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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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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r 18. 2017

분기점 프랑스




2.   분기점프랑스


연차라는 훌륭한 제도가 있어도 연차를 사용하지 못하는 직장인이 오직 나뿐이었겠는가. 쉬지 않고 소처럼 일한 덕분에 퇴사 직전에도 남아있는 유급 휴일이 쏠쏠하다. 으레 대부분의 퇴직했던 사람들이 그래왔듯이, 나 역시도 남은 연차를 모두 사용하고 퇴직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고 두 주 남짓한 시간을 가지고쉼을 갖기로 마음 먹었다.


‘휴대폰을 집에 두고 제주도에서 내려가서 한 달을 쉴까?’

‘기차를 타고 고속버스를 타고 우리나라 일주를 해볼까?’

‘좋아하는 일본에 가서 맥주나 실컷 먹고 잠들고를 반복하고 올까?’


세상이 끝난 것도 아닌데 쓸데없는 호들갑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 게 내게는 ‘콤마’이자일단락의 ‘마침표’를 기념하는 의식이 필요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사회적으로, 금전적으로, 때로는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했던 회사이기에, 말없이 보내기엔 그 동안의 나의 심심했던 연애 상대들처럼 치부하기 싫었다. 내가 없어도 잘 먹고 잘 산다는 공통점은 분명하지만.


그 때 회사에서 내 왼쪽 자리의 직장 동료가 “그런 비용이나 시간이면 유럽을 다녀와도되겠네. 아예 새로운 곳에서 보고 느끼고 네 시간을 보내고 와도 좋을 것 같은데?”라는 말을 달콤한 말을 내뱉었다. 3년간 회사에서 꼬깃꼬깃 접어져쪼그라든 뇌와 협소해진 눈이 번쩍 띄었다. 유럽 땅이라고는 출장 길에3개월 꽉 채워 영국, 그것도 런던에 있었던 게 다이니 몇 개월을 준비하고 정보를 수집하고일년 전에 저렴하게 항공권을 구입하는 여행자와 나는 분명히 달랐다. 즉흥 생활이 오히려 정기적인 나는이십 분 남짓? 컴퓨터를 뚜들기고는 “저 파리 다녀올게요.”라는말을 남겼다.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던 생각도 아니었지만 파리를 여정의 목적지로 삼았고, 그 때에 나는 모니터 속에서 두 도시의 이름을 마주했다.


『파리』

『프랑크푸르트』


몇 달 뒤의 나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질지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눈에 띄는 왕복 112만원에 일본항공(JAL) 티켓을 구입한다. 첫날 머무를 숙소만 있으면 된다 싶어 포털사이트에검색해서 가장 윗줄에 나온 민박집에 예약도 마친다. 그럼 준비 끝. 어째그 동안 주위에서 유럽 다녀온다고 몇 달 전부터 설레 발을 감싸 쥐고 시간과 공을 들이는 지인들이 들려준 영웅담에 준하는 준비태세는 없어 보인다. 백만 원이 넘는 교통비를 지불하고 유럽 땅을 밟는데 고작 파리? 라고말하는 지인들이 대부분이다. 가장 무서운 ‘간 김에’라는 말로 유럽의 곳곳을 돌아보라고 충고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어떠하리. 세상 만사 나 좋으면 그만 아니겠나. 나의 시간을가장 기분 좋게 보내는 최고의 방법을 아는 건 내 자신이다. 태어날 때부터 허리춤에 묵직하게 장착하고 나온 근거 없는 자신감에 파리(Paris)에 ‘P’만 아는 대한민국 촌뜨기는 그렇게 발걸음을 뗀다.


예술과 자유가 어우러진 몽마르뜨, 파리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을 엄마는 늘 입에 달고 사셨다.

특히 나에게.

