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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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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Jan 25. 2018

(3) 런던, 또 다른 런던

기타의삶 두 번째, 영국

워킹홀리데이 제도를 이용해 영국에서 머물렀던 일년 반.

새로운 공간에서 낯선 일들을 겪으며 천천히 스며드는 여행인 듯 삶인 일상의 기록을 담습니다.




런던 올림픽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던 2012년 어느 여름.


도시 전체가 오후 두 세시 쯤의 공항과 같이 발 디딜 틈이 없는데도 용케 그 속에서 사람들은 내 옆을 스치며 바쁘게 지나쳐갔다. 내가 처음 만난 런던은 거대하고, 꽤나 바쁘게 움직였고 현란했고 또 신비로웠다. 도시 전체에서 커다란 보물찾기가 일어날 법 한, 호기심과 즐거운 상상이 마르지 않는. 그저 이상 속에나 존재할 듯한 그런 도시였다.


올림픽 특수에 덩달아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은 파운드는(2016년 브렉시트 투표 이후 가치가 30%나 곤두박질 쳤다) 자신이 누구나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화폐임을 한껏 강조했었다. 


쿠사마 야요이로 뒤덮힌 셀프리지 백화점, @2012, 런던



1.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을 처음으로 접고 독일에 머물렀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생애 첫 런던의 경험이 일 년도 채 안되어 나를 독일로 향하게 한 계기였을지도 모른다.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 그리움은 있으나 좀처럼 갈 여유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부활절 특가로 깜짝 할인을 하는 영국항공의 항공권이 눈에 띄었고 나는 그것을 잽싸게 낚아채 다시 한 번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생애 두 번째로 찾은 런던은 내게 마치 동네 잘 나가는 아는 언니와도 같았다. 왜 공부도 잘하고 인물도 번지르르 해 걸어 다닐 때마다 뭇 남성들의 시선을 강탈해버리는. 예쁘장한 외모에 당당한 매력까지 있는 그런 주변에 간혹 있는 아는 언니 말이다.

 

분명 한국에도 남부럽지 않게 잘 꾸며진 공원들도 많고, 공공시설에 첨단IT시설 등을 고려하면 영국이야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런던이라는 도시는 그 이름 하나로 모든 걸 가치 절상시키는 마력이 있다. 튜브에 올라타면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전화 신호가 잡히지 않아 통화도 할 수 없다. 마트에서 차디찬 샌드위치와 음료수 한 병, 그리고 함께 먹을 수 있는 자그마한 감자칩 한 봉지를 세트 상품(Meal deal)으로 우리 돈 5천원에 판매한다고 매우 저렴하다며 만족을 표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나는 런던이다. 
왜 또 다시 런던이냐고 물으면 그냥 웃는다. 
말은 최대한 아낀다.



2.

회사 생활 도중에 며칠 휴가를 내고 홀연 일본으로 떠났다. 공항에 도착해 시내로 들어가는 전철안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영국으로 출장을 가야 한다고. 목요일에 전화를 받고 월요일에 영국행 비행기를 탔으니. 전혀 의도하지 않은 초행길에 세 달을 머물러야 했다. 회사라는 커다란 우산 아래 비를 피했고 날카롭게 솟은 물가는 법인카드라는 튼튼한 방패가 상대했기에 나는 온실속 화초와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후 1년이 지나 나는 다니던 회사를 떠나 혼자 독일로 떠났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지내면서 기차와 버스를 타고 주변을 여행했다. 독일로 떠날 것을 불과 일년 전에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열여섯 개의 철제로 된 이층 침대가 빼곡히 늘어선 호스텔 방에서 내가 잠든 사이 누군가 돈이 될 만한 것들을 훔쳐가지는 않을까 불안함에 노트북을 옷 속으로 넣어 꼭 끌어안고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도, 돌아와 또 다른 생활을 영위할 때에도 내 발걸음이 다시 런던이라는 곳으로 향할 것이라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왜’라는 누군가의 물음에 어느새 입을 다물었고 마음을 닫아버렸다. 대꾸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는 게 일상의 섭리라고 생각했다.



3.

나는 이 영국이라는 곳을 쉼 없이 코피 쏟아가며 휴일 없이 아침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일을 하던 원정 일터로서 찾았고, 또 비행기로 한 시간 반거리의 도시를 여행하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도 찾았다. 그리고 이제는 ‘생활’을 해보기 위해 다시 한 번 찾았다. 


시간이 지났지만 런던은 그대로였다. 바뀐 거라고는 내가 전부였다. 

그를 대하는 나의 모든 게 서글프게 변해 있었다. 한 달의 생활비를 계산하며 건강이 아닌 절약을 위해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게 됐다. 한국에서 쓰레기 취급했던 문틈 사이에, 또 신문 사이에 끼워져 집으로 들어오는 빼곡한 마트의 행사 전단지를 경진대회라도 준비하듯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수십 년 만에 파업과 ‘뻑’하면 운행이 중단되는 일부 튜브 노선들을 피해 움직이느라, 일기예보와 더불어 뉴스와 실시간 교통 정보를 매일 아침 확인했다.


관광객 군단의 행진을 피해 여유롭게 산책할 만한 경로를 물색하고 런던에서 속히 ‘물이 좋은’ 바(BAR)나 술집(Pub), 장소 정보를 찾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은 침대에서 내리 쉬기도 했다. 책 한 권 손에 들고 집에서 십 분 남짓 거리에 있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Central Saint Martins) 앞 계단에 눕다시피 늘어진 채, 발 밑에 흐르는 운하의 넘실거림을 느끼며 하루를 보내는 휴식을 취했다.


불과 한 달쯤 지났을까? 한국에서 주구장창 무한반복으로 틀어둔 채 시청했던 영국드라마 속의 런던과, 내가 두 발 땅에 딛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누군가와 소셜 활동을 하고 있는 런던의 ‘틀린그림찾기’도 속속들이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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