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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세웅 Dec 20. 2021

떡볶이가 먹고 싶어요.

아이의 소원

엄마. 속이  좋아요.”


구역감을 호소하며 속이 좋지 않다는 아이의 말에 부모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별일 아니고 괜찮은 상태이길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와는 달리 모니터를 바라보는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아이가 지금 상태가 좋지 않아 당장 입원 치료하면서 경과를 지켜봐야   같습니다.”


그렇게 의사 선생님의 말과 함께 아이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선천성 심장병을 앓으며 여러 수술과 시술을 견뎌냈던 아이는 건강하게  지내는 듯싶었으나, 하루아침에 심초음파  심장 기능이 많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리며 성장하고 있어야 했을 시기에 아이는 심장이  뛰도록 도와주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으면 먹는 것도,  쉬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했다. 밖의 친구들이 놀이터에서 그네와 미끄럼틀을  동안, 아이에게는 병원 한편 침대 공간이 유일하게 허락된 놀이터였다.


아는 사람도 없고, 집과는 다른 환경에서 아이는 당연히 적응을 어려워했다.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이 인사를 건네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루, 이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아이의 마음을 얻은 선택된 사람들만이 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있었다. 친해지려면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마음을  아이는 의료진들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기도 했고,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하기도 하면서 병원에서의 시간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보내고 있었다.


심장기능이 떨어진  평생 살아갈  없기에, 아이의 상황에서   있는 최선의 치료이자 유일한 방법은 심장 이식을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아 장기기증의 경우, 1년에 뇌사자 장기 기증을 통해 심장을 수혜 받는 경우가 성인에 비해 케이스가 적고, 받는다고 하더라도 대기기간이 상당히 길기 때문에 이식을 받기  중간 단계로 VAD(Ventricular Assist Device, 심실 보조장치) 삽입하는 수술을 하게 된다. 수술이  되기만 하면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도 심장기능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숨이 차지 않으며, 제한적이지만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치료방법이라고   있다. 다만, 부모님과 아이의 입장에서는 어린 나이에 벌써 여러  가슴을 여는 수술을 하고, 기계와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어렵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부모님은 담담하게 수술을 받기로 동의하셨고 아이는 성공적으로 VAD 삽입 수술을 받게 되었다. 며칠 동안   아이를 깨워서 인공호흡기도 제거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의 심장을  뛰게 도와주는 약물도 끊게 되었다. 처음에는 VAD 삽입한 부위를 소독할 때마다 아이는 아프고 힘들다며 펑펑 울었었는데 이제 상처가 아문 건지, 아이가 덤덤해진 건지 나중에는 의료진이 소독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오히려 아이는 가만히 있는데 소독하는  지켜보는 엄마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선생님. 우리 아이 대단하죠? 엄마는 이렇게 울고 있는데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있으니까요.”     

아이의 상태를 보러  때마다 힘든 치료를 씩씩하게  견디고 회복하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어린 나이에 죽을뻔한 고비를  번씩이나 넘긴 아이와 곁을 지키는 부모님의 상황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져서 가슴이 시렸다. ‘오늘 건강한 심장을 이식받을  있게 되었다고 말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노력한다고 해서 심장이식을 받을  있는 시기가 앞당겨진다면 얼마든지  노력할 텐데...’라는 애타는 마음이 마음속을 가득 채웠다.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대기자분들은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심장이식을 당장 받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죽기를 바라는  아닐까라는 생각에 죄책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누군가가 죽기를 바라는  아니지만, 심장이식을 받아서 건강한 일상을 되찾고 싶은  마음은 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아이의 어머니도 그랬다. 실낱 같은 희망을 바라보며 힘든 시기를 견디면서도 복잡한 감정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버거우셨을 것이다. 일하던  시간을 내서 찾아뵈었을  대부분 담담하게 대답하셨지만, 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쏟아낼 때면 진심으로 공감하고, 같이 울며, 함께 있어주는 것만이 내가 심장이식 코디네이터로서   있는 최선이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고 있던 어느 , 퇴근을 했는데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에서 연락이 왔다. 서울에서  떨어진 지역이었는데 뇌사 장기기증자가 계시다는 연락이었다. 기증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정보를 취합하여 심장이식팀과 상의를 했다. 아쉽지만 심장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판단이 되어   기다려보기로 결정이 됐다. 아쉬웠지만, 내일  해야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눈을 붙여야 했다. 방에 불을 끄고, 이불을 덮고 잠에 들려는  순간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다른 곳에 뇌사 장기기증자가 계시다는 연락이었다. 다시 불을 켜고 컴퓨터 전원을 켰다.  번째 연락받았던 곳보다 거리도 가깝고, 키와 체중도 비슷하고, 심장의 상태도 양호해서 심장이식을 진행할  있는 조건이 성립했다. 피곤했지만, 기쁜 감정이 샘솟아서 피곤한 줄도 모르고 심장이식팀과 상의를 했다. 심장이식을 진행하기로 결정되었고,  병원 코디네이터 선생님과 연락하여 심장이식이 원활히 이루어질  있도록 의사소통했다.


