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이 아름다울 수 있는가?

by polisopher

하얗게 뒤덮인 설원이 무심히 ‘오겡끼데스까’를 소환해 버리듯 가볍고 얇은 이 '겨자 색' 시집은 경찰의 어느 현장, 어떤 사람을 불러들인다. 다만 ‘주취자’는 ‘심술이 인형’ 같은 모습이고, ‘야간출근’은 붉은빛 석양을 맞이하는 시간이며, ‘죽은 자’는 한 계절을 보내고 흙으로 돌아간 고목나무로 그릴뿐. 그의 글 여기저기 술과 밤샘과 죽음이 도사리고 있지만 아무리 킁킁거려도 책 냄새만 난다.

그는 경찰관이 된 시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보도블록 틈바구니에 낀 한갓 들풀들을 찬양할 수 있었겠으며, 흩어진 기억만 남은 노인의 곧 바스러질 것만 같은 삶을 어루만질 수 있었겠는가. 경찰살이 35년, 그는 ‘詩感’을 찾아 여기저기 발품을 팔지 않아서 좋았을까? 온갖 부조리하고, 고통스럽고, 폭력적인 것들이 그의 ‘갬성’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을 테니까.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자를 보았을 때 우리는 그에게서 인간 너머의 무언가를 느낀다. 이를 숭고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경찰관이 종종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언론에 장식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경찰관이 아름다울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로서는 '그렇다'. 나아가 경찰이 스스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본다면 그는 그의 일을 숭고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그것을 형상화하는 게 詩다.

원주 부론파출소 한상대 시인은 그것을 한다. 주취자도, 억울한 사람도,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범죄자도, 그들을 단지 대상화하거나 감정 배설물로 삼지 않는다. 그들을 ‘~의 행위자’로만 보아서는 경찰의 아름다움은 피어나지 않으니까. 그는 경찰의 눈과 입의 언어가 가진 극적인 힘 또한 안다. 그러므로 낮고 습하고 어두운 세상 속 멍들고 구겨진 얼굴들에서도 빛남과 온화함을 채취할 수 있는 것이다.

한상대 시집 '야간 순찰'

재앙에 가까운 무더위를 견뎌내고 겨우 숨 쉴만한 아침저녁을 보내고 있다. 들판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특별한 시즌에만 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그렇다면 ‘야간 순찰’을 서둘러야 한다. 딱 하루, 두어 시간이면 좋겠다. 그곳이 파출소든, 집이든, 버스 안이든, 때가 아침이라면 움트는 생명의 기운을 마시며, 밤이라면 함께 걸어줄 북극성을 보면서 말이다. 당신은 아름다움에 빠지게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