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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Feb 23. 2017

느리게 걷기, 안녕 포르투

멈춰 있는 시간을 걸을 준비

소박한 시장에서


이렇게 소박한 시장 구경은 또 오랜만이다. 

포르투 지역의 오래된 재래시장 볼랴옹(Feria do Bolhao)은 여지껏 만나왔던 시장 풍경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럴싸하게 상품이 진열되어 있지도 않았고, 시장에서 느낄 수 있는 형형 색색의 활기찬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던 걸로. 그저, 시장 구경이 하고 싶었던 나는 복층으로 되어 있는 이 곳을 싹싹 훑었다.




비가 온 아침이라 그런지 활기가 넘치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관광객을 위한 분위기라고는 전통 문양의 앞치마나 자석, 타일 등을 팔거나 포르투 와인을 파는 서 너 군데의 상점 정도가 느끼게 해줬다. 

지금 사진을 보니 포르투갈의 상징인 저 닭모양의 와인 보틀마개를 사올걸.

이 곳에서 기내 반입이 가능한 미니어쳐용 포르투 와인을 집 주인 언니 부부를 위해 몇 병 사고, 문득 허기가 느껴져 시장 안에서 식당을 찾았다.


시장 정 중앙에 서너 곳 정도 식당이 있던 걸로 기억한다. 아주머니들이 분주하게 음식을 요리하고, 딸내미로 보이는 야무진 눈빛의 젊은 여직원이 포르투갈 악센트로 영어로 말을 건낸다. 시장 안의 가게들 대부분은 카드 결제가 되지 않고 시장 정문 입구 쪽에 현금인출기가 있으니 현금이 없을 땐 가서 뽑아오믄 된다.


구운 대구요리(Bacalhau)와 해물밥, 그리고 해산물이니 화이트 와인을 주문하고

급하게 가서 현금을 인출해왔다.

음식을 입에 대기 전에 카드 결제가 되냐고 물어보길 잘했다. 만약 음식을 다 먹고 난 뒤에 현금이 없는 지갑을 만지작 거렸다면 무전취식으로 어떠한 난감한 상황을 맞이했을지.




대구와 문어


포르투갈 사람인 회사 동료 티아구(Tiago)는 포르투갈에 가면 대구는 어떤 것이라도 먹어 보라고 귀띰했다. 대구는 워낙 이 곳 사람들의 주식으로 오랜 세월을 함께한 식재료이므로 조리법도, 레서피도 다양해서 메뉴가 많았다. 우리 내의 명태와 같은 느낌이지만 크기가 명태의 곱절은 되고 살이 푸짐하니 염장을 하거나 훈연을 해서 오래두고 먹기도 하니 다양한 음식으로 포르투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올 수 있었겠거니.


티아구는 이 밖에도 몇 가지의 음식들을 추천했다. 내게 설명하는 내내 상상을 한 건지 일을 할 때에는 항상 어딘가 곤란한 것 같은 표정을 짓던 것과 달리, 나는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서 초롱초롱한 눈빛을 발견했다. 좋아하는 것은 arroz de pulvo, 일명 문어밥! 아쉽게도 이 곳에는 문어밥이 없어 해물밥을 주문했다.



한 뼘 정도 되는 크기의 병에 담긴 노란 빛깔의 와인을 한 잔 작은 물 잔 정도 되어보이는 컵에 따라 맛을 볼 때 쯤에 대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쪄서 올리브유에 살짝 볶은 듯한 감자와 샐러드, 올리브, 양파를 곁들여 먹었다. 말린 대구를 조리한 게

황태 느낌도 난다. 주문이 안들어 갔나?싶어 그냥 가야겠다고 생각할 때 쯤, 문어밥이 뽀얀 연기를 뿜어가며 등장했다.


새우 모시조개 홍합 개 오징어 해물 그득한 토마토 리조또 느낌의 해물밥이 성인 남성이 혼자 먹기에도 조금은 과한 느낌이 있을 정도의 충분한 양으로 제공 되었다.


맛. 좋. 다.

이렇게 배가 터지도록 먹고 12유로 정도 나온듯 하다. 

시장 내에는 현금으로 결제를 해도 모두 영수증을 발행해 준다.



아까는 시장에 뒷문으로 들어왔는데 나올 때는 또 정문으로 나왔다. 다행히 배를 따뜻하게 채우고 비가 내렸다면 오히려 춥고 피곤했을텐데,

고맙게도 날씨가 화창해졌다. 

고마운 하늘. 고마운 포르투(Porto)


밥먹기 전 우중충한 하늘에서 봤던 교회 모습이 날이 개니 또 이렇게 아름다워 보일수 있는 게냐,


멀리서 건물 전체를 보는 것도 아름답지만 바로 앞에서 실제 타일에 그려진 벽화를 감상하면서 느끼는 감흥이 또 다르다.

누가 팔랑귀 아니랄까봐 포르투는 이틀이면 족하다는 동창 말에, 포르투갈에 오기 전 날 급하게 리스본 가는 열차 티켓을 예약했었다. 프로모션 용으로 왕복 37유로여서 환불이 되지 않아....가야지. 이 좋은 날씨와 맛있는 음식을 놔둔 채. 더 맛있고 더 좋은 리스본을 기대하며.


역 근처 풍경에서 왠지 모를 브라질 버스터미널(Rodoviaria)느낌이 나길래 별 거 아닌데 사진 찍으며 추억에 잠겨 본다.

아. 포르투갈 곳곳에서 브라질의 느낌이 나던건, 역시...그들은 이어져 있었지.