병이 나지 말라고, 프랑스 무식자인 나는비행기 티켓과 첫날 묵을 숙소만 정해둔 체 8월의 어느 날, 유럽 여행의 성수기라는 때에 프랑스에서의 시간을 만들어 본다. 신혼여행으로 유럽 여행을 다녀간 사람들의 조언으로 알게 된 <유랑>이라는 카페에서 가끔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 밥 한끼, 술 한 잔이라도 할 몇 사람을 알아둔다. 그리고 프랑스 이웃에 조그만 나라 벨기에에 들려 감자튀김과 맥주를 즐길 요량으로 당일치기 차량 투어도 신청해 본다. 하나 둘, 엄마의 걱정대로 프랑스에 대해 아는 게 점점 많아지며‘이거는 먹어야지’’여기는 가봐야지’라는 생각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더라. 


2주일이라는 시간에 나는 혼자가 아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집안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하는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니 그 동안 만날 수 없었던 나를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다. 때로는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세느강의 여유를 느꼈고, 잔디밭에 누워 에펠탑을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바라봤다. 학창시절 유일하게 좋아했던 화가 <모네(Monet)>의 자취를 따라 무작정 기차를 타고 굽이굽이 작은 도시들도 떠돌아 본다. 종종 한국에서 황금 같은 휴가를 낭만의 꿀이 흐르는 파리와 함께 하러 온 직장인들을 마주치는 것도 도시의 낭만 아래에서는 반짝이는 인연의 즐거움이다. 요리를 배우겠다고 프랑스로 건너와 요리 학교를 다니고 미슐랭 가이드의 별을 받은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하는 동갑내기 친구와도 인연을 맺어 본다. 훤칠한 키에 조막만한 얼굴은 분명 한국에서 여자들 속을 꽤나 태웠을 만한 외모이나, 궁극의 심심함을 지닌 반전의이 요리하는 남자 친구 사람은 파리에 들를 때마다 만나는 사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분명 이 친구가 키가 10cm라도 작았거나 얼굴이 수박만했다면 나는 그의 무정할 정도의 심심함을 견디지 못했을 테다.


 







파리에서의 열흘이 흘렀다. 

삽시간이다. 

태어나서 처음 만난 도시의 익숙해질 수 없는 마력에 홀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는 지도 알지 못한다. 

곧게 뻗은 철사처럼 매섭고 따갑게 비가 내린 날을 제외하고 언제나 나의 하루의 마무리는 에펠탑과 세느강이 함께해준다. 친구가 되어버린 심심한 요리사와 어둠이 어깨로 내려온 저녁 시테섬(Cite)을 걸어 본다. 그리고는 끝자락에 앉아 낭만의 시간 속에멈춘다. 다홍빛의 석양이 흐릿해지며 감색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밝은 빛으로 변해버린 엄지손가락보다도 작은 에펠탑이 멀리 시야에 들어온다. 우리를 보고 연신 휘파람을 불어대며손을 흔드는 관광객을 잔뜩 태운 유람선들이 화려한 불빛을 내뿜으며 오고 간다. 내가 가진 이성과 감성이한데 섞여 가슴과 머리에서 요동치기 시작한다. 감성이 먼저 튀어 나와버린다. 일본 영화 ‘새 구두를 사야 해’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석양이 내리는 세느강을 따라 미끄러지듯 흐르는 유람선에서파리에 살고있던 여자 주인공 ‘아오이’를 우연히 만나 며칠을 함께한 이방인 ‘센’의 마지막 시간, 가슴 쫄깃해지는 대사가 오디오처럼 흘러나온다. 


아오이 – 나에게 에펠탑이 파리에요.

센 - 나에게 파리는 아오이씨에요.


나의 감성은 곧 심심하고 삭막하기도 한 친구의 이야기에 곧바로 사라진다. 요리를 배우겠다고 버젓이 대학을 졸업하고 학생으로 처음 프랑스어도 그렇다고 영어도 어느 하나 구사할 수 없는 동양인에게프랑스, 취업, 외국인 비자, 사람들, 생활등의 이야기는 곧추 이성을 세우고 현실을 직시해야만 이해가 간다.


