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가 필요한 사람들 2
경찰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닦아온 억압의 기술로 스스로를 감시했다. 그 탓에 잘못을 바로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만성질환을 갖게 되었다. 군부가 끝나고 국민이 대통령을 뽑는 시대가 되었지만 21세기에 들어서야 남영동 보안 분실이 인권보호센터로 바뀌었고, 80년 5월 계엄 하에서 광주시민과의 충돌을 거부했던 전남도경국장 안병하는 2018년이 되어서야 치안감으로 추서 된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6년 뒤, 경찰은 또다시 불법비상계엄에 가담하게 됐다. 왜 그랬을까?
1980년 5월 광주, 안병하와 경찰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프로이트적 관점에 따르면 내란과 같은 경악할만한 일은 국가 구성원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경찰은 내란 행위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이중적 지위에 놓인다. 가해자로서의 죄책감은 자신의 피해자성을 억누르고, 억눌린 고통은 사건의 본질을 피해 그 아래로 잠긴다. 현장경찰관의 일상을 보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주취자를 깨우고, 죽겠다는 사람을 살리려 진땀을 뺀다. 말하자면 12.3 내란 전후로 달라진 게 없는 경찰은 언제고 내란에 가담할 수 있는 조건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경찰은 시대와 국민 앞에 용기를 내야 한다. 과거처럼 '애도'의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헌법 수호 기관이면서 반 헌법적 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그렇게 작동하게 된 메커니즘을 디테일하게 이해해 보는 데까지, 공개적이며 생동감 있게 밀고 나아가 보는 것이다. 씻김굿을 하는 것, 통한의 성찰이 요구되는 경찰은 물론이거니와 ‘왕사남’을 보고 나오는 시민들에게도 보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