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상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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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처음 집을 나간 게 언제였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언니에게 들었다.
엄마가 집을 나가면 아빠는 우리를 아랫집으로 보냈다고 한다.
"엄마 있는지 보고와."
한 번도 아니고, 엄마가 도망칠 때마다.
내 기억 어딘가에
아랫집 거실 커튼을 열어 보았던 장면이 남아있다.
그 순간엔 엄마랑 숨바꼭질을한다는 생각도했던것같다.
무서움도 잘 몰랐고 어떤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했었지만
훗날 내가 그 파편을 이어붙일정도로 자랐을때,
기억은 비로소 나를 옥죄여왔다.
초등학교 6학년 졸업식을 앞두고 근사한 오리털코트를 사주셨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행복했던 초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날도 엄마, 아빠는 심하게 다투었고
그 정도가 심해져서 엄마가 가출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분명 어제까진 엄청 행복했는데.'
엄마, 아빠가 사준 깃털 같았던 오리털코트가
젖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아빠는 달리는 차 조수석에 나를 앉히고
닭똥 같은 눈물을 똑똑 흘리는 나에게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애 운다, 애 운다."
그 말을 듣자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수치스러웠다.
가출한 엄마를 돌아오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내 눈물이 쓰인다는 게
모욕적이었던 거 같다.
핸드폰 너머의 엄마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00아 미안해."
그 뒤로 생긴 버릇이 있다.
한동안 엄마가 집을 나가진 않았는지
집에 오면 옷장을 열어보고
엄마의 옷이 그대로 있으면
안심하고
다시 닫았다.
우리 집은 서로의 생일을 잘 챙기지 않았다.
고3생일날, 야자를 끝내고
친구들과 치킨 집에 가서
조촐한 생일 파티를 했다.
이제 막 따끈하게 나온 치킨을 먹으려던 찰나
치킨집 유리벽 너머로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저 사람, 우리 엄마의 뒷모습과 정말 닮았다.'
그도 당연한 게 그 시각은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엄마가 그 시간에 이곳에 있을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3초 정도 더 들여다보니 엄마가 맞았다.
"엄마?"
엄마는 가출을 하던 중이었다.
너무나 겁에 질린 목소리로
이번에는 아빠가 진짜로 자신을 죽일 것 같다며 두려움에 떨었다.
엄마는 순식간에
골목 속 어둠으로 사라졌다.
나는 손에 쥔 엄마의 팔 옷자락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공포에 휩싸인 엄마를 더 이상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엄마가 정말 죽으면 어떡해.'
엄마가 집을 나가서 편안해졌으면 하는 마음과
동시에
엄마가 집을 나가지 않고
계속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다.
내 생일은 우리 집에선 아무런 힘이 없었고,
이 공존은 항상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엄마는 집을 종종 나갔는데
지금의 나는 안다.
그건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는 걸.
엄마는 살기 위해 도망쳤다는 걸.
엄마는 항상 혼자 나갔다.
한 번도 우리를 데려가지 않았다.
미리 얘기해주지도 않았다.
내 마음에는 이런 감정이 남았다.
엄마는 도망쳤고, 우리는 버려졌다.
엄마가 우리와 함께 도망쳤다면
내 마음이 조금 달라졌을까.
엄마는 다시 돌아왔고
엄마를 이해한다.
엄마를 사랑했고
엄마를 미워했지만
이젠 엄마를 생각하면 슬프다.
그 모든 감정과 시간들이
나를 만들었다.
어떤 아이는
부모를 떠나보내고도 살아남는다.
하지만 그 아이의 일부는
어딘가에 남겨진 채로 자란다.
이 글은
그 남겨진 일부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