“프랑스는 가끔 들러 여행하기 좋은 곳인 것 같아.”

“생활하기 좋은 곳은 어딜까?”

“……”



꼬르동블루 요리학교를 나와 파리의 한 프렌치 식당에서 일하던 동갑내기 친구와 함께 한 시간


지금이 가장 젊다.

생각의 매듭을 짓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생활하기 좋은 곳’이라는 지극히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의 정의를 나는 내릴 수 없다. 확실한건 프렌치가 아닌 사람이 생활을 하기에 프랑스는 차디찬 땅이라는 것이다. “돈만 많으면 프랑스도 살기괜찮아.”라는 말이 분명히 맞는 말이다. 경제적인 기준이잣대가 된다면 한편으로는 돈만 있으면 어디라도 살기 좋지 않을까. 그리고는 차근히 생각의 형태를 그려 나간다. ‘내가’ ‘새로운 것을 접하기 좋아하는’ ‘대한민국과 경제적인 물가의 차이가 적은’……인생은 선택이다. 학교를 선택하고, 진로를 선택하고,배우자를 선택하고 하다못해 오늘 점심 메뉴로 자장면을 먹을지 부대찌개를 먹을지도 선택한다.

   

모치즈키 도시타카의 내 인생의 보물지도라는 책을 접한 대학교 4학년에, 남은 인생의 목표를 세웠다. ‘대통령이 될 거야’라는 막연함 보다 육하원칙에 근거하여 조목조목 따져가며 효험이 있을지 때가 되어봐야 알나만의 꿈의 주문을 그려나갔다. 몇 년 뒤에 개그우먼 조혜련씨가 이 책과 유사한 내용의 책을 출간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잔잔한 바람이 불었었다. 단, 그 보물지도의 효력을 만나기 위해서는 무의식 속에서도 생각이 날 정도로 보이는 곳에 두어야 한다는 조건이 존재했다. 오랜만에 화장대 서랍을 정리하다 발견한 나의 보물지도에 ‘…… 서른 살에는 사업을 시작하여……’ 문구를 발견한다. 착륙시점이 가까워 올 때 비행기가 땅으로 내려 꽂는 듯한 느낌을 몸으로 체감할 때처럼 뱃속에서 싸하게 무언가가느껴졌다. ‘내 나이 스물 다섯에는, 내 나이 서른에는, 내 나이 마흔에는……’ 시간이 멈춘 순간이다.


체코의 작가 카프카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젊음이 행복이라 하지 않았나. 그 동안의 젊음을 돌아보며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지난 날은 뒤로한 채 지금의 행복을 느끼러 떠나기로 했다.


독일 현지 방송국의 거리 인터뷰가 진행 중이다@자일 거리, 프랑크푸르트


목적지는 독일이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수시로 지원할 수 있는 <독일 워킹홀리데이비자(Workingholiday)>를 신청하고 주말과 휴일을 포함하여 정확히 열흘이 걸리지 않아 그 곳에 일년 간 머무를 수 있는 승인 서류를 발급받았다. 지금도 종종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준비했는지에 대해 물어오지만 정말이지 간단하다. 독일대사관 홈페이지에서 워킹홀리데이와 관련한 공지글을 읽고 나와 있는 대로만 준비해서 서류를 방문 제출하기만 하면 내가 할 일은 끝이다. 비자를 신청하는 비용은 달러 환율이 적용되어 십만 원이 채 안 되었다. ‘비자받기 참 쉽네.’라고 생각했으나 독일로 떠나기에 금전적으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항공권과 여행자보험이었다. 비자를 신청할 때 필요한 서류 중에 보험 서류가 필요했고, 내가 독일에 갈 당시에 D보험 회사에 유학생 및 여행자 실비보험이 가장 저렴하였기에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신청해두니 담당자가 곧장 연락이 왔고 보험을 신청한지 사흘 만에 처리가 되었다. 이 곳은 한국이기에, 한국어를 사용해서 모르면 직접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연락하여 문의를 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인터넷 강국에서 인터넷으로 한 두 시간만 찾아본다면 독일에서의 기본적인 생활을 시작하기 직전까지의 절차는확인이 가능하니 내게 질문해 오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미안할 정도였다.


