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왜 아빠보다 엄마에게 더 화가 났을까

참는 아이가 된 이유

by 파르테



※주의※

이 글은 친절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읽는 이에게 불쾌감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는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왜 나는 아빠보다 엄마에게 더 화가 났을까



동생이 어느 날 말했다.

"이상해, 나는 왜 아빠보다 엄마한테 더 화가 날까."


아빠와 엄마는 자주 싸웠다.

문제의 시작은 대부분 아빠 쪽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동생의 분노는 아빠가 아니라 엄마를 향하고 있었다.

'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싸움을 키우냐'는 이유로.


그 질문을 들었을 때,

나는 그게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이 말은 그냥 튀어나온 게 아니었다.

우리는 그때 이런 대화를 하고 있었다.


동생은 늘 불편한 일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넘긴다.

그리고 나중에 나에게 와서만 조용히 불평한다.


"왜 그 순간에는 말을 안 할까?"

그 질문에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나는 엄마와 다르다'라는 정체성



동생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마 나는 엄마를 보면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

엄마는 항상 참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잖아.

그게 집을 더 시끄럽게 만들고,

싸움을 키운다고 느꼈어."


실제로 그랬다. 나 또한 동생과 같은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나는 엄마랑 달라.

인내심 있고 '참을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마음속으로 정한 것 깉아."


이 말이 모든 걸 설명해 주었다.


동생에게 엄마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었고,

동생은 '문제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선택은 생존 방식이었다.




그래서 분노가 엄마에게 갔다



아빠는 문제의 원인이었지만,

엄마는 문제를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더 위험하게 느껴지는 쪽은

문제를 만드는 사람보다

문제를 보이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래서 동생의 마음속에서

이렇게 바뀌었다.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문제야."


그때부터 집이 전쟁터가 될 때면,

엄마는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굴절된 분노



심리학에는 굴절된 분노(displaced anger)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은 화가 날 때,

그 화를 진짜 원인에게 표현할 수 없으면

더 안전한 대상에게 그 감정을 옮겨 버린다.


예를 들어,

상사에게 당한 분노를 집에 와서 가족에게 풀거나,

세상에 대한 무력감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것처럼.


우리 가족도 비슷했다.


아빠에게 화를 내는 것은 위험했다.

아빠는 예측불가한 사람이었고, 집안의 권력이었고, 생계였고,

무너질 수 없는 두려운 존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반면, 엄마는 화를 내도 되는 사람이었다.

말을 해도 되고, 실망해도 되고, 비난해도 되는 쪽이었다.


그래서 마음속 분노는 아빠가 아니라 엄마에게 갔다.




엄마는 문제를 만들었을까, 아니면 말했을까



지금 돌아보면,

엄마는 문제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문제를 말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은

상황을 왜곡해서 해석하게 만들었다.

'아빠가 문제일지도 모른다'가 아닌


'엄마가 싸움을 일으키는 거야.'


그렇게 하면

조금 더 마음이 편해졌으니까.




분노가 슬픔으로 바뀌었을 때



예전엔 엄마가 미웠다.

이제는 엄마를 생각하면 슬프다.


우리는 종종

진짜 화가 나야 할 사람 말고,

안전한 사람에게 화를 낸다.


이걸 깨닫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는 자기 합리화라고 비난할 수 있지만,

긴 시간의 양육 환경은 우리의 내면에 물들듯

많은 자욱을 남긴다.


혹시 화를 내야 할, 화를 내고 싶은 사람 말고

안전한 사람에게 화를 내고 있지는 않은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때

비겁하게 행동하고있던 나를

알아차리게될수도있다


이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다짐한다.

외로웠을 엄마가 가엾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