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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isopher Jun 29. 2018

#11 경찰잡문 ‘正沫路’

경찰청장 기억하고 기대하기 : 2부 이철성 기억하기

음주운전 전력의 경찰청장


경찰청장이 임기를 마치는 것이 화제가 되던 때가 있었다. 1991년 제1대 경찰청장이 나온 이래 임기를 채운 청장은 이택순, 강신명뿐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제 이철성 청장이 더해지면 3명이 임기를 채우게 되는 셈이고, 강신명 청장에 이은 것이 되므로 청장 임기가 더 이상 화제꺼리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음주운전 전력이 있었던 그는 국민과 조직원에게 큰 부담을 안기며 경찰의 수장이 된다. 단속 주체라는 이유로 월등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경찰에게 음주운전은 중징계를 면치 못하는 현실에서 그의 임명은 사실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런 우려를 의식해서인지 취임사에서 그는, 사죄와 함께 빚을 갚아 나가겠다는 말로 심적 부담을 토로한다.


그가 갚겠다는 빚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밖으로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는 것이고, 안으로는 권위적 조직문화와 감찰을 개혁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직접 뛰고 있다. 요령도 피우지만 나의 ‘밥값’★을 늘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자에 대해서 그가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후자는 어땠을까.


감찰개혁, 청장의 의지부족인가, 개혁 불가의 대상인가


이철성 청장 취임 직전 동두천경찰서에서 감찰조사를 받던 신임 경찰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다. 음주단속 수치인 0.05%에 이르지 않은 훈방수치(0.029%)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감찰조사를 받은 직후의 일이다. 어머니와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예정되어 있던 것 외에는 자살에 이를만한 특별한 동기가 확인되지 않았다.


화살은 자연스럽게 강압 감찰 논란으로 이어졌고, 이 사태를 지켜보았을 이철성 청장은 취임사에서 권위주의 문화를 바로잡는 일환으로 감찰혁신을 밝힌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후에도 충북청 감찰의 강요와 협박에 따른 참담한 사건이 발생하고, 경남청 감찰의 모함과 여론 조작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감찰은 일제의 고등 경찰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감찰을 중심으로 권위주의 문화를 개선하고자 했던 청장의 선언은 이렇게 선언으로 끝나고 말았다. 2년이라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고 감추기도 어려운 문제점이 보란 듯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지만 그의 의지부족이었을까 아니면 영역 밖이었을까. 감찰개선안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감찰은 청장과 조직원을 비웃으며 초법적 감찰권을 휘두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촛불혁명의 명령, 적폐청산과 경찰개혁


JTBC보도로 드러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1,700만 명의 국민을 거리로 나서게 하더니 마침내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치달았다. 약 23회에 걸친 촛불집회에서 연행된 자들은 있었지만 사법 처리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은 경찰에게 의미 있는 수치로 작용하여 이철성 청장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직을 유지하게 된다.


촛불혁명으로 태동한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에 사활을 건다. 청와대, 국정원, 국방부, 검찰, 경찰 등 대상은 부당거래의 온상이 되어 왔던 권력기관에 집중되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정부의 출현으로 경찰은 호기를 맞았는데 비로소 수사 기소 분리가 현실화 될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된다.


적폐 대상 1호로 지목된 검찰이 집중 포화를 당하자 반사적 효과로 경찰은 수사권 독립에 바짝 다가갔지만 동시에 그 전제 조건인 자치경찰이라는 과제를 풀어야했다. 검찰과 국정원이 뭇매를 맞는 동안, 졸지에 촛불혁명의 조력자가 되어 수사 주재자의 길을 탄탄히 밟아가는 듯 했지만 정부가 자리를 잡고 국민들이 냉정을 찾자, 경찰은 적폐 중의 적폐로 순식간에 급부상한다.


