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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세웅 Apr 08. 2022

마음이 모일 때 일어나는 일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혼자 간다면 단기적으로는 성공할 수도 있고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지만 난관을 마주쳤을 때 쉽게 지치고 결국 그다음 단계로 가지 못하게 된다. 이에 반해 함께 간다면 처음엔 비록 느릴 수 있지만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서로 힘을 합쳐서 이겨내고 혼자서는 해내지 못했을 법한 일들도 할 수 있음을 표현한 말이다.

병원에서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나는 이 속담이 더욱 와닿는다. 왜냐하면 절대로 혼자서 사람 한 명을 살릴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당장 환자 한 명이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고 퇴원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봐도 진료 접수를 도와주시는 직원분들, 진단하고 치료해주시는 의사 선생님, 수술 전, 중, 후 그리고 퇴원 시까지 성심성의껏 치료하고 돌봐주시는 병동, 수술실, 중환자실 선생님들 그리고 약사, 영양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선생님들... 다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분들이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불철주야 병원에서 자리를 지키며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렇듯 혼자서는 한 생명을 살리는, 멀리 가는 일을 해낼 수 없다.

어느 날, 함께 일하는 교수님께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입원한 환자분 중에 최근 증상이 심해졌고 심장이식을 고려하고 있어 이식 전 상담을 요청하는 연락이었다. 환자분은 평소 숨이 차는 증상이 있어 약물로 증상 조절을 하면서 외래를 보셨었는데 최근 증상이 심해져서 입원하게 되셨다고 했다. 환자분의 심장이 조금 더 잘 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약물을 투여하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심부전 증상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지지부진한 상황 가운데, 환자분의 입장에서는 심장이식을 받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심장이식은 어떤 경우 진행하게 되는지, 진행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선정 기준은 무엇이며, 비용 및 수술 후 경과는 보통 어떤지와 같은 정보를 알려드리고, 궁금해하시는 부분도 상담했다. 이식 상담을 진행하는 중간에도 환자분은 숨이 차서 힘들어하셨기에 잠깐씩 쉬었다가 다시 설명드리는 것을 반복했다. 환자분과 보호자분을 처음 마주쳤을 때는 조금 경계하시기도 하고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셨지만, 이야기를 경청하고 차분히 설명을 드렸더니 이내 경계를 푸시고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건네주셨다. 나는 환자 및 보호자 분과 상담을 할 때 꼭 말씀드리는 것이 있다. ‘우리 한 팀이 되어서 병원 밖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을 함께 마주치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이다. 의료진이 정확한 진단을 하고, 시의적절한 치료를 하고, 몸과 마음이 회복되도록 정성껏 돌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은 반쪽짜리 치료다. 환자분 스스로 ‘살아보겠다.’라는 굳은 의지도 있어야 하고, 지칠 때마다 큰 힘이 되어 줄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지도 환자분이 회복하는 데 있어서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정말 많이 목격했기 때문에 이 부분을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씀드리곤 한다.

병원에서 입원하면서 심장이식을 대기하기로 결정한 환자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호흡 곤란 증상이 무척 심해지셨다. 환자분의 코를 통하여 고유량의 산소를 공급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중환자실로 옮겨져 심부전으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게 된 환자분은 수일 내에 심장이식을 받지 못하게 되면 위급해질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심장이식을 받아야 할 응급도가 증가한 만큼 환자분과 가족들, 의료진에게 주어진 시간은 줄어들고 있었다. 장기이식에 있어서 생명 나눔의 뜻과 큰 사랑으로 장기기증을 실천하시는 분이 없다면 애초에 장기이식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KONOS라고 불리는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으로부터 뇌사장기기증자분이 계신다는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이틀 기다려봐도 연락이 오지 않는 애꿎은 핸드폰만 바라보면서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 날이 있다. 평소와는 다른 유난히 바쁜 날. 그런 날엔 왜 이리도 일이 몰리는지 도통 알 겨를이 없다. 어제까지 괜찮았던 환자분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고, 집에서 잘 지내시다가 증상이 악화된 환자분이 새로 입원하게 되고 동시에 뇌사로 추정되는 환자분이 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던 그런 날. 나는 시간을 쪼개서 급박한 상황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갔다. 그러던 중 KONOS로부터 뇌사장기기증자분이 계신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고 긴박한 상황 가운데 심장이식팀에서 상의를 한 결과 수술을 진행해보기로 결정되었다. 이후 나는 기증자 분의 뜻이 생명 나눔으로 잘 이어질 수 있도록 필요한 법적, 의학적, 행정적 절차를 조율했고 수술 일자가 정해지게 되었다.

