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백숙먹는 날

나는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by 파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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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집



부모님은 항상 싸우셨고,

우리가 있을 때면 더 심하게 싸우는 것 같았다.

구경꾼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믿을 구석이 있다고 느껴서였는지,

엄마는 우리가 있을 때

더 적극적으로 아버지에게 싸움을 거셨다.


엄마 말로는

아버지가 너희 없을 때와 있을 때

하는 행동이 다르다고 했다.


그 점이 아주 참기 힘들다고도 하셨다.


엄마도 답답하셨겠지만

싸움의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그걸 지켜보는 일은

늘 몹시 불안하고 힘들었다.

모른 척하는 것이 가장 편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었다.


집은

편안하고 쉴 수 있는 내 공간이 아니라,

체할 것 같은

아버지의 공간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집에 얹혀사는 사람 같았다.


아버지는

싸움이 심각해질 때면

집 안 소파에 드러누워 담배를 피우셨다.


평소에는

“아빠, 금연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그때만큼은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조차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런 권력을 즐기셨던 걸까.


아니면 몇 걸음 밖에서

담배를 피우기 힘들 만큼

참기 어려웠던 걸까.


어느 쪽이든,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럴 때마다

엄청난 불쾌함과 모욕감을 느꼈다.


엄마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하나있다.

우리가 아직 분유를 떼지 못했던 아주 어릴 무렵,

여름의 더운 날

달리는 차 안에서 두 분이 심하게 싸웠다고 한다.


아이가 땀을 뻘뻘 흘리는데도

아버지는 에어컨을 켜주지 않았고,

엄마가 아이에게 부채질을 해 주자

아버지는 이성적인 척을 한다며

엄마를 욕했다고 했다.


이 외에도

본인이 화가 나면 밥을 거르고,

쉽게 선을 넘어버리는 아버지를

나는 어릴 때부터

인격적으로 몹시 불편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대해 미움만이 아닌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이

견딜 수 없이 늘 괴로웠다.





미술하는 애들



중학교 3학년.

내 인생에 가장 큰 사건은 그해에 일어났다.


나는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다.

아버지가 무서웠지만

무섭다고 인정하는 것이 더 굴욕적으로 느껴졌다.


걱정이 많았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어른이 되면 뭘 하고 살지 자주 생각했다.


공부는 나쁘지 않았지만

늘 들쑥날쑥했다.

어느 시험에서는 반에서 2등을 했고,

어느 때는 5등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공부는 안 되겠다.

더 잘할 자신이 없었고, 너무 어려웠다.


그림은 좋아했고, 그리는 건 할 만 할 것 같았다.

조금 이른, 조금 건방진 생각이었지만

나는 그림으로 먹고살고 싶었다.


동네 미술학원을 찾아갔고

부모님께 말했다.


의외로 부모님은 미술학원을 보내주셨다.

하지만 집 안의 공기는 늘 그랬다.

엄마는 미술하는 애들은 멍청하다고 했고,

아버지는

자기 경험을 꺼내 들며

미술하는 애들이 얼마나 수준이 낮은지 이야기했다.

나는 그 말들 한가운데서

꾸역꾸역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방학은 중요한 시기였다.

아침부터 밤까지 학원에 붙잡아 두는 특별 강의가 있었지만

나는 그걸 들을 수 없었다.

학원비가 너무 비쌌다.


지금은 이해하지만

그때는 너무 부당하게 느껴졌고, 서러웠다.





처음으로 하고 싶었던 일



아버지는 내가 지방에 있는 예고를 가길 원했다.

나는 유명한 예고를 가고 싶었지만

형편상 갈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시험은 보고 싶었다.

내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완강히 반대했다.

가지도 않을 학교에 붙고 말고가 무슨 의미냐고.

혹시 붙을까 봐 두려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일을

처음으로 만났던 것 같다.

그래서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나는 끝까지 어차피 가지 않을 테니

원서만 쓰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아버지는 노발대발 화를 내며

내 눈앞에서 원서를 집어 던졌다.


“너는 거기 이제 못 가.”