인권경찰이 되라는 강력한 요구에 따라, 경찰개혁민간위원회를 세워 활동을 하면서도 동시에 5.18 민주화 운동,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 충견 노릇을 톡톡히 했던 과오를 바로 잡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외에도 국정원 힘 빼기에 따른 대공업무의 전문화, 정보경찰의 축소 등 경찰 조직의 변화는 어디까지 얼마만큼 전개될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이철성, 직장협의회를 선포하다


촛불혁명이란 엄청난 폭풍 가운데 서 있던 이철성 청장은 재임 기간 중에는 꿈꾸지 못했을 일들에 직면하게 된다. 아니 어쩌면 마음속에 품고 있었을 일말의 개혁의지를 기왕 쏟아지는 비바람 가운데 흘려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2018년 신년사에서 그는, 경찰청장 최초로 경찰직장협의회를 공식 언급한다.


지난 세월, 현장의 여러 경찰관들은 그들의 인권보호 및 업무개선을 위해 노동조합 및 직장협의회 설립을 강력히 촉구해왔다. 하지만 경청하겠다는 식의 모호한 화법 외에 경찰청 차원의 공식 반응은 없었다. 다만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경찰에 대한 입막음과 탄압의 혐의는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내부 비판에 ‘징계’로 맞대응해 왔던 것을 보면 말이다.


이런 가운데 이철성 청장의 공개적 발언은 여전히 선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문제의식을 분명히 했다는 것에서 적어도 길은 제대로 찾지 않았나 싶다. 권익을 찾고 보호하는 것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이념의 논리적 귀결이기 때문이다. 적폐청산의 파급이 경찰 내부에 이렇게 미치고 있었다.


이철성, 경찰직장협의회를 인정한 최초의 경찰청장으로..


이철성 경찰청장을 회고하는 지금, 어느 단락에서는 탄식이 다른 단락에서는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에게 감정 이입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퇴직을 앞 둔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고. 어느 기관, 어느 지역구 출마를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밀짚모자를 쓰고 땀을 훔치는 까무잡잡한 촌부의 모습을 그리고 있을까.


수많은 논란을 뒤로하고 2년이 흘렀다. 폭풍 같던 그 기간 동안 그도 15만 경찰도 무척 다이내믹한 시간이었다. 그가 애초 약속과 달리 감찰 개혁을 이뤄내지 못한 아쉬움이 크지만 예기치 않은 시절을 맞아 경찰개혁과 적폐청산의 맨 앞에 섰고, 무엇보다 직장협의회의 필요성을 명확히 하며 민주적 조직 운영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따라서 누군가 나에게 이철성 청장이 무엇을 하였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는 경찰청장 최초로 직장협의회를 인정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기억하는 이철성 경찰청장은 누구입니까?


-대한민국 파출소 경관-


 밥값론

: 첫 근무지인 충남 당진경찰서에서 나침반 같은 분을 만난다. ‘오동환 경위’ 그는 출근 하면 늘 순찰차와 파출소를 쓸고 닦았다. 그러면서 하는 말 “주인정신이~ 뭐언 줄이나~ 아는 겨?~ 출근해서~ 최소한~ 밥값은~ 해야 하는 겨~”였다. ‘밥값’을 인식한다는 것, 공직자로서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를 새기며 행동한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영감을 준 자료들 ■


- 경찰의 민낯(장신중)

-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 개인숭배와 그 결과들에 대하여(흐루시초프)

- 푸코와 하버마스,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하상복)

- 한나 아렌트(영화,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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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25시]경찰인권지킴이 장신중(1)-'자체인지 처분 실적' 동두천 경찰서 신임 여경 자살 원인 제공(16.7.24,한국유통신문)

 - 우여곡절 끝에 이철성 신임 경찰청장 공식 임명..취임사 전문(16.8.24,국민일보)

 - 촛불 시민이 말하는 ‘나의 수상 소감’과 숫자로 보는 촛불집회(17.11.9,시사인)

 - 경찰, 박종철 열사 묘소 참배…"고위 간부 공식 참배는 처음"(18.1.13,연합뉴스)

 - 충주 여경 유족 "성과지향 경찰 문화 개선되길"(18.5.4,뉴스1)

 - '때가 어느 때인데' 성추행 신고 여경 거짓 음해한 경남경찰의 퇴행(18.6.1,매경프리미엄)

 - 18년 경찰청장 신년사

 - 5.18 순직 경찰관 공식 추도식…희생정신 재조명(18.5.19,mbc)

 - 경찰개혁위 활동 마무리..보안경찰 활동 개혁 등 4건 권고(18.6.18,뉴스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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