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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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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r 26. 2017

안녕, 독일


독일에 도착하여 프랑크푸르트 국제 공항에서 S-Bahn을 타고 처음 도착한 콘스타블러바헤역



 프랑크푸르트 국제 공항을 통해 독일에 첫발을 내디뎠다. ‘환영합니다’라고커다랗게 입국 심사대로 향하는 길에 쓰여 있는 독일어를 보고 나서야 실감했다. ‘아 못 알아 먹겠다.’라는 생각에 비로소 여기가 독일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입국 심사 대에서 십 여분을 넘게 영어로 이 얘기 저 얘기를 떠들어 댔던 까탈 맞은 영국과는 전혀 달랐다. 심지어 나는 편도 항공권 한 장으로 독일에 온 터라 더욱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쿨(cool)내’ 진동하는 독일은 독일 비자가 붙어 있는 여권의 페이지를 훑어 보고는 입국 도장을 찍어주며 내게 문을 열어 주었다. 너무도 간단하고 깔끔하게 끝나버린 입국 심사와, 나오자마자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짐 가방들 덕분에 머리털 나고 처음 와 본 나라 치고는 순식간에 입국 미션 ‘클리어’였다.

 


시작이 좋아

왠지 모를 설렘으로 지하철 이정표를 찾아 무작정 뛰었다. 그냥 몸에서 ‘달려’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 마음도 잠시, 지하철 표를 사려다 기암을 할 뻔했다.‘뭐지? 티켓 자판기가 암호 해독기처럼 느껴지는 건 왜지?’무심결에 이것 저것 눌러 보았음에도 도저히 기계에 돈을 넣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분명 내가 돈을 넣는 순간 이 암호 해독기는 ‘너의 돈은 이제 너의 돈이 아니야.’라는 말을 뱉고는 나 몰라라 할 것 같았다. 그러던 찰나에 구세주가 등장했다. 하얀 백발에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독일의 덩치는 바위처럼 커다랗고 바지를 가슴 팍까지 추켜 올려입으신 아저씨 한 분이 나에게 다가왔다. 힐끗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그를 쳐다 보니 감색 제복을 입고 있었고 캐리어 가방 두 개를 질질 끌고 다니는 동양인 여자 아이에게 허물없이 다가오는 모습이 영락 없이 역무원이었다.


나는 콘스타블러바헤Konstablerwache 역으로가야해요. 
독일은 처음이라 티켓을 어떻게 사는 줄 모르겠어요. 
도와주세요.


도움을 요청하는 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 할 말만 속사포로 뱉어놓고 백발 아저씨의눈치를 살폈다. 분명 나는 담백하게 이 말만 하면 됐을 텐데, “당신영어 할 줄 알아요?”라는 사족을 영어로 들이 밀었다. 실용주의와 합리주의의 나라 독일에서 왜 쓸데없이 필요 없는 말을 더 뱉은 걸까. 옹알대는 하룻강아지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으시더니 백발 아저씨는 유창한 영어로 표를 구입하는 방법부터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해외여행이라고 친구랑 같이 들렀던 일본 도쿄에서의 한 순간이 십 년이 지난 지금과 불현듯 겹쳤다. 깜깜한 밤에 인기척도 없는 조용한 거리에서 숙소를 찾고 있노라니 한 일본인 아저씨가 야밤에 체조를 하듯 조깅을하며 우리 쪽으로 가까워졌다. 그때 우리는 “당신 영어 할 줄 알아요?”를 시작으로 숙소를 물어봤었다. 1분도 되지 않아 일본인 아저씨들 중에도 눈을 감고 들으면 미국인인지 구별 못할 정도로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무리가 존재함을 확인했다. 일본인은 영어를 못한다는 선입견을 그때 분명 깨 부셨다고 생각 했었는데, 나는 또 “당신 영어 할 줄 알아요?”를 입 밖으로 내뱉고야 말았다. 국경을 넘나 들며 '비(非)영어권 국가의 아저씨들은 영어를 못할 것이다'라는 생각은머리 속에 진공청소기로 쓱쓱 빨아 내 버린 순간이다.


프랑프푸르트 중앙역 풍경. 정면에 보이는 Kaiser St.를 따라 걸어가면 시내 중심지인 Hauptwache 지역에 다다를 수 있다.

도착하자마자 내게 작은 깨우침을 거대하게 남겨준 이 나라, 나란 사람이 참으로 첫인상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는 걸 아는 듯 했다. 양 손으로 큼지막한 여행 가방 두 개의 손잡이를 쥐고 전철이 오면 바로 짐부터 전철 안으로 들어 올리고 빠르게 열차에 몸을 실어야겠다는 나의 야무진 생각이 상상의 정점에 다다를 때, 열차가 도착했다. 꽤 낡은 열차의 문이 열리는 순간, 아침여덟 시가 되기도 전의 이른 시각 거대한 독일사람들이 가득 보였다. 나와 내 짐 가방들이 발을 디딜 수도, 몸을 끼워 넣을 수도 없을 만한 열차 안 공간을 보고 숨이 턱 막혀 양 손에 힘이 풀렸다. 다음 열차를 기다려야겠다고 손에 쥐고 있던 여행 가방의 손잡이를 놓아버렸다. 


그러는 찰나에 너나 할 것 없이 문 앞에 서 있던 독일 남자 두 명이 빠르게 내 짐을 올려주었고 내가 두 발을 전철 바닥에 딛고 설 수 있을 만한 공간을 내어주었다. 허리가 내 가슴팍까지 올만큼 커다랗고 웃음기 싹 뺀 얼굴로 무뚝뚝함이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사람들의 세심한 행동이 좋았다. 설렜다. 친절을 베푼다고 생각하기보다 그냥흘러가는 일상의 당연한 행동을 하는 듯한 느낌이다. 공항을 벗어나 다섯 정거장이 지나서야 목적지 역에무사히 내릴 수 있었고 천만다행으로 지상으로 나갈 때까지 에스컬레이터가 있어 더 이상의 팔 운동은 필요하지 않았다.


전철을 타고 도착한 역에서 출구로 올라가니, 멀리서나를 알아보고 마중 나오신 중년의 한국인 남성분이 걸어오셨다. 독일에 오기 전에 미리 한인 커뮤니티의 구직란을 통해 알아보고 지원했었다. 그 곳에 있는 한국 기업에서 생활에 적응도 하고 생활비에도 도움이될 것 같아 일을 해보기로 했다. 나와주신 분은 그 곳의 사장님이었다.작은 회사였고 빨리 일을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사장님의 요청으로 낯선 땅에 도착하자마자 커다란 짐 가방들과 나는 함께 차에 실려 독일에서의 첫 발을 내댈 어딘가로 향했다.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의 마인강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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