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해결'

by polisopher
술 마시면 난폭해지는 남자가 있다. 그로 인한 갈등은 꽤 지속되었다. 이 가정에는 고교생 딸과 중학생 아들, 유치원생 어린 아들이 있다. 신고자인 여자는 화근을 피하기 위해 막내를 데리고 처가에 있는 상태였고, 마침 술에 취한 남자는 아내가 귀가하지 않는다며 처가로 이동을 했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 술에 취한 남자가 여자와 어린 아들 그리고 장모와 거실에 있었다. 물리적 폭행이나 심한 욕설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여자는 예방적 차원에서 남자와의 격리를 요구하고 있었고, 남자는 처가에서 퇴거 요청을 받자 선을 넘지 않은 채 그곳 바로 옆 자신의 사무실로 이동한다. 일단 격리 아닌 격리 조치를 한 경찰은 복귀하는 내내 그들의 다음 신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장 사례 각색)

흔해 터진 위 사례, 남자의 불만 에너지가 임계점에 이르렀는지 빠져나갔는지 경찰은 알 수 없다. 그가 '젠틀맨'의 페르소나를 쓰고 살의를 감췄다면 말이다. 이후 신고가 여러 차례 들어왔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남자의 표정과 행동만으로 그의 진의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가해자의 선처를 요구하는 피해자의 탄식, 경제적 문제나 가족의 해체를 두려워하는 피해자의 눈빛 앞에서 냉철한 집행자의 멘털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어디 그뿐인가. 쏟아지는 신고에 따른 누적된 피로와 거친 신경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경찰은 이 사건을 다음 기회로 연기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역설적이게도 장은 이런 것들이 공모하여 거대한 어긋남을 구축한다.

경찰의 관점에서 본다면 신고자들은 자신과 관련된 일이라면 모두 절체절명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하고 보면, 다급함에 비해 싱겁게 마무리될 때가 있고, 차분한 표정이지만 심각한 경우를 만날 때도 있다. 시민들의 목소리, 표정만 가지고는 사건의 경중을 판단하기 어렵다. 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엄중하게 대하는 경찰 X가 있고, 차등을 두어 접근하는 경찰 Y도 있으며, 일관되게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찰 Z도 있다. 시민은 법률과 매뉴얼이라는 공통된 무기가 지급된 경찰에게 같은 공감ㆍ판단ㆍ제압능력을 기대하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신고자와 관계자 그리고 경찰관은 문제 해결을 위해 모이지만 실은 서로의 이견만 확인한다. 신고자와 이해당사자는 경찰을 불렀지만 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경찰관들도 신고자들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고,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주체들'이 그렇게 지지고 볶는 가운데 '사건'은 느닷없이 종결을 선언한다. 매듭은 엉성하고, 마음은 개운치 않지만 일단 모두가 한 발 물러난다. '도움 필요하면 신고하세요'라는 경찰의 말이 언명하듯이 사건은 단지 연기되었을 뿐이다.

역시나 예견했던 신고가 들어왔다. 마찬가지로 경찰관들은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였으나 여자는 여전히 불안하고, 경찰은 체포의 기회를 엿보았지만 남자는 선을 넘지 않는다. 옥신각신 끝에 남자는 처가와 바로 붙어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다시 돌아간다. 이 간격, 위험이 붙어있는 벽, 또다시 다음 신고를 기다려야 한다. (현장 사례 각색)

피해자·가해자·현장경찰 누구도 메울 수 없는 이 틈은 분노와 공포와 탄식이 뒤섞인 피해자의 정념이고, 살의를 가린 '신사'의 가면이고, 답을 내놓지 못하는 법과 매뉴얼이며, 용기와 비겁이 범벅된 현장 경찰관이다. 이성과 욕망과 아름다움과 천박함과 숭고와 저열함들은 그들 사이를 마음껏 휘젓고 다닌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아무리 해도 채울 수 없는 어떤 심연이고, 인간적 노력을 번번이 무릎 꿇리는 절대적 힘이다. 그 힘이 만든 상식과 법은 이처럼 균열 투성이다. 그 틈과 공존해 보려는 노력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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