 섞어 응집반응을 확인하는 검사)용 혈액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하고, 검체가 안전하게 검사실로 전해질 수 있도록 조율하고, 검사실과도 검체 도착시간과 검사 결과가 나오는 시간을 의사소통하며 일정을 조율했다. 적출을 하러 가는 의료진들의 코로나 검사를 챙기고, 수술 물품은 빠진 것이 없는지, 가장 최적의 교통편은 무엇인지 확인하고 심장이식팀과 함께 기증자가 계신 병원으로 출발했다.


병원에 도착 후 탈의실에서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었다. 간호학과 실습생으로 수술실을 들어갔을 때 이후로 수술실을 처음 가봤는데 사뭇 차가운 공기와 왠지 모를 긴장감이 맴돌았다. 기증자분이 계신 수술방에 도착해서 먼저 도착해서 준비하고 있던 의료진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순서를 기다렸다. 수술을 시작하기 전 추모사를 듣는데, 들을 때마다 울컥한다. 


누군가의 사랑이었고, 누군가의 그리움인 OOO 님께서 오늘 이 땅에 사랑의 꽃씨를 뿌리고 떠나십니다. 고인이 주신 나눔의 사랑이 더욱 널리 퍼지게 해 주시고, 가시는 길에 평안과 안식이 있으시길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누군가의 사랑이었고'로 시작하는 추도사의 내용은 장기 기증이라는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을 보여주신 환자 및 보호자분들의 마음과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그 사랑은 얼마나 위대한가. 우리 모두는 자신의 것을 타인에게 내어주는데 얼마나 인색한가. 수술을 마친 심장이식팀은 1분 1초를 앞당기려 애쓰며 옷도 대충 갈아입고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로 달렸다. 기다리는 이가 있는 것을 알기에 단 한순간도 허투루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앞당기는 이들은 기다리는 이의 기약 없었던 기다림의 끝을 선물하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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