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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세웅 Jun 27. 2022

5만원

모두를 살릴 수 없고, 도울 수 없다지만

심장이식을 받은 환자분이 퇴원을 하고 나면 정기적으로 외래 진료를 보면서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면역억제제 용량을 조절한다. 환자분들이 외래에 오는 날이면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불편한 점과 궁금한 점은 없으셨는지 여쭤보고 앞으로 예정되어 있는 검사와 일정을 설명드린다. 심장 이식 환자분들이 외래에서 시행하는 여러 검사 중에서, 1년마다 심초음파 촬영을 통해 심장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심장이 잘 뛰고 있는지, 판막 기능은 이상이 없는지와 같이 중요한 정보를 비교적 빠르고 효과적이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장 이식 환자의 경우 심초음파를 1번 촬영하는데 드는 비용은 보험이 적용되어 약 5만원 정도이다.


쌀쌀한 바람이 불던 어느 가을날, 출근해서 외래 진료를 보러 오시는 환자분들의 명단을 확인했다. 총 10분의 환자분이 병원에 오시는 날이었다. 한 분, 한 분 상담을 마치고 나서 한 환자분이 들어오셨다. 선한 인상에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뭔가 위축되어 보이는 몸짓. 내가 느낀 환자분의 첫인상이었다. 환자분과 상담을 하던 중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심장 이식 환자분들이 상태가 호전되면 보통 3개월마다 외래 진료를 보면서 경과를 확인한다. 근데 이 환자분은 6개월 만에 진료를 보러 오셨고 저번 외래 때 처방되어 있던 심초음파 검사를 시행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순간적으로 ‘환자분이 의료진과 세운 치료계획을 잘 따르지 않으시고 건강 관리에 소홀하신 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환자분께 질문했다.


“저번 외래를 오지 못하신 걸 보니 그동안 많이 바쁘셨나 봐요. 혹시 어떻게 지내고 계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니 바빴던 건 아니고...”


둘만 있는 상담실에서 환자분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말씀해주셨다. 어렵게 일자리를 구했는데 병원을 가게 되면 아픈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주저했다는 이야기, 아침, 저녁으로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하는데 직장에서 약을 먹으려면 눈치가 보여서 화장실 간다고 말하고 수돗물과 함께 아침 약을 먹었다는 이야기... 자세히는 다 적을 수 없지만 평소에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오늘 진료를 보러 올 수 있었던 것도 병원에 간다는 말을 못 하고, 다른 이유를 둘러대며 겨우 올 수 있었다고 하셨다. 심장 이식 수술을 받고 회복 과정이 어떻게 되고, 약은 어떻게 먹어야 한다는 지식은 있었지만 심장 이식을 받은 환자분이 실제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겪어보지 못한 삶이기에 충격을 받았고 부끄러웠다. 심장 이식을 받게 되는 연령대는 보통 50대 이상이고 신체적 능력이 많이 저하되어 있기 때문에 심장 이식을 받은 분들이 수술 후 직장을 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환자분도 일을 하고 싶고, 자신이 큰 도움을 받았듯이 사회에 기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장애물이다.


환자분의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어렵게 취직한 직장에서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싶으셨을 것이다. 직장 동료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으셨을 것이고, 아픈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혀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상당한 압박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힘들어도 참고, 병원에 갔다 오겠다는 말도 못 꺼내고, 약을 먹으러 갈 때에도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말로 둘러대며 하루하루 위태롭게 직장생활을 하셨을 것이다. 환자분이 그동안 병원에 오지 못했던 이유는 알게 되었고, 예정되어있던 심초음파 검사는 왜 진행하지 못했는지 여쭤봤다. 환자분은 자신이 현재 가져온 돈으로는 심초음파 검사비를 수납할 수 없어서 다음에 찍기로 했다고 답해주셨다. 환자분께서는 자꾸 죄송하다고 하시는데 나는 뭐가 죄송한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수중에 5만원이 없어서 정말 필요한 검사를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 속상했고 환자분의 손을 잡아드리며 위로했다. 다음 말을 꺼내려는데 목이 메었다. 상담실에 앉아있던 두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환자분께 살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지금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약을 빼먹지 않고 먹고, 끼니를 거르지 않으며, 운동하면서 건강을 지켜보자고 말씀드렸다. 환자분께서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르겠지만, 제발 별일 없으시기를 간절히 바랐다.


한 세 달쯤 지났을 무렵, 익숙한 이름이 외래진료 명단에 있었다. 오늘 환자분을 뵐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을지, 아픈 곳은 없으신지 여쭤볼 요량이었다. 외래 진료 전 교수님과 함께 병동에 계신 환자분들 회진을 돌고 있었는데 코드블루(심정지 환자 발생) 방송이 들렸다. 응급실에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다는 방송이었는데 같이 계셨던 교수님의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다. 긴급히 통화를 마친 교수님께서는 급히 발걸음을 옮기셨다. 나는 이어서 외래 진료를 보러 온 심장 이식 환자분들의 상담스케줄이 있었으므로 상담실로 갔다.


외래 진료실 앞은 아침 일찍부터 진료를 보러 온 환자분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분주하게 상담을 이어나가는데 기다렸던 환자분의 상담 순서 때 환자분이 들어오시지 않아서 의아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설마... 아닐 거야...’라며 상황을 확인해봤는데 오전에 응급실에 심정지 환자로 방송되었던 분은 바로 오늘 내가 뵙기로 예정되어있던 환자분이셨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지난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했던 순간과 차가운 현실 가운데서도 자립해서 조금이라도 사회에 기여해보려고 노력하셨던 환자분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부디 아픔이 없는 그곳에서 안식을 누리시길 진심으로 바랐다. 눈치도 없이 그날 해야 할 일들은 쌓여가고 있었고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만약 저번 진료 때 환자분에게 5만원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정말 절박한 사람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나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병원 현장 가운데서 그저 탄식하며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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