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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세웅 Jan 11. 2022

검사를 받다가

내가 그동안 무심했었구나

얼마 전 지내다가 몸에 불편감을 느꼈다.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평소처럼 지내다가 점점 증상이 심해져서 병원을 찾았다. 성인이 된 후 간호사로 병원에서 일할 줄만 알았지, 내가 일하는 병원에 환자로 가게 될 줄 몰랐다. 병원에 가기 전,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내가 앓고 있는 질병을 찾아봤다. 책과 인터넷에 정리되어 있는 자료들을 찾아보니 가벼운 증상일 수도 있고 드물게 예후가 나쁠 수도 있다는 설명도 써져있었다. 드물게라는 단어에 왠지 내가 포함될 거 같아 잠시 불안한 마음이 스친다. 아마 내가 일하는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대부분의 환자분들도 '설마 나는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품고 병원에 왔다가 입원 치료를 하고, 수술까지 하게 되는 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과 퇴근을 밥먹듯이 반복했던 병원인데, 진료 접수를 하는 것부터 낯설었다. 다행히 접수를 받으시는 간호사 선생님께서 친절하게 안내해주셨다. 도착 확인을 하고, 번호표에 적힌 순서대로 차례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진료실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괜찮을지, 심각한 병일지, 간단한 시술로 끝날지, 수술을 해야 할지와 같은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차분한 공기 속 서로를 향한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의사 선생님은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적절한 치료를 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물어보셨다. 나는 판단하는데 최대한의 도움이 되도록 성실하게 답했다. 문진이 끝난 후 질병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CT 촬영이 필요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나는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을 하고 진료실을 나왔지만 CT 촬영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꽤 무겁게 느껴졌다. 간호사로 일할 땐 환자분들에게 "정확한 원인을 알기 위해서 촬영해야 하고, 금식해야 하고, 몇 시로 예정되어 있습니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말했던 거 같은데 그 말을 들은 환자분들의 마음 한편에는 불안감이 크셨을 거라는 생각이 확 들었다.


약속한 CT촬영 날짜가 되었다. 조영제를 사용하는 촬영은 아니라서 금식은 필요 없었지만 괜스레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입던 옷을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번호표를 뽑은 후 기다렸는데, 환자복을 입으니 진짜 환자 같았다. 막 어딘가 아픈 거 같고, 내 몸이 약해진 거 같고,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CT 촬영기에 누워서 숨을 몇 번 참았다가, 다시 쉬었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촬영이 끝났다. 이 결과에 따라서 나의 치료방향이 달라질 것이다. 제발 별 것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리고 일주일이 금방 지나갔다.


CT 촬영 영상과 결과를 본 의사 선생님은 심각한 건 아닌데 전신마취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마 국소마취로 하면 너무 아파서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를 했기 때문에 전신마취를 하기로 결정했다. 전신마취를 하기 위해선 심전도와, 흉부 X-ray와, 혈액검사, 마취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진료실을 나와서 수술 스케줄을 잡고 오늘 완료해야 하는 검사를 받으러 이동했다. 처음 이동한 곳은 심전도실이었다. 흉부외과 중환자실 간호사로서 환자분들의 심전도는 읽을 줄 알고 대처가 가능했었는데 정작 내 심전도는 어떤지 모르고 살았었다. 차례가 돼서 방에 들어가 양말을 벗고, 상의를 탈의했다. 조금 차가울 수도 있다는 검사실 선생님의 말에 환자분에게 주사를 놓기 전 조금 따끔할 수도 있다고 말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근데 막상 해보니 차가운 거보다 심전도를 촬영하기 위해 가슴 쪽에 부착한 전극으로 인한 통증이 더 힘들었다. 전극은 스티커 형태로 나온 제품도 있지만, 떨어지지 말라고 압력을 주어 고정시키는 형태로 된 것도 있다. 내가 이번에 한건 후자였는데 오래 하고 있으면 멍이 들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아팠다. 흉부외과 중환자실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서 환자분들이 심전도를 촬영했었다. 많이 아프셨을 텐데도 묵묵히 협조해주셨던 환자분들의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무심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반성했다.


층수를 바꿔 찾아간 X-ray 촬영실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새삼 이 세상에는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음을 확인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는데 한 어르신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셨다. 내용을 들어보니 왜 자신을 빨리 촬영해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분명 사람이 많았는데 복도에는 어르신의 목소리만 들렸다. X-ray를 촬영해주시는 선생님이 복도로 나와서 순서대로 하고 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하였으나 이미 심사가 뒤틀린 어르신과 대화가 될 리 만무했다. 그러던 중 마침 어르신의 차례가 되었고, 촬영하고 다른 곳에 가실 때까지 계속해서 욕설을 하셨다. 오전에 한바탕 소동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왠지 모를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바쁜와중에도 최선을 다했던 검사실 선생님의 다친 마음은 누가 위로해줄 것인가.


채혈실에 모여든 사람들의 인파도 만만치 않았다. 내 앞에 기다리고 있던 수십 명의 사람들의 채혈이 완료되고 나서야 겨우 내 차례가 되었다. 정말 병원에 계신 선생님들 모두 각자 계신 곳에서 최선을 다하시고 계시고, 바쁨을 감당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야 할 모든 검사를 마치고서 입원을 확정하러 갔다. 입원 전 환자 및 보호자 모두 입원일 기준 72시간 내 코로나 음성 결과가 필요함을 설명 듣고 나서 입원일 및 수술 날짜가 확정되었다. 이제 수술을 하고 나면, 수술을 받고 살아가시는 환자분들의 마음을 더욱 공감하고, 진실된 위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심이 아닌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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