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경찰과 실적주의

by polisopher




교통법규 위반 단속은 경쟁적 실적위주의 단속을 금지하고 교통소통 및 사고예방을 위한 질적 단속을 원칙으로 한다.
-교통단속처리지침-


“재미있는 사실은 교통단속에 관한 경찰의 내부 규칙을 보면 제가 평소 주장해 온 내용이 그대로 녹아 있다는 겁니다. 교통단속처리지침을 보면, 실적이 아닌 오직 교통소통과 사고예방을 위한 목적으로 교통단속을 하도록 정해 놓았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바로 경찰이 추구하는 가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찰이 오직 국민의 생명과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경찰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사랑과 봉사 정신이 녹아 있는 경찰 태생 원리와도 맞습니다.


그런데 실제 현장 상황은 이 원칙에 침을 뱉으며 모욕을 줍니다. 단속의 양을 쌓아 올려 누가 하늘과 가장 가까워지는지 내기를 하고 있는 듯 보이니까요. 이러니 현장 경찰들 특히 신임 경찰들이 큰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신임 경찰들은 경찰학교에서 대개 이러한 원칙들을 배웁니다. 경찰정신, 법과 원칙, 공정과 공평 등 사회 정의를 구축하는 건축자로서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학교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현장실습을 나오는 즉시 알게 됩니다.


현장에서 원칙 보다는 실적 앞에 무릎을 꿇는 방법을 배우고 마는 것이죠. 이러한 경찰의 이중성이 오늘날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명과 원칙 없이 법집행에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어떻게 시민들이 경찰을 믿고 의지할 수 있겠습니까?


법을 집행하는 경찰들에게 그들의 존재 이유가 현장에서 구체화될 수 있도록 해주어야합니다. 경찰관의 복무규정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경찰을 선언하고 있고, 경찰관직무집행법이 경찰의 임무를 명시하고 있다면 그러한 권한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서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만으로 대한민국 경찰은 부끄러워해야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직 내 영향력 있는 이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은 이러한 충고를 무시하고 비웃습니다. 아니 어쩌면 포기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그들은 경찰의 본질을 파괴하는 자들로서 부도덕의 극치이자 늑대의 탈을 쓴 양이라고 해도 전혀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칸트의 눈은 핏기가 살짝 돌만큼 달아올라있었다. 마주 보기가 쉽지 않았다.


“말씀의 톤이 높아지신 걸 보니 다소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천이성비판과 윤리형이상학 정초를 보면 의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의무에 어긋난 행위는 도덕적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셨는데요. 경찰의 단속이 승진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상황 또한 그리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인간이 도덕적 평가를 얻기 위해서는 의무동기에 따른 행동이 되어야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의무 동기란 간단히 말해서 이런 겁니다. 나의 행동이 어떤 대가나 결과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즉 개인적 욕망이나 이익과 같은 사심을 내려놓고 그것 자체가 옳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 의무동기에 의한 행동이라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겠다는 의무로 단속행위가 이루어진다면 경찰관의 행위는 도덕적 가치가 있다고 하겠지요. 반대로 승진과 출세 때문에 단속을 한다면 굳이 제가 떠들지 않더라도 많은 국민들에게 지탄을 받게 됩니다. 그게 제 표현을 빌자면 의무에 따른 행위가 아닌 것이고요.”


ㆍ대한민국 파출소 경관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