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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세웅 Sep 10. 2022

작다고 무시하지 말 것

작은 게 실제로는 가장 큰 법

같은 일을 하더라도 이왕이면 더 잘하고 싶고, 돈을 버는 김에 많이 벌고 싶은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이다. 그러나 매일 잘 살아내야 하는 일상에 집중하지 못하고 큰 결과를 목표로 달려가다 보면 어느새 지쳐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병원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라는 직업 특성상 질병으로 고통받고 이식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환자 및 보호자분들을 만나게 된다. 처음 1-2개월이야 괜찮지만, 계절이 바뀌고 햇수가 바뀌면서 점점 지쳐가는 환자분과 의료진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고객이 어떤 상품을 사려고 하는데 현재 재고가 없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면 판매자는 ‘몇 주 이내에 제품이 입고될 예정입니다.’와 같이 구체적인 기간을 덧붙여 고객에게 설명할 수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기약이 있는 기다림이니 몇 주를 기다려서 상품을 살지, 아니면 다른 상품을 살지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기약이 없는 기다림은 상황이 다르다. 주로 뇌사자로부터 장기를 기증받아 이식을 간절히 기다리는 경우가 그렇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후 장기이식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기간은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생전에 혹은 가족분들이 장기 기증의 뜻을 표현하신 기증자분께서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대기기간을 물어본 환자 및 보호자분께서는 설명을 듣고 이내 수긍하신다. 사람의 장기를 대체할 수 있는 인공장기가 속히 개발되면 좋겠지만 아직까지는 어려운 일이다.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분 입장에서는 크게 두 가지 감정을 느낀다. 첫째는 간절함, 둘째는 죄책감이다. 약물 혹은 기계의 도움 없이도 숨을 잘 쉬고 거리를 걸어 다녔던 일상이 떠오르고,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고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냈던 그 순간이 그리워진다. 기약 없는 기다림의 과정을 겪으며 상태가 더 악화될까 두렵고, 당연하다 여겼던 일상이 회복되길 간절하게 꿈꾼다. 한편으로는 내 입장에서 느끼는 간절함이 누군가 뇌사상태가 되어야 해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회복되기를 바라면서도 그렇다고 소중한 누군가가 불행을 겪지는 않길 바라는 마음 사이에서 많이 힘들어한다. 모두 아프지 않고, 안타까운 죽음이 없는 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나는 기증자분의 뜻을 훼손시키지 않고 생명 나눔이 잘 이루어지게끔 끊임없이 고민하고, 진지하게 임한다.


기약 없는 기다림의 삶은 저마다의 루틴이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병동을 돌아다니고, 출근한 병동 간호사 선생님께 먼저 인사해주시는 환자분, 매일 일정 시간 그림을 그리는 환자분, 진정제와 진통제를 맞으며 기계의 도움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환자분... 각자 처한 상황에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기다림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병동을 돌아다니며 한분, 한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겉으론 괜찮아 보였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고,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어 함께 있을 때 우시면서 속에 있던 말들을 나눠주신다. 오늘 이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을 드릴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어쩌면 나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말은 그 말일 텐데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 앞에서 무기력감을 자주 느낀다.


하루는 심장이식을 받고 퇴원하여 일상을 잘 지내고 있는 환자분이 병원에 오시는 날이었다. 심전도, X-ray, 혈액검사 등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병원에서 기다리는 동안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고 무너질 때가 많았는데 코디네이터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답답한 마음이 풀리기도 했고 계속해서 힘을 주셔서 버틸 수 있었다며 고맙다고 말씀해주셨다. 많이 바쁘시겠지만 이식 환자분들을 위해 계속해서 힘을 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이 잔잔한 위로가 되었다. 그 말을 듣는데 내가 이식이라는 큰 것에 계속 신경 쓰다 보니 정작 작은 것이 주는 힘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과 자녀와의 관계 혹은 서로 사랑하는 연인의 관계가 그러하듯,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존재를 통해 삶을 살아갈 이유와 큰 힘을 얻는다. 어떠한 시련이 오더라도 사람은 자신을 믿어주고 곁에 있어주는 한 사람으로 인해 극복하고, 성장한다. 당장 큰 것을 못한다고 해서 주눅 들 필요가 없다. 어쩌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나를 알아주는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하며 쌓는 소소한 추억들이 아닐까 싶다. 작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실제로는 가장 큰 것이다.


작다고 무시하지 말 것. 일을 할 때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도록 명심해야겠다. 당장은 해결되는 것과 성과가 없어 보일지라도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작은 것으로부터 비롯될 테니까. 또한 멋지고 근사한 일을 해내는 것이 큰 보람과 기쁨을 느끼게 하지만, 작은 것들이 주는 힘이 없다면 할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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