그 순간,

내 영혼이 꺾이는 느낌이 들었다.






백숙 먹는 날


'엄마의 목을 조르던 아버지의 손,

칼을 들고 있던 손.


그 모습은 지금도 이따금씩

악몽이 되어 나를 찌른다.'


그 무렵,
집 안은 늘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숨을 잘못 쉬면
또 하나의 전쟁이 시작될 것 같았다.


그날도 그랬다.
엄마가 백숙을 끓였다.


내 동생은 엄마가 해준 백숙을 좋아한다.

나는 닭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 날은 아무 말 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허옇게 익은 닭을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려놓으셨다.


하지만 집안 분위기는 좋지 못했다.

그날도 두 분은 심하게 다투고 계셨다.

불안한 마음으로 닭을 먹고,

엄마가 떠 준 죽을 몇 숟갈 뜨는 사이-


죽이 담긴 밥그릇이 엄마 쪽으로 날아갔다.

죽그릇은 엄마의 얼굴을 스치고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벽에 묻은 죽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엄마도 그릇을 집어 들었다.

아빠에게 그대로 던졌다.

아빠는 손으로 그것을 막았고,

그릇은 다시 한 번 산산이 부서졌다.


다시 전쟁이었다.

그것도 대전쟁.

내 삶 전체를 통틀어

가장 격렬한 싸움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때 갑자기

낯선 비린내가 났다.


아빠 손에서 떨어진 피였다.

그릇에 맞아 찢어진 것 같았다.


나는 아빠가 걱정되기보다는

그 상황 자체가 패닉이었다.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강렬한 피 냄새가 집 안에 퍼지는 것이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을 보고 있는데

불똥이 튀었다.


“뭘 봐, 이 새끼야. 닦아.”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이런 욕을 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을 휴지로 닦으며

너무 서러웠다.


나는 그저

무서워하는 나를 토닥이며

“괜찮다”고 말해 줄 어른이 필요했을 뿐인데.


아버지는

자기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데도

가만히 보고 있는 내가

몹시 괘씸했나 보다.


잠시 뒤,

아버지는 주방으로 가 식칼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그 칼 끝을 자기 팔에 갖다 댔다.


“찔러?”


이미 그릇에 찢겨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팔이었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더 도발했다.


"해봐, 말리는 사람 아무도 없어."


나는 그 칼날이

다음에 어디를 향할지 몰라

숨도 쉬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그날의 장면은

오래도록 잔상처럼 남아

내 삶에 스며들었다.





놓기 어려웠던 이유



항상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따뜻하게 느껴졌던 순간도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가 너무 멀어

첫날 아빠가 차로 데려다주셨다.

걸어서 40분 거리였고,

아이의 걸음으로는 더 멀게 느껴지던 길이었다.


그날은 눈이 많이 온 다음 날이어서

학교로 올라가는 언덕길에

눈이 가득 쌓여 있었다.


아빠가 물었다.

“혼자 갈 수 있겠어?”

나는

“그럼, 혼자 갈 수 있어!” 하고

괜히 씩씩하게 대답했다.


아빠가 뒤에서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더 씩씩하게 언덕을 올랐다.


그리고

아빠의 차는 떠나갔다.


지금도 그 장면은

따뜻한 체온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아빠의

“혼자 갈 수 있겠어?”라는 그 물음이

나는 그렇게나 좋았다.


그리고 늘 아쉬웠다.

나는 왜

항상 바른 아이,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이려고 했을까.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빠, 무서워.

빙판길이라 미끄러질 것 같아.

같이 가 주세요.”


그 말을 하지 못했던 내가

지금도 조금 아프다.


아마도

그 빈자리에 남은 온기가

너무 달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래도록

그 사람을 미워하면서도

놓지 못한 채 살아왔다.


가정의 폭력은

나쁜 기억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좋았던 순간들마저

함께 묻어 버린다.


그런데도

가끔 그 기억들이

다시 고개를 든다.


그래서 더 놓기 어려웠다.






(이야기가 길어져 전편과 후편으로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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