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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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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y 08. 2017

한국에서 찾아 온 친구



파리피플 언니 둘
“언니 나 독일 가”


양양이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보고 싶어서 휴가를 내고 내가 사는 곳에 오겠다고 했다. 함께 여행을 하자고.얘기를 들은 순간부터 반가움과 설렘과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등의 생각이 겹쳐 머리 속이 새하얘졌다. 양양은 대학교 4학년 때 마지막 학기 수업에서 만난 한 살 어린 동생이다. 태어난 개월로 따지면야 세 달 남짓 차이가 나고 내가 재수를 했으니 학년은 같았다. 그래도 내게 꼬박 언니라고 불러주는 참 살가운 친구이다.


나는 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중학교 친구,고등학교 때 친구,회사동료 등의 어휘를 써서 주변의 사람들을 언급하지만 정작 ‘친구’라는표현을 붙이는 게 어색하다. 그 때가, 함께 하는 시기가 지나면나는 사람들과 멀어졌다. 사람을 사귀는 게 서투르고 일방적이라 먼저 사람들에게 연락도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서른이 넘고 나니 어느새 주변에 사람들이 없다. 내가 사람들에게 선을 긋고 벽을 세운 건지,아니면 사람들이 만든 선과 벽에 내가 건널 수 없게 된 건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사귀는 건 물론 사람 관계에서 파생된 이성과의 연애에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나의 결혼식에는 부모님의 사람들 말고 몇 명이나 와 줄까?없는 것아니야? 내 부모님의 장례식장에는 친오빠의 지인들 말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대학 생활 이래 꾸준하게 만나고 연락하는 것을 반복하는 유일한 사람이 양양이다.

그녀는 나의 희로애락을 내가 말하지 않아도 먼저 말 해주는 신기한 능력을 지녔다. 자연스레 사람들에게 하지 못하던 내 얘기를 많이 털어 놓은 것도 그녀이다. 아무생각이 없을 때에도 거리낌 없이 연락하는 사이의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에 커다란 존재임이 분명한 그녀가 독일에 오다니!



혼자 여행을 온 터키 남자 아이의 사진을 스무 장 정도 찍어주고 선물 받은 에펠탑 앞에서의 인증샷, 여행 후 반 년이 지나 메일로 전해 받을 수 있었다.


손님맞이로 분주한 새벽

양양이 도착하는 날은 새벽부터 분주했다.

마침 설 연휴에 맞춰 오는 터라 독일에서 소고기를 사다가 처음으로 <곰국>이라는 것을 끓였다. 다진 고기와 야채를 넣어 설날 분위기라도 내자는 마음에 동그랑땡도 부쳐두었다.

곰국은 전날 저녁부터 물을 붓고 센 불에 끓여대기를 반복한 덕분에 꽤나 색깔이 뽀얗게우러났다. 말이 곰국이지 그저 소고기를 여덟 시간 가량 푹 끓이고 여러 번 누런 물을 갈아가며 제법 뽀얀 빛깔이 올라온 정도의 고깃국이었다. 아무렴 어때.


밥솥에 밥을 올리고 국은 보온에 맞춰 두고 식탁에는 집에 돌아와 바로 식사부터 할 수 있게 밥상을 차려둔 채 공항으로 향했다. 영국에 도착해서 하루를 런던에 묵고 아침 일찍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 도착하는 일정이어서 나는 그에 맞춰 새벽 네 시쯤부터 그녀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앞으로 일주일은 그녀와 함께 하기에 플랏을 깨끗하게 치워뒀고 빨래도 모두세탁하여 옷장에 정리해 두었다.


공항에서 플랜카드를 든 채 삼십 분 남짓 기다리니 반가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 아침이라 차분하고 고요한 독일 공항에서 우리 둘은 크게 소리쳐 웃으며 얼싸 앉았다. 주변의 독일인들이 오히려 머쓱해 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독일에 있는 동안 머무를 내 집에 도착하여 따뜻한 곰탕 한 그릇으로 비행의 허기를 채워줬다. 양양의 짐 가방에 빈자리가 많다고 하여 엄마에게 부탁해 겨울 옷 몇 가지를 그녀를 통해 받았다. 엄마는 그 새 문화센터에서 집안을 정리하는 것을 강좌로 배운다며 올이 나가 못쓰는 스타킹에 두꺼운 겨울 옷들을 소시지처럼 줄줄이 넣어 보내주셨는데, 그 모습이 실로 우스꽝스러웠다. 커피색 스타킹에 빵빵하게 쑤셔 넣은 옷은 마치 메주를 대롱대롱 매달아 둔 모양과 같다며 둘이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내가 사는 도시,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하이델베르크, 또 나의 절친이 된 스페인 친구 가리와의 만남까지.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양양에게 소소한 내 일상을 보여주었다. 여행이 아닌, 그저 일상에서 친구와 만나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곳에 가서 구경하고 즐기는 느낌이랄까. 그녀도 나처럼 불과 며칠 만에 독일에 스며들은 눈치였다.



