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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isopher Jul 22. 2020

김창룡 경찰청장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계급(장)없는 경찰을 꿈꾸다




시즌이 찾아온 것이다. 경찰개혁 시즌이. 지난 몇 년간 10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사건들이 한꺼번에 터졌는데 무슨 얘기냐고 말할 수 있으리라. 수사 기소 분리를 두고 한 얘기라면 이는 검찰 개혁의 일환인 것이지 경찰 개혁은 아니다. 직장협의회가 법률로 인정된 사건은 권리 보장에서 소외되었던 경찰관에 대한 반성적 조치였으므로 이는 조직의 살갗이 벗겨져 피고름 딱지가 앉았어야 하는 개혁과는 거리가 있다.

아니다. 경찰 팔뚝에 피가 똑똑 떨어질만한 시기가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개혁하면 너나없이 이무영 청장을 떠올리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도 아니다. 단지 구태에서 깨어난 인물이었을 뿐이다. 눈에 핏발을 빼주겠다는 말로 대변되는 그의 결단력 있는 행보는 실은 화석화된 경찰 머리를 정으로 콕 찍어서 깨뜨린 해프닝에 불과하다. 다른 말로 경찰의 두뇌란 수십 년간 회전력을 완전히 상실한 화려한 장식용 시계였을 분이었음을 만천하에 공표한 상징적 일화였던 것이다.

집에도 보내지 않고 부려먹기만 하고, 시민 상대 삥 뜯고, 청탁에 인사비리에 등등 이것들이 사라지게 된 것은 시대적 흐름에 따른 의식변화인 것으로 보아야 이해될 문제이지 개혁은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날로 치면 비상식의 상식화라고 할 수 있으려나. 아무튼 20세기 후반 나라 안팎의 복잡한 경제 사정과 정권의 색채가 바뀌었던 때의 대한민국, 시민들의 성숙한 잠재의식을 깨어주십사 당부했던 터에 경찰에게 배달된 선물?은 일종의 콩고물 효과였지 싶다.

여하튼 우리가 사모하는 이무영 청장이 개혁 청장이 아니라니.. 실망감을 안겨주었다면 미안하지만 너무 서운해할 것은 없다. 결과를 알 수 없는 거창한 개혁 연설보다는 24시간 날밤 까기를 반나절 근무로 바꾼 것에 대한 기억을 현장은 더욱 선명하게 기억하니까.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당시 맹활약을 떨쳤던 어느 경찰 위인들 보다도 이무영을 먼저 더 떠올리지 않는가.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무영! 이무영! 해도 된다.

그런 식으로 개혁의 의미를 구체화하여 생각해보니 개혁다운 개혁, 살갗을 칼로 도려내려는 시도가 딱 한 번 있었다. 조현오 청장. 누구에게는 여전히 치를 떨게 하는 실적주의의 부흥목사였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팔도의 현장 경관들과 신명나게 한판 놀아 본 버라이어티 한 쇼맨으로 기억되는 인물 말이다.

저 개혁의 기준에 보면 그가 제시한 7가지 공약은 모두 개혁의 대상은 아니다. 대부분 낡은 제도와 관행 덕분에 빨갛게 녹슬어 버린 조직의 뼈마디에 기름 칠하자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 정도만으로도 그도 이무영에 버금가는 추억이 되고도 남는다. 경감 근속이나, 시간 외 수당과 같은 살 오른 연어 두 마리를 잡아 주었으니까. 그런데 그에게 개혁 청장의 타이틀을 선사한 계기가 생긴다. 서울의 한 지구대에서.

현장을 위한 버라이어티를 열렬히 소화하고 있던 그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최일선 지구대는 빼놓을 수 없는 흥행 무대였을 터, 그때. "순경 계급장 때문에 공권력이 무시되는 때가 있다."는 한 순경의 토로는 그의 심장을 꿀렁거리게 만들어 버린다. 조직의 7가지 문제점을 바로 잡겠다며 내걸었던 캐치프레이즈가 "현장 중심"이었던 것도 그를 분노케 한 요인 중 하나였으리라. 그리하여 애꿎은 순경 계급장이 광장 앞에 나와 인민재판을 받을 지경에 이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된 때처럼 시작된 이 노릇, 경찰은 탄생 이후 최초로 도마 위에 눕혀져 피부가 벗겨질 위기를 맞는다. 계급의 문제. 자본가와 노동자의 구도가 아닌 피라미드 형태의 계층적 구도의 조직에서의 개혁 시도, 바로 뿌리이자 근간으로써 이 조직을 떠받들며 경관들의 뇌를 지배하고 있는 계급을 벗겨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계급장 줘 패기는 미근동과 일선의 치부를 죄다 드러낸 끝에 아슬아슬 외줄 타기에 들어간다.

이윽고 오원춘 사건이 터진다. 책임을 지고 물러난 조현오 청장 이후 요리조리 떨어지지 않고 버티던 경찰장, 발아래 줄이 잘린다. 그렇게 우연한 계기에서 촉발한 경찰 개혁 실험은 거대한 가능성을 남긴 채 6개월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하고 서랍으로, 쓰레기통으로, 상당수는 중앙경찰학교로 넘어가 소진되고 잊힌다. 밧줄 끊은 장본인 김기용 이후 등장한, 인상 좋은 이성한, 대학 최초 넘버원 강신명, 인상 좋은 이철성, 심지어 저 민갑룡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개혁을 말하지 않았다.

이런 즈음 김창룡 내정자의 관심 행보에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계급장 개선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이다. 나는 만면에 웃음을 띤다. 그는 개혁자가 되고 싶은 걸까 하고. 계급장에 관심을 보였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기존 구조에서 문양만 건드리겠다는 걸까. 트렌드에 비추어 계급 체계의 세분화는 아닐 것이므로 계급장을 없앤다거나 경찰장의 원대복귀를 선언? 그렇다면 내정자에게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계급의 논리에서 벗어난 경찰을 상상할 수 있게 말이다.

자! 내정자여 기회를 잡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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