수술 당일 앰뷸런스를 타고 이동하기 전 장기구득에 필요한 물품을 확인하고, 환자분의 얼굴도 한 번 보고 병원을 나섰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나와 눈을 마주치며 안부를 주고받았던 환자분이 지금은 인공호흡기에 숨을 의지한 채 촌각을 다투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환자분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을 때, 심장이식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끔 최선을 다하는 것과 환자분이 수술을 잘 받고 얼른 회복되시기를 응원하고 기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이식팀에 출발한다는 연락을 남긴 채 심장구득팀은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을 나섰다.

기증자분이 계신 병원에 도착하기 전 KODA라고 불리는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코디네이터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수술실은 몇 층에 있고, 도착하면 연락을 달라는 그 말이 든든했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항상 기증자분 곁을 지키고 계신 KODA 코디네이터 선생님들께 늘 감사한 마음이 든다. 병원에 도착 후 앰뷸런스에서 내려서 심장 운반용 아이스박스, 장기구득용 물품을 보관한 캐리어를 끌고 수술실로 향했다. 심장구득팀은 수술복으로 갈아입고선 기증자분이 계신 수술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술을 시작하기 전 KODA 코디네이터 선생님께서 추모사를 낭독하셨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의료진이 기증자분의 큰 사랑을 기리며 묵념했다. 엄숙한 분위기 가운데 수술은 시작되었고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게끔 진지한 태도와 집중하는 분위기가 수술실을 감쌌다.

혈액이 장기에 공급되지 않는 시간을 허혈 시간이라고 하는데 여러 장기 중 심장은 허락된 허혈 시간이 4-6시간으로 가장 짧은 장기이기 때문에 심장구득팀과 심장이식팀은 계속 소통하면서 1분 1초를 아끼려고 노력했다. 심장을 구득한 뒤 심장구득팀은 남아있는 수술실 의료진과 KODA 코디네이터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앰뷸런스로 향했다. 혹시나 도로가 막히진 않을지, 도착 예상 시간보다 더 늦어지진 않을지 초조했다. 시간이 마침 퇴근 시간에 겹쳐서 정체되어 있는 도로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앰뷸런스가 지나갈 수 있도록 양보해주시는 시민들의 모습을 목격한다. 시민분들이 좌, 우로 차량의 핸들을 꺾어 길을 만들어주신 덕분에 앰뷸런스는 수월하게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앰뷸런스를 타고 빨리 가야 하는 상황 때문에 양보해주신 한 분 한 분께 모두 인사를 드릴 순 없어서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양보해주신 모든 분들이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데 동참해주셨다는 마음이 들어 마음속에 감사함이 샘솟고 매번 감동을 받는다.

수술실에 심장을 전달한 후 가쁘게 쉬고 있는 숨을 가다듬었다. 이제 환자분이 잘 버티고 이겨내서 회복하시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감사하게도 수술을 잘 되었고, 환자분의 컨디션도 좋아져서 어느새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것을 고려하는 단계까지 오게 되었다. 환자분은 몇 번의 연습 끝에 인공호흡기를 성공적으로 제거하고, 말도 하고 식사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수술에 참여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심장이식받은 환자분 인공호흡기 제거했는데 혹시 알고 계세요?”

의사 선생님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환자분의 상태가 좋아져서 기쁨과 다행이라는 감정이 녹아져 있었다. 그 말을 듣는 나도 함께 기뻤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져 있는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인공호흡기에 숨을 의지하고 있던 환자분은 다시 나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하실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사랑하는 가족들과 감정을 나누고 추억을 쌓는 일상을 누리게 될 것이다. 또한 환자분은 기증자분의 큰 사랑을 늘 가슴에 품고서 주변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실 것이다. 마음이 모일 때 일어나는 일은 이토록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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