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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isopher Sep 16. 2018

#12 경찰잡문 ‘正沫路’

감사관실에 哀願 : 표정목 파면 1심 승소 소식을 듣고

2017년 봄, SNS프로필에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사진을 올려놓았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전쟁이라도 벌이는 듯 융단폭격을 가했습니다. 대상은 그가 몸담고 있던 경찰 조직이었습니다. 경찰청, 소속 경찰서, 타청 모 경찰서장에 이르기까지 폭격은 전방위적이었습니다.


처음 그의 등장으로 많은 이들이 환호했습니다. 경찰 적폐에 대해 이렇게까지 야수성을 드러내며 물어뜯는 자가 있었나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발톱이 더욱 빛나고 있을 즈음 어두운 그림자가 그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우려를 표하면서도 자신에게 튈지 모를 불똥을 피하기 위해 발길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파면"


그의 등장과 사라짐은 매우 짧았고 그만큼 강렬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불나방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어나마자 불 속으로 뛰어들어버렸으니 말입니다. 많은 동료들이 그를 위해 탄원을 했습니다. 명백한 표적감찰이며, 행위책임에 비해 지나치게 과한 처분이라면서 말입니다.


파면 당한 날, 쓸쓸하게 나서는 그를 사진에서 보았습니다. 니체의 가르침대로 살았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을까요.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을까요. 아니면 자신을 파면한 조직에 원망을 품고 있었을까요. 알 수 없는 표정이었습니다.


그 뒤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고 늘 그래왔던 대로 우리는 그를 잊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의 파면을 취소한다는 1심 재판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환영했습니다. 물론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경찰청이 마우스 피스를 고쳐 끼우는 한, 그도 링에서 내려올 수 없을테니까요.


얼마 전 경찰청 감사관실에서 올린 겸손 가득한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앞으로는 동료들에게 실망 시키지 않겠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음... 이해해주셔야합니다. 온전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을. 지난 2~3년을 돌이켜보면, 정확히 말하자면 동두천 경찰서 여성 경찰관의 죽음 이후 재발방지 약속했던 감사관실은 충주서ᆞ경남청 아울러 오늘의 주인공인 인천청 파면 사건을 낳고 있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면서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웃는 얼굴에 칼을 쥐고 뒷짐을 쥐고 있는 모습... 무리 없이 지나간 과거를 들추어내는 기술, 품위유지위반과 같은 손에 잡히지 않는 형이상학적 원리, 부처님 손바닥같은 정보력을 업고 있는 감찰, 그들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징계위원회, 초록은 동색 소청심사위원회, 행여 있을 억울한 자도 빠져나올 수 없는 촘촘한 그물망은 더욱 절망스럽게 했습니다.


저는 지금 '무흠결'한 자의 파면을 항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파면에 이르게 된 과정 속에서 보여준 일련의 행태가 '공포' 그 자체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경찰에 대화를 요청하고 SOS를 쳤습니다. 직설적이고 거칠게 말입니다. 그랬다면 영향력 있는 누군가는 그의 대화에 응했어야 옳습니다.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이해시킬 것은 했어야 했습니다.


때때로 단속 경찰의 자세에 대해 동료들과 이야기 나눕니다. 작은 권력이나마 권력은 권력이다. 경찰은 관대해야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야 시민에게 존경받고 권위가 산다고 말이지요. 파출소 경찰은 이렇게 경찰의 품위와 존엄을 이야기 합니다. 경찰청은 어떤지요.


인청청 표정목, 2년 가까이 남들이 살아보지 못한 삶을 압축적으로 살았을 겁니다.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보았겠지요. 자신의 행위 책임 이상을 겪었음은 물론입니다. 그런 그에게 이제 법원이 돌아가라고 합니다. 경찰청, 아무말 않고 그의 손을 잡아 주십시오. 그 광경을 모두가 보게 해주십시오. 감찰과 경찰, 이제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을 때도 되었습니다.


ᆞᆞᆞkantrolᆞᆞ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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