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언니 뒤에 숨은 아이

11살, 엔딩 없는 죄책감

by 파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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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언니



우리 언니는 공부를 잘했다.

아이큐도 140이 훌쩍 넘었고

학교에서도 서울대 준비반이었다.

그래서일까 언니는 집에 없는 시간이 많았고

언니가 공부를 끝내고 집에 오면

또 공부를 하곤 했다.


나는 언니와 같은 방을 썼다.

불을 끈 어두운 방을 무서워했는데

언니가 스탠드를 켜고 공부를 하고 있으면

편안하고 안심이 되는 기분에

잠을 잘 잘 수 있었다.


또 언니는 가끔 비빔면을 해주기도 하고

시험기간 나의 수학공부를 도와주기도 했었다.


나는 그런 언니를 많이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했던 것 같다.


언니가 성인이 되어

대학을 다니느라 집을 떠났을 때

나는 이제 막 중학생이 되었다.


그러다가 가끔

언니가 집에 내려와 있으면

이상하게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언니가 있으니까 괜찮을것같았다.


그때의 나는 마음속으로 언니를

많이 믿고 의지했던것같다.


언니가 혼나고 있을 때는

오히려 더 안정됐다.

그 순간에는

아빠의 관심이

나에게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부끄럽지만

솔직한 고백이다.


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똥 앞에서,

나에게 언니는 든든한 방패 같은 존재였다.




언니 뒤에 숨은 아이



언니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였다.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시내에 간다고 집을 나섰다.


아빠가 나에게 말했다.

“오라고 해.”


뭐라 말대꾸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는 먼저 나간 언니를 따라나섰다.

언니는 걸음이 빨랐다.


어린 시절 나는 소심해서

“언니!” 하고 부를 용기가 없었다.


20분을 꼬박 따라가서

아주 소심하게 말했다.

“언니… 아빠가 집에 오래…”


언니는 짜증 섞인 얼굴로

걸음을 돌렸다.


집에 오자마자

언니는 글자 그대로

먼지 나게 맞았다.


머리끄덩이를 잡힌 채로

나무토막으로 손바닥을 맞아서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졌다.


훗날 엄마 말로는

탈모가 왔었던 것 같다고도 했다.

나는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너무 미안했다.

내가 “놓쳤어”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언니를 보내줬어야 했는데.

나는 너무 어렸고,

생각이 너무 짧았다.

이 기억은

나에게도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생존자 죄책감(survivor‘s guilt)

: 자신만 재난이나 사고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대해 느끼는 죄책감



여전히 이때를 떠올리면

가슴속이 울렁거리고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때 이후로 조금씩 언니와 멀어진것같다는 생각도 해봤다.


내가 더 용감했더라면, 내가 더 영리했더라면.

언니는 그렇게 맞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런 기억은 웃다가도

문득 떠올라 나를 땅으로 끌어내린다.

오래도록

왜 그렇게 언니에게 미안했는지 설명할수없었다.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알겠다.

내가 언니를 불러오라는 말대로 했기 때문에

언니가 맞았고, 나는 맞지 않았다

언니가 앞에 있었고, 나는 그 뒤에 있었다.


나는 언니를 방패로 삼았다.

나는 아빠에게 맞서지 못했고, 저항 없이 따랐다.

그건 언니에 대한 ‘배신’이었고

오래도록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




시간이 지나도 가슴에 남아서



그날의 시린 공기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가슴에 남아서

이따금씩 나를 뚫고 지나갔다.


20년이 지나서야

용기를 내어

언니에게 말했다.

“그때… 너무 미안했어.”

언니는 이렇게 답했다.

“어린애가 아빠 말 듣는 게 당연한 거지.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한 거야.”


의외의 답변이었다.


'언니가 나를

미워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말을 듣고

조금은 숨이 쉬어졌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말하고 싶다.

미안해, 언니.


나는 아직도 여기,

이 말 끝에 매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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