다음  아침, 출근하자마자 아이와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고 어머니는 초조한 모습으로 계셨다. 올해는 꼼짝없이 병원에 있어야 되는  생각했던 어머니는 아이가 심장 이식을 받는다고 하면 마냥 기쁠  알았는데, 당장 심장 이식을 받는다고 하니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어머니의 말을 경청했고, 아이가 심장이식을 성공적으로 받을  있도록 의료진들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담담한 위로를 건넸다. 곁에서 오래 있고 싶었지만 오전에 해야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자리를 떠났다. 최대한 빨리 오전에  일들을 마친 다음, 기증자가 계신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구급차 배정 연락을 하고, 수술에 필요한 물품을 체크했다. 장기를 이동하기 위한 아이스박스와, 수술 물품을 넣은 캐리어를 끌고서 심장이식팀은 약속된 시간을 맞추기 위해 구급차를 타고 이동했다.


기증자가 계신 병원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수술실에 도착했다. 심장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를 구득을 담당하게  여러 병원의 의료진이 도착해있었다. 의료진 분들과 정중히 인사를 주고받고 나서 기증자분을 마주치게 되었다. 삶의 끝까지 장기기증이라는  사랑을 실천하신 기증자분을 향한 추도사 낭독  엄숙한 분위기에서 수술이 시작되었다.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심장을 구득할  있었고, 구급차를 타고선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시에 도착할 예정이고, 지금 어디를 지나가고 있고, 어떤 상황인지 촌각을 다퉈가며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 가장 빠른 동선으로 심장을 수술실에 전달할  있었고 저녁 늦게까지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의 부모님을 마주치게 되었다. 진행 상황을 궁금해하는 아이의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고 아이가 심장 이식을  받도록 의료진분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을 남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간에, 심장이식을 받은 아이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다음  출근해서 밤동안 출혈은 많이 나지 않았는지, 생체 징후는 안정적인지 아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아이는  회복하고 있었고 치료과정이 순조로웠다. 자기 몸만큼 컸던 기계를 제거하고, 몸이 한결 가벼워진 아이는 어느덧 인공호흡기도 제거하고 일반 병동으로 이동할 시간이 찾아왔다. 엄마 품이 그리웠을 아이는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이동하여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도 하고, 핸드폰을 가지고 놀기도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제 밥도 먹고, 혼자서 화장실도 가고 퇴원 준비를 하던 아이에게 무엇을 가장 먹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고민을 하던 아이는 처음에 치킨을 먹고 싶다고 했는데, 이식한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경과를 지켜보고 먹자고 했다. 치킨 다음에 먹고 싶은  무엇인지 물어보았을 , “떡볶이를 먹고 싶어요.”라는 아이의 말에 그건 괜찮을  같다고 말했다. 이미 라면도 먹고, 즉석식품을 먹고 탈이 나지 않은 것을 확인했을 때였으므로 이틀 뒤면 퇴원할 아이를 위해 떡볶이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솜씨

퇴근하고 나서 장바구니를 들고 근처 마트로 향했다. 떡과 어묵, 양배추, 고추장, 소시지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재료를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돈은 이럴  쓰는 거지.’라는 혼잣말을 하며 떡볶이를 먹고 행복해할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는데 아마 간호사로 살아가며   중에 손에 꼽을 만큼 잘한 일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 전에 떡볶이를 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알람을 맞추고 일찍 잠들었다.


아침 다섯  . 잠을 깨우는 알람 소리가 울렸다. 나는 아침잠이 많은 타입이라서 알람 소리를 듣고  번에 일어나지 못했다. 5분만, 10분만  자야지 하다가 여섯 시가 되었다. 이제  이상 뒤로 미룰  없었다. 크게 마음을 먹고 이불을 개고 음식 준비를 했다. 혹여나 재료에 묻어있는 불순물들이 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모든 재료를 흐르는 물에 3번씩 씻었다. 출근시간에 맞춰서 떡볶이가 완성되었고, 아이에게 줄만큼 소분해서 포장하고 남은 떡볶이는 동료들과 나눠먹을 요량으로 병원에 들고 갔다. 이른 시간에 아이가 있는 병실 문을 노크했다. 아이는 잠을 자고 있었고, 곁을 지키고 있던 어머니께서 나오셨다. 어머님께 손수 만든 떡볶이를 건네면서 “아이가 깨면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아침에 해야  일들을 하러 갔다.

아이를 위한 떡볶이

점심을 먹고 나서,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거나 심장이식을 대기하고 있는 환자분들을 만날 시간이 생겼다. 나는 아이가 떡볶이를 맛있게 먹었는지 궁금해서 병실로 찾아갔다. 마침 아이는 깨어있었고 떡볶이를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것이 있다면서 주섬주섬 내게 선물을 건넸는데, 닥스훈트를 본뜬 틀에 색을 입힌 작품을 선물로 주었다. 선생님께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서 오전 내내 만들었다는데 자신이 표현할  있는 가장  사랑을 내게 전해준  같아서  감동을 받았다. 내일이면 아이는 병원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아이가 내게  소중한 마음은 평생  가슴속에 남을 것이다. 언젠가 일을 하다가 힘에 부치고 지치는 순간이 분명히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닥스훈트를 바라보면서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선물해 준 닥스훈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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