이번 여행에서 신기하리만큼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았다. 휴대폰은 그저 아름다움을 담는 카메라가 되었고, 그저 지금이 몇 시인지를 확인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조그마한 동네에서 어느 정도만 가면 강이 보이고 또 내가 어디있고, 가려는 곳이 어느 방향인지만 머릿 속에 담고 이 골목 저 골목 헤집어 가다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렇게 나를 따라 걷는 골목길은 상대적으로 발전이 한 10년 20년 멈춰있는 듯하다. 멈춰있는 거리의 고요함 속에 한 걸음 한 걸음을 걷는 나와 이 시간을 즐기는 나만이 파란 하늘과 함께였다.



가까이 보면 예쁘다. 너도 그렇다.




화려함은 없지만 아기자기한 특유의 이 곳 건축물의 감성은 시간이 멈춰버린 집들에서 느낄 수 있다. 포르투 공항을 나오는데 공항에 커다란 광고 문구가 있었다. "포르투갈에 집을 사세요." 얼마나 하려나. 집값도 시간이 멈춰있으면 좋으련만.



안녕, 리스본


포르투갈 국영 철도 compoios de Portugal E.P.E. 에서 열차 티켓을 구입했다. 포르투의 기차역에서 두 시간 반 정도 기차를 타면 리스본에 다다른다. 위 아래로 길게 뻗은 지형의 포르투갈은 우리나라보다 살짝 작은 면적이지만 그에 반 해 인구는 우리의 1/5 꼴이니 그것 만으로 생각의 여유가 밀려온다.

리스본의 가장 큰 중앙역 Lisbon-Oriente에 내릴 수 있다.


무료 와이파이가 되는 열차에서 이어폰 끼고 오래된 영국의 시트콤 미란다(Miranda)를 보면서 낄낄거리다 창 밖의 풍경을 관찰하다, 멈추는 정류장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빤히 들여다 보며 신기해 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두 시간 반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리스본이다.

스케일이 다르구나.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타고 베를린 중앙역에 도착했을 때의 기분이다. 

도시에 상경한 시골쥐의 기분이 이런걸까.



사실 포르투(Porto)에서 조금 실망한 부분이 있었다. 


나름 포르투갈의 두번 째 도시라는데, 규모나 발전 모습 자체가 2016년에 내가 보아온 다른 유럽의 도시들에 비해 뒤쳐진 느낌이었다. 너무 소박했고 도시가 잘 정돈된 느낌도 아니었고, 활기가 넘쳐보이지 않았다. 아기자기함과 오래된 건축물들이 자아내는 풍경의 미학은 존재하나 시간은 2000년에서 아니, 1999년에 멈춰버린 듯했다.


포르투갈의 역사와 문화, 문학과 정치를 배우고, 미국인과 영국인 사이에 느껴지는 신경전처럼, 브라질에서 포르투갈을 언급하는 브라질 친구들에게서 느꼈던 포르투갈을 향한 질투아닌 질투와 의식. 내가 상상했던 포르투갈은 포르투(Porto)에서 느낄 수 없었다.


PIGS의 경제 불황이 내 눈으로 직접 전달되는 건지. 한편으로는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그러던 찰나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을 만났다. 눈 앞에 펼쳐진 리스본은 또 다른 분위기였다. "리스본은 유럽이지"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리스본 오리엔테 중앙역 풍경



리스본에서도 데이 티켓을 구매했다. 포르투보다 저렴한 6유로다. 이용하는 순간부터 24시간을 택시와 기차를 제외한 대중교통수단을 마음껏 이용하는데 드는 비용이 팔천 원이 채 안 되는 금액이니, 교통비가 살인적인 영국에 비해 비만인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보여지는 사람들은 다들 마르거나 외소한 체구였다. 기내용의 작은 여행가방을 가져왔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내게 자리를 양보하고 지하철에 올라탈 때 심지어 나의 가방을 선뜻 열차에 올려주는 사람도 만날 수 있었다. 권위가 느껴지지 않았고 특별하지 않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도 열정에 가득 찬 모습도 보이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꾸미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게 내게는 멋으로 다가왔다. 겉 멋 들지 않은 삶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그들의 숨소리에 맞추어 앞으로 움직이는 느낌이 안정적였다. 


성세바스티안역에 위치한 숙소 Sana Reno hotel로 향했다.


내가 예약할 때 졸았는지, 더블룸을 예약했어야 하는데 열쇠를 받아 찾아간 방에는 침대가 둘이었다. 트윈룸을 예약했구나. 대수롭지 않게 침대를 붙였다.

옥상에 사우나와 노천 수영장이 있다길래 밤에 돌아와서 시간이 괜찮으면 사우나는 이용해 보기로 생각했다.

꽤나 넉넉한 크기의 더블룸, 조식 포함, 핫스팟들에 접근성 좋고, 와이파이, 주말 요금기준으로 1박에 60유로 정도이니 가격대비 괜찮은 조건이였다. 열 여섯 개의 이층 침대가 빼곡히 놓여 있고 층마다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을 써야했던 런던 한 복판의 호스텔을 이용하는 가격의 정확히 두 배였지만 가치의 차이는 상당했다. 만약 누군가와 함께 이 곳을 찾는다고 생각하면 상대적인 비교가 쉽다. 




짐을 다 내려두고 가벼운 옷차림에, 시계이자 카메라로 전락한 휴대폰을 충전 하자마자 곧바로 허기진 마음을 채우러 떠났다. 리스본에 가면 꼭 들르고 싶었던, 나의 호기심의 양식이 되어줄 Time, Ribeira 푸드마켓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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