나의 파리 너의 파리

파리에 가는 날 아침이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떼제베(TGV)>를타고 세 시간 만에 파리에 도착했다. 


세느강,노틀담,에펠탑,마레지구


벌써 네 번째다. 처음 회사를 그만두고 파리에 머물렀던 시간이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네 번째로 파리에 들렀다. 양양과 전화 통화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파리에 대한 설렘과 즐거움, 아련함에 대해 이야기를 쏟아내곤 했다. 욕심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양양도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행히 그녀도 파리. 이곳이 정말 좋다고 진심을 담아 탄성을 내질렀다. 짐을 풀고 우리는 파리를 정처 없이 다녔다. 걷다가 배가 고프면 근처 식당에 들어가 간단하게 피자와 맥주를 즐겼다. 지난 여름에 혼자 여행을 왔을 때 한 여행사의 무료 야경투어를 따라다니며 가이드에게서 들었던 숨은 도시의 이야기들을 양양에게도 꺼냈다. 우리의 여행은 쇼핑이나 건축,미술관, 미식의 목적도 없었다. 그저 시간을 즐기고 싶었고 그게 우리가 범접할 수 있는 또, 매력적인 곳이었으면 했다.우리의 마음과 파리는 절묘했다.




버스를 타고 <메트로(Metro)>를 타고 가고 싶은 곳에 무작정 내려 걸었다. 어딜 가나 새롭고 낯선 모습. 그렇지만 생동감이 있고 부드러운 권위가 느껴지는 파리의 도시 풍경은 발바닥이 벌겋게 부어 오르고 물집이 잡히더라도 끝없이 다가가 보고 싶어졌다. 숙소가 있던 샤틀레에서 세느강을 따라 걸어 콩코드 광장을 지나 샹제리제 거리를 거슬렀다. 웅장한 개선문에 불빛이 비춰 거대함을 한껏 뽐내는 모습도 만끽했다. 양양이좋아하는 헐리웃 배우가 공교롭게도 우리가 샹제리제 거리를 춤추듯 뛰어다닐 때 새 영화 홍보를 위해 도착했다. 파리에서 <브래들리 쿠퍼>를 마주할 줄이야. "울랄라"를 외치며 그의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뛰어 들어가 오분남짓을 수많은 취재진과 군중 속에 엉켜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열쇠고리 청년

“언니, 파리 정말 잘 온 것 같아.” 

이번 여행에서 나와 양양은 이름만 들어도 관광객이 넘쳐날 것만 같은 박물관과 미술관에는들르지 않았다. 깜깜한 밤에 화려함을 뿜어내는 루브르 앞에는 오직 야경의 황홀함을 즐기기 위해 들렀다. 화려한 불빛 아래 젊은 여자 둘이서 인생에 남을 사진을 찍고 있노라니 열쇠고리를 파는 젊은 남성이 다가왔다. 엄지 손가락 만한 크기의 에펠탑이 달린 열쇠고리를 사라고 하는데 마음이 약한 양양은 두 개를 구입했다.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도 못하는데 관광객을 상대로 판매를 하는 모습에 나는 괜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디에서 왔냐고 하니 모잠비크에서 왔다고 그는 대답했다.모잠비크, 그 곳은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곳이잖아! 갑작스레 청년이 알아들을지도 모를 포르투갈어를 해댔다. 순간 청년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금새 웃음을 터뜨렸다. 



야경을 즐기러 들른 루브르 박물관 입구에서 마주친 열쇠고리를 파는 청년은 우리에게 열쇠고리 하나를 덤으로 선물했다.


우리는 기분 좋게 청년과 헤어지고 돌아서는데 잠시 뒤 청년이 우리를 불러 세웠다. 바가지를 씌운 게 미안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뱉어낸 모국어에 뭉클해서인지 에펠탑이 달린 열쇠고리를 하나 더 챙겨주었다. 프랑스에 와서 덤을 얻어 가다니!

여행은 모두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비가오거나 흐리면 운치가 있고 감수성이 솟는 여행이 된다. 화창한 날씨에는 상쾌함과 뭔지 모를 에너지가 몸에서퍼져 나오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혼자서 떠나는 여행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 되고 누군가와 함께인 여행은 시간을 즐기거나 관계를 알아가는 계기가 된다. 양양과 나의 파리는 유독 화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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