해외 곳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독일에도 있었고, ‘베를린 리포트’라는 독일 현지 커뮤니티 홈페이지를 찾아내어 일자리와머무를 숙소를 찾는 일을 꾸준히 했다.일자리는 꽤나 많이 올라와 있었지만 비자 시작일을 고려해 최대한빨리 시작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이 또한 쉬운 건 아니었다.



안되면 되게 해야지.

이런 FM이 또 있을까.

홈페이지 상에 나와있는 담당자들의 이메일 주소로 이력서와 경력증명서를 보냈다. 독일어는 가서 열심히 배울 자신이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나마 회신이 온 몇 곳에서는 하나같이 독일어를 중급 이상 하지 못하면 영어를 잘 한다고 하더라도 일 할 기회를 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영어도 한국에서 취업한다고 공부한 토익 영어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 고작인데 내가 과연 독일에서 일을 구할 수있을지 알 수 없었다. 애초부터 나에게 독일은 범접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을까 생각하던 찰나 한 한국물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 곳에서는 독일어는 독일에 와서 일을 하면서 틈틈이 배우면 된다고 했고 당장 공석이 생겨 근무 시작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현지 지역에 대해 전혀 알 방도가없는 내게 좀처럼 진전이 없던 방구하기에 실마리가 풀렸다. 치안이나 교통, 마트나 번화가 등의 접근성을 고려한답시고 구글에만 의지하고 있었다. 정 못 구하면 호스텔에라도 머무르면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행이었다. 우선 일을 하게 된 곳의 사장님께서 지인을 통해 한 달 정도 머무를 방을 구해주시겠다고, 독일에 오거든 그 후에 살 집을 구해보라고 하셨다. 독일의 집들은하나같이 방 하나 구하는데도 현지 은행 계좌와 재직 또는, 재학증명서 등을 요구했기에 독일행 초면에 한국에서 미리 방 한 칸을 구하는 게 보통의 일은아니었다. 비자 시작일까지 열흘 정도가 남은 상황에서 일자리와 집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큰 산들을 이미 넘어 나는 무려 독일에 도착해 생활을 시작한 기분이었다.



다음으로 비자 시작일에 맞춘 항공편을 알아봤다.

항공권은 편도로 구입했다.

돌아오는 여정은 정해두지 않았다.


비행기를 이용할 때마다 나는 항상 저렴한 것을 추구한다. 뻐근해진 허리를 좌우로 쉽게 돌릴 수도 없는 비좁은 이코노미좌석에서 열 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을 견디며 수십만 원을 절약할 수만 있다면야 서비스나 시설이 좋은 것은 나의 고려사항이 아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비자가 시작하는 일자에 맞추어 가장 저렴한 항공편을 찾았고, 말레이시아 항공 당첨. 출발일자가2주 정도 남아있던 터라 ‘아 진짜 잘 샀다.’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유류 할증료를 포함하여 52만원에 구입 완료이다. 짐을 정리하고 소포로 보내기로 한 짐들을 우체국에서 미리 십일 정도 소요될 거라는 일반 항공 우편으로 부쳐 둔다. 항공권과 여행자보험,비자 신청, 짐 부쳐두기,현지숙소 한 달치 월세까지 대략 이백 만원이 들었다. 회사를 나와 프랑스에 지체한 삼 주간의 여행 경비를합해 꼬박 오백 만원을 쓰고 나니 통장에 잔고가 보이질 않는다. 독일에서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생각한다.비로소 한 달이 될지 일년이 될지 모르는 나의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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