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 담긴 잃어버린 마음의 온도를 찾아서
나는 진심으로 내 사람이 행복해하는 것을 볼 때 나도 같이 행복해진다. 그래서 내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물을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냥 괜찮은 정도인가요, 좋은 정도인가요? 저는 당신이 그저 그런 걸 하는 것보다 좋은 걸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재밌고 행복하지 않을까요?". 이로 인해 나는 내 사람들이 그냥 괜찮은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떤 게 좋은지 말해주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이게 무슨 차이냐고 하겠지만, 나에게 이건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인생은 ‘괜찮음’의 시간 속에서도 살아지지만, 결국 우리를 앞으로 끌고 가는 건 ‘좋음’이라는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괜찮다’와 ‘좋다’를 같은 뜻으로 쓴다. 하지만 이 둘은 분명히 다르다. ‘괜찮다’는 말엔 조심스러운 거리 두기가 숨어 있다. 어딘가 부족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고 말하는 것. 혹은 조금 불편하지만 굳이 드러내지 않으려는 마음의 방패. 아마도 ‘괜찮다’는 말이 인간관계의 완충재로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솔직하면 상처받을 수 있고, 너무 뜨거우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온도를 낮추는 대신, 관계의 안정성을 얻는 거래를 한다. ‘괜찮다’는 참 편한 말이다. 문제가 없다는 뜻이니까, 불평도 없고, 불만도 없는 상태다. 하지만 편안함은 언제나 따뜻함과는 다르다.
반면 ‘좋다’는 다르다. 그것은 감정의 최대치이자, 마음의 방향을 드러낸다. 약간의 불편함이 있어도, 낭만을 가지고 그마저도 감싸 안고 싶을 때 쓰는 말이다. 조금 부족해도 좋다는 말은 결핍조차 포용하는 힘이 있다.
좋다는 마음은 사람을 바꾸고, 관계를 움직인다. 그건 에너지의 방향을 안으로만 머무게 하지 않고, 밖으로 퍼뜨리기 때문이리라. 내 사람들에게 강조하는 말인 "말하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는 말은 이 좋음을 확인하고 싶고, 그걸 해주고 싶은 마음이리라. 나는 그들이 그저 버티는 삶이 아니라,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살았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하며 ‘이 정도면 괜찮지’라고 말하는 순간보다, ‘이건 정말 좋아’라고 느끼는 순간이 많아졌으면 한다.
괜찮다는 어딘가 부족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그럼에도 괜찮다는 말이다. 어쩌면 조금 불편하지만, 굳이 드러내지 않으려는 경우도 있다. 괜찮다는 말 뒤에는 문이 있어 들어올 수도 있지만, 그냥 스쳐 지나가도 상관없다. 반면, 좋다는 말에는 명확한 방향이 있다. 그 일을, 그 사람을, 그 순간을 기꺼이 원한다는 마음이 움직인 흔적이다. 좋다는 말 뒤에는 창이 있어서 그 안의 마음이 보이고, 그 빛이 밖으로 비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좋다는 말이 나를 보여주는 훨씬 더 용기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기에 누군가에게 호감이 있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사람은 어쩌면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괜찮다”라고 말하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괜찮다고 말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날들이 있으니까. 아프지 않다고, 외롭지 않다고, 다 괜찮다고. 하지만 그 말이 반복되면 진짜 괜찮지 않아도, 감각이 무뎌진다. 마치 오래된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꾹 눌러놓은 듯한 감정의 습관.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새 ‘좋다’는 감정을 느끼는 근육이 약해진다. 그리고 그 근육을 다시 움직이려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건 마음을 열 때에야 나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좋아요”라는 말에 진심이 담겨 있을 때, 그 사람의 온도를 느낀다. 좋다고 말해줄 때 비로소 그것은 따뜻한 빛이자 꾸며낼 수 없는 마음의 방향성이 된다.
괜찮음과 좋음의 차이는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다. 괜찮음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능력이고, 좋음은 그 현실 속에서도 빛을 찾는 능력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묻는다. “괜찮은 거 말고, 좋은 건 뭐예요?” 이건 따지거나 조르는 말이 아니다. 그 사람의 감정의 색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고 싶은, 작은 초대의 말이다.
사람은 의외로 자신이 좋아하는 걸 잘 모른다.
익숙함 속에 묻혀 살다가, 나중에서야 깨닫는다.
‘아, 그건 그냥 괜찮았던 거구나.’
‘진짜 좋았던 건 따로 있었구나.’
나는 스스로가 좋은 쪽으로 기울어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제야 비로소 진실된 나를 마주하고,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게 될 사람도 진실된 자신을 마주하며, 숨김없는 미래를 함께 그려나갔으면 좋겠다. 조금 불편해도, 조금 멀리 돌아가더라도, 낭만을 품은 채 “그래도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을 하며, 그 안에서 괜찮아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나 역시, 그저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좋아요”라는 말을 이끌어내는 사람이기를.
이 글을 읽는 당신께도 같은 질문을 남깁니다.
"당신은 지금 괜찮은가요? 아니면 좋은가요?"
당신이 괜찮은 삶에 머물지 않고, 좋은 삶을 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