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발을 내디딘 어느 신임의 눈에 비친 경찰은 참으로 기이해 보였다. 평소 묵인되고 장려되기까지 한 행위가 하루아침에 몹쓸 짓이 되고 행위자는 파렴치범이 되어 내쫓겼다. 주취자에게 폭행당하여 공무집행 방해죄로 체포를 하면 일 못하는 자로 눈총을 주었다. 그 과정에서 다친 경찰은 버려지듯 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밑도 끝도 없이 불려 나가 크림빵과 우유 하나로 반나절을 때워야 했다. 승진이든 보직 이동이든 아는 사람 통하지 않으면 어림도 없던 때가 있었다. '승진에 얼마를 썼네' 하는 말은 크리스마스 트리와 함께 연말연시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설마.. 오늘날에도? 맞다. 경찰은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계급ㆍ출신 간의 카르텔이 조직을 장악하고 있다. 실적주의의 고착은 경쟁을 가속화하여 동료와 동료는 표창 하나로 눈치를 보아야 한다. 조직의 부당한 행태에도 불이익당할까 두려워 눈을 아래로 깐다. 누가 누구를 모함한다는 말은 끊이지 않고, 납득하기 어려운 계급ㆍ급여 체계는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무소불위 감찰에 속절없이 무너진 몇몇 현장 경찰의 투쟁사를 보고 들으면서 인간, 그것도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인간 폐지'를 생각했다. 그렇게 파면ㆍ복직 사이를 외줄 타기 하다 겨우 살아남은 이들, 물질ㆍ시간뿐이랴 인격도 육신도 갈기갈기 찢긴 승리는 동료들에게 잠시 위로를 받은 듯하여도, 마침내는 이 꼴 당하지 않으려면 닥치고 살라는 메시지만 강력하게 심어준 채 안개 걷히듯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치안 한류'라는 밝디 밝은 LED 홍보 간판 뒤 캄캄한 곳에서 현장 경찰은 한숨을 쉬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경찰, 그 이름 만으로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대한민국 경찰은 이처럼 모순으로 가득해 보인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권리ㆍ존엄은 패쓰하고 있는 듯 보이니까.
18세기 프로이센의 위대한 사상가 칸트를 소환한 이유는 꽉 막혀 있는 답답한 경찰 현장을 상상의 공간에서나마 일갈해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칸트는 뼛속 깊은 인간 중심 주의 철학자다. 그가 하고 있는 말은 오직 하나. 인간을 목적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서슴없이 인간 수단화에 함몰되어 있는 이 사회와 시류에 단단히 한몫하고 있는 경찰 조직에 그는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제복 입은 시민들이여 부디 스스로를 그리고 시민을 목적으로 삼아라!
ㆍ대한민국 파출소 경관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