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뷔

중앙경찰학교 첫날밤

by polisopher




퇴근 후 운동장을 가로질러 관사를 향한다. 짐을 내려놓고 문밖을 나선다. 다시 운동장을 가로질러 목욕탕을 향한다.


따뜻한 물을 맞았다. 생각이 많았던 하루다. 후보생들 앞에서 떠들었던 이야기들이 부끄럽다.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든 그 순간만큼 그들은 온통 심각하다.


내가 그들을 심각하게 할 자격이 있는가. 혹시 그들이 괜한 걱정에 휩싸이게 된 것은 아닌가.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눈을 감고 쏟아지는 물을 맞는다.


*


유투부에서 임재범이 부른 '데스페라도'를 틀었다. 듣고 또 들었다. 별은 없고 바람이 차가운 밤, 불이 환한 운동장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이 보이고 펼쳐진 운동장에 함성 소리가 울린다. 후보생들이다. 잔디밭을 절반으로 나누어 축구를 하고 있다. 대여섯 명이 트랙을 돌고 있다.


그들의 얼굴과 어깨가 스팀 다리미처럼 증기를 뿜는다. 함성과 웃음이 터지는 후보생들의 움직임을 보며 천천히 트랙 바깥쪽을 걷는다. 벌써 다섯 번째 재생한 데스페라도가 BGM이 되어 준다.


내가 중앙경찰학교에 있는 '이유' 그들 '경찰후보생들' (c)대파경


반 바퀴 도니 윗몸일으키기 기구가 보인다. 푹신한 쿠션이 깔린 등받이에 앉았다. 서치가 환하다. 눈을 자극한다. 하지만 미간을 찡그릴 정도는 아니다.


경기장 가장 좋은 관람석에 앉아 그들의 활력을 느낀다. 그러다 깜짝 놀란다. 이 풍경, 이 공기, 이 소리, 이 빛. 어디서 봤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지난 1월, 이곳에 발령받은 첫날밤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산책에 나섰고 빛과 함성에 이끌려 와 본, 바로 내가 앉아 있는 곳이다.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내가 이곳에 왜 왔는가를.. 저들의 함성에 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ㆍ대한민국 파출소 경관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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