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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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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Feb 06. 2018

(6) 론도너의 길은 험난하다

기타의 삶 두 번째, 영국

워킹홀리데이 제도를 이용해 영국에서 머물렀던 일년 반.

새로운 공간에서 낯선 일들을 겪으며 천천히 스며드는 여행인 듯 삶인 일상의 기록을 담습니다.



친구가 살던 큼지막한 옥탑에 자리를 잡고 일 년이 지났다. 

틈틈이 산책이라도 할 겸 운동화를 신고 걸어나가 가로등이 드문드문 보이는 좁다란 골목과 저녁이면 내 방보다 밝은 빛으로 반짝이는 간판들이 무수히 즐비한 해밀턴 호텔의 뒷골목을 둘러보곤 한다. 하루가지나고 다음날 아침이면 “하루가 왜 이렇게 짧아?”라고 연신소리 없는 하소연을 하던 날들이 몇 번 반복된 거 같은데 야속하게 세 달이 지나갔다.


야채와 고기를 살 때 들르는 가게가 생겼고, 집 앞에 지윤마트는 일주일에 두 번은 들렀더니 가게 주인 언니와 말을 트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삼 주에 한 번씩 집에 오는 길에 녹사평 지하차도 근처에서 그날 로스팅 된 원두를 사고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몇 안 되는 지인들이 번갈아 가며 이십 일 세기에도 옥탑에사는 내가 진귀한 건지 나를 찾아와 생사를 확인한다.


전기는 글을 쓰거나 음악을 들을 때가 아니면 코드를 모두 뽑아 두고, 몸이 보통의 여성보다도 찬 기운이 강해 항상 따뜻하게 해주어야 한다길래 집 안에서도 두꺼운 아디다스 점퍼를 껴입고 생활하는 게 겨울의 초입을 맞이하는 옥탑의 일상이다. 보일러는 해가 지고 쌀쌀함이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면 잠이 들기 전까지만 가동을 시킨다. 집에서 오분 남짓 거리에 있는 할인 마트와 골목 슈퍼는 일주일에 먹을 메뉴를 생각하여 필요한 재료만 알맞게 구입한다.


“궁상 떨지마”
“보일러는 항상 틀어둬. 그러다 몸 상한다.”
“너 왜 이렇게 변했어?”


맞다. 

나는 이렇게도 변했다. 


1.

보일러가 없는 방에서 얇디 얇은 유리창 너머로 “슝슝” 소리를 내며 언제라도 나를 덮치러 대기하고 있는 바람에 오로지 침대 옆 자그마한 라디에이터 하나를 가지고 맞서는 겨울을 나는 독일에서 한 번, 영국에서 또 한 번 겪었다. 신기하게도 벽에 붙은 라디에이터를 껴안고 잠이 드는 기술을 익혔고, 쌀쌀함을 머리로 느낄 때에는 이미 온 몸이 서늘함에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리게 만드는 유럽의 추위에 적응 한답시고 그들의 겨울 패션을 코스프레 하기 시작했다. 실내에서도 두꺼운 스웨터를 겹겹이 껴 입은 건 멋이 아닌 생존임을 알았다. 그렇게 변변한 난방기구 없이도 잘만 버텼던 겨울을 아직 신고식도 제대로 치르지 않은 12월부터 나약하게 보일러를 틀어가며 따뜻한 온기와 함께 생활비를 날려버릴 생각을 하니 “이 곳은 영국이다. 나는 지금 영국에 있다.”를 되뇌어 본다. 그러니 한껏 가볍다.


“비싸”

단발의 비명을 질러댈 정도로 영국의, 아니 런던의 방 값은 놀라웠다. 

보통의 방 한 칸을 가지고 욕실이나 주방 등의 공동공간을 공유하는 ‘플랏 쉐어’는 기본이 일백 만원이다. 맙소사. 정말 방 한 구석에 앉아 끼니 때가 되면 손가락만 맛있게 빨고 목이 마르면 런던 시민의 식수인 탭워터(수돗물)로 목을 축인다고 하더라도 백 만원이 매 달 내 계좌에서 빠져나간다. 집이라는 공간에 이 정도의 금액을 지불하고 나면 생활을 위해서라도 그 외의 지출을 스스로 관리하고조절해가지 않으면 “런던에서의 삶” 자체가 지속될 수 없다.


유목민처럼 잦은 이사는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걸 쉽게 만들었지만, 유독 적응할 수 없었던  추위와 더위(Feat. 이태원 옥탑방)


2. 

런던에서 두 달 반 정도를 머물렀다. 

내가 일 년을 넘게 머물렀던 밀톤 케인즈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 런던의 물가를 온 몸으로 느끼며 조금씩 생활 습관을 바꾸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곳에서 런던에 도착한지 열흘 만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일주일에 세 번을 일하고 한 달 생활비 정도를 벌 수 있는 “미니잡(mini job)”이었지만 턱없이 비싼 런던 물가가 언제 나를 집어 삼킬지 모르는 상황에 무턱대고 영국인들도 찾기 힘들다는 정규직 일자리를 기다릴 수 만은 없었다.


환승 혜택이 없는 런던에서 짧은 거리는 걷거나 조금 돌아가더라도 버스를 이용했다. 내가 살던 유스턴(Euston)은 런던 1-2존에 위치하여 시내 곳곳의 관광지나 번화한 곳들로 움직이는 게 정말이지 편하고 비용도 적게 들었다. 비록 한 방에 침대를 둘 놓은 채 다른 한 친구와 같이 생활하는. 스무살에 남양주 언저리 축령산에 있는 기숙사 학원에 들어가 이층 침대를 둘 놓아두고 네 명이 방을 썼던 때 이후로 처음 누군가와 한 뼘의 개인 공간도 없는 밀실에서의 생활을 매달 팔십 만원을 지불하면서 이어갈지라도.

 


3.

하얀 피부, 갈색의 눈동자와 머리카락, 주근깨 양 볼에 가득한 채 기품 있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사람. 영국인을머릿속에 떠올리면 영화 레미제라블의 에디 레드 메인이나 영국 왕실의 해리 왕자를 상상하는 건 런던 올림픽 때 출장으로 한 번, 독일에 머물면서 부활절 특가 항공권이 선착순으로 나오자마자 단박에 낚아채 런던을 찾았을 때 한 번해서 나름 영국을 만나봤다고 생각하던 내 기억과 추억의 오류였다. 

항상. 별 이유 없이 미워하고 슬퍼했던 어느 지난날도 돌이켜 떠올리면 속상했던 기억은 없고 시절의 아름다움만 꽃으로 채워져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 싶다.


셀 수 없이 많은 키오스크와 맥도널드, KFC 등의 패스트 푸드점, 심지어 은행에서도 내가 마주치는 직원들의 대부분은 내 상상 속의 허여 멀건 영국인이 아니었다. 어두운 얼굴색과 영어를 할 때 모국어가 아닌 제2 외국어를하는 사람들이 공감하는 평소 본인 말투보다 한 톤 높여 말하는 머리털 검은 사람들로 서비스 산업의 많은 부분이 채워져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종종 방글라데시와 소말리아 출신이라는 사람들도 섭섭잖게 만날수 있었다.


정식적인 이민 절차를 밟고 영국 땅에 뿌리내려 수십 년 째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난민이라는 생사를 건 어려운 투쟁 속에서 살아남아 가정을 꾸리고 그들만의 공간을 구축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 속에는 그 동안 내 머릿속에 존재하던 론도너(Londoner)가 자리잡지 않았다. 짧은 여행으로는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런던. 그리고 런던의 사람들. 이렇게 나는 또 새로운 캔디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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